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털 시장 1조원·렌털 업체도 1만개 이상…해마다 20~30% 성장

“소유의 시대는 가고 이제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미국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 교수는 그의 저서 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물건’을 사고팔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던 것. 소비자들이 구입을 통한 ‘소유’ 대신 임대와 가입 형식의 ‘접속’을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다.리프킨 교수가 전망한 ‘접속’의 시대는 ‘대여’ 곧, ‘렌털’의 시대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상반기에 발간된 는 국정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전체 소비시장 중 10%를 렌털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내 소비시장에서 렌털이 차지하는 비중은 0.1%도 안되는 실정이다.하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렌털이 합리적인 소비로 인식되며 구입 대신 렌털을 통한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지만 불황이라는 경제상황도 렌털 비즈니스를 꽃피운 원동력이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빌리는 품목은 기껏해야 도서나 비디오테이프, 자동차 등 한정적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정수기와 비데, 공기청정기 등 건강가전부터 장난감과 캠코더 등 개인 대상의 일상용품, 그리고 사무기기와 정보기기까지 렌털 품목이 무척 다양해졌다.여기에다 이색 렌털 품목까지 아이디어 상품으로 개발돼 텐트, 어린이 예복, 한복, 명품, 인테리어용품, 그림, 머리핀, 아기기저귀, 줄다리기 줄에 심지어는 결혼식 하객까지도 대여하는 업체가 생겼다.이밖에 온라인상에 각종 렌털 전문 포털사이트까지 생겨 렌털 전문업체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물건이라면 원하면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렌털업계 관계자들은 중장비와 렌터카, 비디오숍과 같은 전문렌털영역이 독립적으로 구축된 영역을 제외하고 올해의 렌털 시장이 1조원 규모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황에 강하다는 렌털 비즈니스의 특성이 알려지자 렌털업체만 1만여개 이상 존재하는 실정이다. 특히 불황을 맞아 허리띠를 졸라맨 기업들 덕분에 컴퓨터, 복사기 등 정보기기 렌털시장은 매년 10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지난 5월에는 한국렌탈협회가 주관하는 한국렌털산업전이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돼 렌털 시장의 성장곡선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정수기·비데 선두주자먹는샘물을 사서 마시던 직장인 임진태씨(33)는 최근 정수기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집에서 어떤 방식으로 물을 먹는지’를 물어봤던 그는 깜짝 놀랐다. 정수기를 구입하는 대신 대여해서 물을 마신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서다.정수기를 비롯해 건강가전을 대여해 사용하는 소비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수기와 비데, 공기청정기뿐만 아니라 연수기까지 빌려주는 웅진코웨이개발의 매출액과 렌털 회원수만 봐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98년 렌털을 시작한 웅진코웨이개발은 100만원대 이상의 정수기를 구입하는 데 드는 소비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월 2만6,000원에서부터 5만1,000원(가정용 기준)까지의 비용으로 제품을 빌려줬다. 동시에 정수기를 2개월마다 방문해 관리해 주는 전국 9,800여명의 ‘코디 조직’을 둬 소비자들이 가질 수 있는 부담을 최소화했다.또한 정수기를 구입하면 장기적으로 필터값이 더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다’고 생각한 소비자에게도 어필했다. 제품의 정기점검과 주기에 따른 필터교환, 부품교환 등을 무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이다.98년 렌털 마케팅 도입 원년의 매출액은 894억원. 반면 지난해에는 8,271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5년 만에 10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액 중 무려 81%를 렌털회원이 올려줬을 정도다. 웅진 정수기를 사용하는 소비자 5명 중 4명이 빌려 쓰는 셈이다. 