한국판 엘도라도‘기수를 서쪽으로’

“서울 수도권이 서남부 지역으로 크게 확대된다고 보면 됩니다.”정광영 한국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고속철과 서해안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충남ㆍ서해안 전 지역이 수도권에 편입됐다고 봐도 좋다”고 단언한다. “충남은 서울 수도권 중 개발이 아직 안된 지역”이라는 주장이다.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아니라도 반드시 ‘뜰’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정소장은 “천안은 서울특별시 천안구, 대천해수욕장과 태안반도, 안면도는 서울 근교 관광지”라는 표현으로 충남ㆍ서해안의 위상 변화를 비유했다.요즘처럼 한반도 서쪽 지역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적이 있었던가. 서해안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신행정수도에 이르기까지 잇따른 매머드급 호재들이 서쪽 땅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국토의 중서부인 충남지역은 역사에 익히 없었던 부동산 호황을 갑작스레 경험하면서 어느새 ‘투자의 전당’으로 변모했다. 전국이 불황과 경기 침체로 음울한 분위기지만 충남만은 곳곳에서 화색이 돌 정도다.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충남 토지를 능가하는 ‘블루칩’이 없을 만큼 분위기부터 다르다.사실 부동산시장에서 ‘서쪽’은 그리 환영받는 재료가 아니었다. 주택에서 서향은 되도록 피하는 방향인데다 서울에서도 서쪽 지역은 비인기 입지로 꼽히고 있다. 90년대 초반 주택 200만호 정책으로 수도권 5대 신도시가 개발될 때 서울에서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중동신도시가 가장 높은 분양가를 기록했지만, 막상 입주 후에는 가장 낮은 시세를 기록하는 것도 한 예다.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서쪽 땅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뜨거운 관심이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 일찍이 이런 적이 없었다. 한가하기만 했던 시골길로 투자자를 실은 관광버스가 지나가고 시군청에는 토지대장 발급 민원이 줄을 섰다. 읍내에는 총천연색 간판의 중개업소가 하루에도 몇 개씩 생기는 중이다. 충남 전체가 돈벼락 기대감에 술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땅값 상승지역 톱10 ‘충남 싹쓸이’서쪽 땅의 변신은 90년대 중후반 평택항과 포승공단 등 주변지역 개발이 시작되고 수도권 택지가 화성, 오산 등 남쪽으로 확대되면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프로젝트가 나오면서 서해안 거점론이 확산되고 국내 최장 서해대교가 개통하면서 본격화되나 싶더니, 2002년 12월 대선 직후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나오자 확실하게 불이 붙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4월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충남ㆍ서해안의 ‘팔자 고치기’에 확실한 방점을 찍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행정수도 이전지가 확정되면서 명확한 미래상까지 갖춘 상황이다.이처럼 실체가 뚜렷한 호재가 시장을 견인하는 터라 이 지역 부동산시장은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충남지역의 올 2/4분기 땅값 상승률은 전국 평균의 4.3배에 달했다. 건교부가 발표한 ‘2004년 2/4분기 토지시장 동향’에 따르면 이 기간 충남지역은 4.65%가 상승해 전국 평균인 1.09%보다 훨씬 높았다.특히 수도이전 예정지역인 연기군이 9.59%나 올라 1위를 차지했고 당진, 아산, 천안, 예산, 공주, 홍성, 서산, 청양 등이 10위권을 휩쓸었다. 충남이 아닌 곳은 파주 한 곳밖에 없다.현지에서는 이러한 상승세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다. 서울에서 영업하다 지난 3월에 예산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A부동산 관계자는 “4개월여 만에 땅값이 2배 이상 오른 것 같다”고 전하고 “평당 20만원 밑돌던 국도변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이 지금은 40만원선”이라고 말했다. 4차선으로 확장될 예정인 609번 지방도 주변은 50만~60만원까지 올랐다.예산과 인접한 홍성, 당진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가능한 도로변 토지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나마 지주들이 추가 상승 기대감으로 매물을 내놓지 않아 공급이 달리기도 한다.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깡촌’으로 불렸던 청양군의 경우 최근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행정수도 후보지에 접해 있어 후광 효과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골 땅값을 한껏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청양군 읍내리에는 일주일에 2~3개꼴로 부동산중개업소가 문을 열고 있다. 