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뜬 변화대응… 발상전환 따라야

마케팅능력·인력전문성 약점 … 공기업화 논란도 잠복 중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편집배원이라는 직종이 남아 있을까? 우리 생각은 부정적이다. 그들은 지금과 같은 집배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편지를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통서비스를 제공하며 택배 배달원으로서 일할 것이다. 그들은 매일 올 필요도 없다. 배달할 물건이 있을 때만 찾아올 것이다.”1987년 공사로 전환한 뉴질랜드 포스트의 초대사장을 맡아 우정사업 개혁을 주도했던 하비 파커가 10년 전에 우체국의 미래를 내다보며 이같이 이야기했다. 파커는 우체국이 전통적인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전자매체 중심의 우편서비스와 새로운 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예언은 상당부분 맞아떨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우체국이 직면하고 있는 변화는 뉴질랜드 사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거세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정사업본부 전체의 조직문화와 핵심경쟁력이 크게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지난해 9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우정사업 역량강화 방안’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네트워크와 건전한 재무구조, 공신력, 우편과 금융의 연계 등에서 상당한 경쟁우위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민간기업에 비교할 때 기업적 마인드에 근거한 역량이 상대적인 약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마케팅 능력과 상품개발, 인력의 전문성, 고객만족, 직원교육 등 소프트웨어적인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공무원들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문제는 우정사업본부가 공무원 조직이든 공기업이든 관계없이 민간영역에서 민간기업들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이나 택배시장은 민간기업간의 경쟁만으로도 적자생존의 혈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우정사업본부가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우편사업은 급속하게 하락하고 있어 기존사업과 신규사업 모두에서 고전이 예상된다.통상 우편물량은 해마다 5~7% 가량 감소해 2002년 54억9,000만통에서 올해 45억3,000만 통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택배의 경우 민간업체만 90여개가 난립해 있으며 영세업체의 덤핑 경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우체국의 경우 네트워크는 충분하지만, 택배사업을 전문적으로 해온 민간기업에 비해 물류시스템이나 숙련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금융사업의 경우 시중금융기관들이 인수합병 등을 통해 대형화, 겸업화를 추진하면서 대형기관 위주로 재편돼 우체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취급업무를 확대하고, 자체 수수료 수익 확대와 전자금융 고도화 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력전문성과 사업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다.이런 문제를 헤쳐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정부조직으로 운영되는 데 따르는 자율성의 한계다. 특례법을 통해서 경영상의 자유를 보장받고는 있지만 민간기업과 경쟁이 가능한 수준의 자유는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예산 운영의 경직성이나 민간기업의 가격공세에 탄력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내부 의사결정 시스템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공직사회 특유의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관행이나 문책중심의 감사제도 등도 경영의 유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부조직으로 남아 있으면서 내부혁신을 통해서 이를 얼마나 해결하느냐가 우정사업본부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외국의 사례를 본받아 공기업 전환이나 민영화를 추진하자는 논의도 있지만 이는 공공성과 수익성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할 것이냐는 정치적 판단이 선행돼야 할 보다 복잡한 문제다.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최중범 책임연구원은 “사업을 하는 정부조직은 이에 맞게 바꾸는 것이 세계적인 조류이지만, 외국에서 했다고 우리도 똑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공공부문이 갖고 있는 특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수익성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경기침체기에 고용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공익적 기능이지요.”선진국의 경우 기업전환을 추진한 이유가 우편배달이 중단되는 등 서비스가 악화되고 재정적자가 심각한 데 이유가 있었던 반면, 우리는 아직 그 정도 형편은 아니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현재 정부조직 형태를 유지하는 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한계를 얼마나 줄여 가느냐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최대한의 자율성을 허용하는 다양한 개혁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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