렌털 회원만 지난 8월 280만명을 돌파했으니 건강가전의 대여가 어느 정도로 급증했는지 쉽게 파악이 된다.또 다른 정수기업체인 청호나이스는 렌털 마케팅에 뒤늦게 뛰어들어 큰 피해를 본 케이스다. 97년까지만 해도 청호나이스는 정수기시장에서 5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며 웅진코웨이와 함께 시장을 양분했다. 하지만 웅진코웨이가 렌털 마케팅으로 치고 나가는 사이 손을 놓고 있다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점유율이 18%까지 떨어졌다.이런 결과가 나오자 청호나이스는 시장분석을 면밀히 하며 소비자분석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수기 전체 시장은 매년 20% 이상의 고성장을 보인다고 분석한 청호측은 지난해 가구당 정수기 보급률은 22.3% 수준으로 파악했다. 올해는 보급률이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 추세대로 성장한다면 정수기시장은 2006년 이후 성숙기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최근 들어 렌털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 6월에는 CJ홈쇼핑과 제휴를 맺으며 홈쇼핑을 통한 렌털마케팅에 뛰어들었다. 렌털 비즈니스가 뒤처진 만큼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정수기, 비데 등 건강가전의 대여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자 정수기 업체뿐만 아니라 할인점도 렌털전에 뛰어들었다. 홈플러스는 전국 30개 점포에서 정수기, 비데 렌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등록비 없이 매달 정수기는 3만5,000~4만9,500원, 비데는 2만9,000원의 사용료를 받고 빌려준다. 정수기업체와 마찬가지로 5년간 사용하면 자동으로 본인 소유가 되는 방식이다. 할인점이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해 전국 유통망을 통한 고객몰이에 나섰다.이색 비즈니스 속속 등장그림을 대여해 집안에 걸다 싫증나면 다른 그림을 빌려 장식하는 소비자. 드라마 속 우아한 주인공 얘기가 아니다. 그림 대여는 국내에서 이미 10여년 전 시작됐다. 판화세계라는 그림 대여업체는 11년 전부터 렌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현재는 온라인상으로 그림 대여를 문의할 수 있는 업체만 수십개에 이른다.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표갤러리는 8년 전부터 미술작품 렌털서비스를 시작했다. 정윤지 표갤러리 큐레이터는 “특히 강남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화랑에서 렌털서비스를 활발히 펼친다”고 설명했다. 표갤러리의 경우 대여기간을 최소 3개월로 정했다. 렌털비는 작품가격에 따라 결정한다. 1개월 기준으로 100만원 미만의 작품은 작품가의 7%, 100만~1,000만원인 작품은 6%, 1,000만원 이상 작품은 5%를 렌털비로 받고 있다. 또한 작품 판매가격의 20%를 작품 사용자측에서 보증금으로 받는다.렌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대여시 작품이 손상될 경우. 작품 대여자가 작품 가격 전액을 변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작품 대여시 사용자는 계약서에 각서 형식으로 ‘손상시 보상내역’을 기입해야 한다.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만 작품 렌털을 하려는 이용자가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명품 대여도 인기를 끌고 있다. 중고명품을 위탁판매하는 럭셔리라인은 3년 전 명품 대여를 시작했다. 지난해 말 오픈한 분당과 홍익대, 신촌의 럭셔리라인 가맹점 또한 명품 렌털을 하고 있다.박승우 럭셔리라인 대표이사는 “명품이 사치품이 아닌 기호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며 필요할 때마다 대여하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주로 연말연시와 주말에 대여 수요가 많다고 한다. 모임에 맞는 드레스코드를 완성하기 위해 가방이나 액세서리를 빌리는 고객이 많다는 것. 49만원으로 위탁된 샤넬 핸드백을 빌리려면 반납 때 돌려받는 보증금 30%와 대여비 1만원이 든다. 박대표는 “가격이 수천만원대로 매우 비싸거나 이제는 구할 수 없는 희소성이 있는 상품도 손님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렌털의 본질인 ‘일시적으로 필요한 상품’의 대표품목은 뭘까. 바로 유아와 어린이용품이다. 하루 다르게 성장하는 유아와 어린이에게 각 시기에 맞는 용품을 사주기는 쉽지 않다. 이런 소비자들의 심리를 간파한 업체들이 아동용품 렌털 비즈니스를 벌이고 있다.신세계닷컴은 유아용품 대여코너 ‘키즈 렌트숍’을 운영하고 있다. 수입침대와 유모차, 카시트, 보행기 등 각종 유아용품을 빌려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여료는 이탈리아 직수입 나이스베이비 버버침대가 12개월에 22만∼47만원, 유모차는 6개월에 7만∼16만원선이다.