현지 B공인 관계자는 “7월 행정수도 이전지 발표 직전부터 중개업자들이 몰려드는 추세”라며 “중개업자들이 땅 작업(지주를 설득, 팔도록 만드는 일)을 통해 매물을 만드는 데 매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도로변 관리지역 시세는 평당 15만~20만원에 달한다.이들 지역 땅값이 상승세를 보이는 것은 충남 공통의 호재 덕도 있지만 아산신도시, 행정수도 등으로 풀릴 토지보상금의 영향도 적잖다. 올해 충남, 대전지역에서 풀리는 보상금 규모는 6조9,000억원. 내년 보상 예정인 행정수도 이전지의 4조원까지 더하면 줄잡아 10조원 이상이다.이 가운데 대대로 농사를 짓던 이주민들이 주변지역 토지를 사들이는 ‘대토’에 관심을 두고 있어 커다란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종명 집보아닷컴 사장은 “7월부터 아산신도시 1단계 보상이 시작된 후 예산ㆍ홍성지역으로 뭉칫돈이 흘러들어가 급격한 가격 상승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이에 따라 예산군, 홍성군 등지의 토지시장은 최근 높은 상승세를 기록하며 천안ㆍ아산지역 땅값을 추격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유력한 도청이전 후보지로까지 거론되고 있어 이래저래 상승을 견인하는 요인만 가득한 상황이다.행정수도 이전, 고속철 및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의 호재 외에도 충남 각 지자체가 세워놓은 각종 개발계획이 관심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충남 효과’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뚜렷한 지자체 개발계획이 있는, 그러면서도 투자 열기가 비교적 달아오르지 않은 지역에 관심을 두라”고 충고한다.기획부동산 활개 여전…현장답사 ‘필수’충청남도 광역권 개발계획에 따르면 △북부내륙권(천안, 아산) △북부해안권(서산, 태안, 당진) △중부권(청양, 홍성, 예산) △남부해안권(보령, 서천) △백제고도권(공주, 부여) △대전근교권(논산, 금산, 연기) 등 6개 개발 축에 각기 다른 내용의 도시 기능이 부여돼 있다. 세부 계획을 참고하는 한편 도로망 계획이나 관광지 개발계획에 유념해 장기투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고도 성공적인 투자기법이라는 조언이다.천안, 아산의 경우 고속철 개통으로 인한 교통여건 향상과 신도시 개발 프리미엄, 수도권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을 바탕삼아 충남에서 가장 먼저 투자 열기가 달아올랐다. 화려한 개발계획을 기반으로 70만명 규모인 천안ㆍ아산을 합쳐 광역시로 만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또 삼성이 아산시 탕정면 일대를 기업도시로 만드는 63만평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인구증가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호남고속철 분기점으로 유력한데다 올 10월 말 개통 예정인 수도권 전철 연장선이 닿을 예정이어서 접근성을 더욱 향상시킬 전망이다. 여기에 천안~당진간 고속도로와 천안~광명간 민자 고속도로가 추진되고 있어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추게 된다.하지만 투기지역으로 묶여 토지거래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거래 규제가 강화되면서 최근 2~3개월 사이 거래가 주춤한 모습이다. 아산 음봉면의 한 중개업자는 “가격이 너무 올랐고 단기투자가 어려워지면서 거래가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음봉면 일대 토지는 평당 60만원선에 거래가 됐지만 최근엔 50만원선까지 떨어진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는 전언이다.주택시장도 불당지구, 두정지구 등 택지지구를 중심으로 단기조정을 받는 모습이다. 현지 중개업자들은 “일시적인 공급과잉에 따라 연말까지는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중개업소별로 급매물이 나오면 연락 달라는 매수세력이 대기 중이어서 여전히 적잖은 수요가 떠받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예산 지역에서는 대토 가능한 토지 외에도 관광개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 특히 예산군에서는 덕산온천 개발과 예당저수지 주변 개발이 핵심이다. 덕산온천의 경우 현재 기반조성공사가 준공된 상태로 여관, 콘도미니엄, 휴양센터, 상가 등에 대한 체비지 공급이 진행 중이다. 평당가는 90만~14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또 예산과 접한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 일대 635만평에 계획 중인 도청이전 후보지 프로젝트도 관심사다. 후보지에 인접한 금마, 화양, 홍성 읍내가 후광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되며 이에 따라 땅값도 40만원선까지 올랐다. 현지에서는 도청 유치에 실패해도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될 것이란 기대감이 퍼져 있다. 태안, 서산 등 서해안 지역도 휴가철과 맞물리면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태안 안면도권에서는 77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몽산리, 달산,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내, 승언리, 황도리 등이 떠오르고 있다.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서산권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어서 투자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해 조망이 가능한 임야는 평당 10만~15만원대, 개발이 가능한 대지는 300만원대를 웃도는 상태다. 서산간척지 일부에 현대건설이 골프장 등 고급 위락시설을 건설할 계획이어서 이에 대한 기대심리도 크다.충남과 인접하고 행정수도와도 지척인 충북 청원군 오송, 오창지구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2010년 고속철 오송역이 들어설 오송생명과학단지는 140만3,000평에 굴뚝 없는 생명과학산업단지와 학교, 주거 및 상업지구가 통째 들어선다. 오송지구와 가까운 오창과학산업단지 역시 33만2,000평에 반도체 및 연구단지, 주거 및 상업지구가 함께 들어선다. 지난 7월 말 우림건설이 1,602가구를 공급, 8대1의 높은 경쟁률 속에 분양을 완료했다. 김종욱 홍보실장은 “사전예약만 8,000명에 달하고 모델하우스에 수만명의 인파가 다녀가 오창지구에 대한 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밝혔다. 서울 수도권 분양시장이 침체를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인 셈이다. 이 지역 아파트 값은 평당 평균 450만~500만원대에 공급됐으며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입주 후 적어도 2,000만~4,000만원의 프리미엄을 예상하고 있다.한편 충남 토지시장에 대한 투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기획부동산이 청양, 당진, 서천 등지의 싼 임야를 사들여 수십배 차익을 남기고 쪼개 팔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임달호 현도컨설팅 사장은 “뚜렷한 개발 호재 없이 행정수도 인접지역, 충남 유망지역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했다간 돈이 묶일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어느 때보다 선별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종명 집보아닷컴 대표도 “예산 등 일부 지역은 토지지적도가 일반지도로 나와 있지 않아 반드시 현장 답사 후 서류를 꼼꼼히 대조해 보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현지 토지시장에 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권할 만하다”고 밝혔다.돋보기 급증하는 중개업소1주일에 2~3곳 새 간판 ‘가자, 충남으로’‘중개업소 몰리는 곳에 돈이 몰린다.’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부동산시장이 뜨는 곳은 중개업소 숫자도 많다. 굵직한 호재가 널려 있는 충남 부동산시장을 중개업자들이 놓칠 리가 만무하다. 충남도에 따르면 도내 부동산중개업소는 6월 말 현재 2,481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93곳에 비해 55.7%(888곳)나 늘어났다. 현지에서는 ‘아이보다 복덕방이 더 많이 생긴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실제로 낡은 건물이 차지하고 있던 충남 읍면 소재지 중심부에는 최근 화려한 간판의 부동산중개업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청양군 읍내리 도로변의 경우 한두 곳 걸러 새 중개업소가 생겼을 정도로 풍경이 바뀌었다.충남도 집계에 따르면 지역별로는 당진군이 지난해의 119곳에서 290곳으로 늘어나 143%의 최고 증가세를 보였다. 아산은 388곳으로 지난해 206곳에 비해 88.3%, 천안은 828곳으로 전년의 614곳에 비해 34.9% 증가했다.행정수도 후보지로 확정된 연기지역도 98곳으로 지난해 이맘때의 63곳에 비해 55.5%나 늘어났다. 충남도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활동하던 중개업자들이 충남 곳곳으로 유입되는 한편 천안 아산에서 활동하던 중개업자들도 인근 관심지역으로 옮아가고 있어 수치 변동이 심한 편”이라고 밝혔다.최근 들어서는 논산, 보령, 서천, 금산, 부여 등지로 중개업자들이 진출하려는 움직임이다. 당진 A공인 관계자는 “천안 아산에 이어 당진, 예산, 홍성 등에 투자자 발길이 이어지다가 최근에는 가격이 덜 오른 곳을 찾아 이동하는 추세”라고 밝히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덜 오른 인접지로 보따리를 옮기는 중개업자가 적잖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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