어린이 예복과 돌복 렌털업체도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결혼 전 전통복식과를 졸업한 후 웨딩드레스숍 디자이너로 일하던 김연진 플라워걸 대표이사는 웨딩일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자녀를 낳은 후 돌잔치 때 본인과 자녀의 옷을 커플룩으로 손수 제작해 주변의 탄성을 자아냈다. 어린이 예복과 돌복 렌털 사업을 시작하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김대표는 3년 전 돌복과 연주복, 화동복 맞춤과 대여사업을 시작했다. 어린이 돌복은 4만원대가, 연주복은 5만원대가 인기를 끈다는 설명이다. 어린이와 엄마가 커플룩으로 입을 경우 10만원대 제품이 인기다.김대표는 “시작할 당시만 해도 유사 업체가 3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개 이상이다”며 “어린이 예복 렌털 시장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김대표는 이어 “일주일에 많으면 30개 정도의 어린이 예복이 렌털돼 웬만한 샐러리맨만큼의 수익은 난다”고 귀띔했다.렌털 포털사이트의 대표이사로 지난 5월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렌털산업전을 연 이렌트의 전성진 사장은 “해마다 렌털시장은 20~30%씩 성장한다”며 “그러나 렌털을 이용해 봤다는 소비자는 10%가 안돼 성장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INTERVIEW 김종배 웅진코웨이개발 영업본부 이사지난해 8,300여억원 매출 중 렌털이 81%웅진코웨이개발은 1998년 렌털 마케팅을 시작한 후 대성공을 거뒀다. 지난해의 경우 8,271억원의 매출 중 81%를 렌털이 차지했을 정도. 올해도 렌털의 증가세를 예상하며 매출액 목표를 9,300억원으로 잡았다.정수기와 비데, 공기청정기, 연수기 등의 렌털을 총괄하는 김종배 웅진코웨이개발 영업본부 이사는 “8월 말 현재 320만 회원 중 렌털 회원이 280만명에 이른다”며 “정수기 역사를 바꿨다”고 자부심을 보였다.웅진코웨이개발은 IMF 외환위기 당시 렌털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100만원 이상의 고급정수기를 가정과 업소에 방문판매 방식으로 팔았다. 김이사는 “97년 자체 조사결과 정수기 판매 후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고객만족도가 50% 이하에 머물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수요 재창출을 기대하기는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수기를 빌려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먹는 물에 대한 불신과 정수기의 비싼 가격 사이에 고민하던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삼자는 아이디어였다. 아울러 사후관리 문제도 서비스 전문가인 코디(Coway-lady)를 통한 무료필터교환 및 정기점검 서비스로 개선해 나갔다.소비자의 욕구과 맞아떨어진 정수기 렌털 마케팅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김이사는 “2001년에 이미 렌털 고객 70만명을 돌파했고 2002년 3월에는 100만명, 10월에는 150만명의 렌털 고객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정수기 렌털이 자리매김하자 이어 2000년 4월에는 연수기를, 2000년 7월에는 비데를, 2001년 12월에는 공기청정기를 렌털에 포함시키며 제품의 폭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비데의 경우 80년대에 한국에 도입됐지만 수요와 보급률이 낮았다. TV광고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어서 그간 한 번도 TV광고로 방영된 적이 없었다. 비데의 향후 시장성을 전망한 김이사는 과감히 TV광고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주력상품인 정수기와의 차별성을 부여하기 위해 비데의 컨셉을 ‘즐거움과 상쾌함’으로 잡았다”며 “2002년 5월 비데를 포함한 욕실 관련 제품 카테고리에 대해 ‘룰루’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다”고 말했다.광고 컨셉에 맞도록 CF에 등장한 윤다훈과 안연홍 콤비는 특유의 애드리브와 코믹스러운 표정연기로 제품의 이미지를 표현해내 ‘닦지 말고 씻으세요, 룰루’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비데의 코믹 마케팅이 화제가 된 후 비데 렌털 회원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현재 56만명의 비데 대여 고객을 확보한 상태다.김이사는 “매출액의 7%를 따로 적립해 웅진코웨이 환경기술연구소에 출자, 제품 연구개발에 투입한다”며 “지난해 100억원대였던 연구개발(R&D) 비용을 올해는 3배 이상 늘려 3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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