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보이면 끝장’ 공포의 파워그룹 부상

얼리어답터(Earlyadopter)는 단어 풀이 그대로 제품의 ‘초기 수용자’를 뜻한다. 좀더 넓게 해석하면 세상의 모든 신기한 물건, 희한한 상품들에 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갖고 싶은 제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놓치지 않는 충실한 소비자이면서, 누구보다 빨리 제품의 장단점을 파악해 주변에 알리는 무서운 소비자다. 이들은 전문가 뺨치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유행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미래시장에 대한 안목과 예측력도 상당한 수준을 갖췄다. 이들에게 혹평을 받는 제품은 출시와 함께 존폐에 위협을 받지만 호평을 받은 제품은 히트 상품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다. 일반 소비자에게 정보가 전파되는 것도 순식간이어서 오랫동안 제품개발에 매달린 기업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얼리어답터는 1957년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에버렛 로저스 교수가 신제품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든 신조어다. 이라는 책에서 역설한 이 개념은 당시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90년대 후반 IT분야 발전이 눈에 띄게 진전되면서 다시금 부상했다. 첨단 ITㆍ디지털 제품에 열광하는 이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지난해 제일기획은 ‘한국의 얼리어답터’라는 의미로 ‘코얼리어답터’라는 신조어를 내놓기도 했다. 코얼리어답터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남보다 앞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등이 일반적 성향으로 나타났다. 또 △IT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신제품이라고 무조건 사지 않고 선택적 구매를 하는 것 등에서 개념 차이가 난다고 분석했다. 특히 자기만족에 머물지 않고 인터넷 등을 통해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봤다.최근에는 라는 책에서 세스 고딘이 “시장 내에서 메시지를 전파하는 집단으로서 얼리어답터의 역할은 대단하다”고 언급,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실제로 얼리어답터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특히 기술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첨단제품에서 한국 얼리어답터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다른 나라 소비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기술적 문제를 잇달아 지적, 품질 및 서비스 개선에 이르도록 유도한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일본 니콘의 렌즈교환식(SLR) 디지털카메라 ‘D-70’의 경우 얼마 전 한국, 미국, 일본 등에서 동시 출시된 후 한국 디카 사용자에 의해 블루밍 현상과 적록 현상이 알려지면서 환불사태가 빚어졌다. 문제가 제기되자 니콘의 한국판매법인인 아남옵틱스는 판매를 중단하고 일본 본사에 품질검사를 의뢰했다.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 소니, 캐논, 후지필름 등도 한국 소비자의 품질 지적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상황이 이쯤 되자 기업들은 얼리어답터를 집중 마케팅 대상으로 설정, 새로운 영업전략을 세우는 모습이다. 또 얼리어답터의 관점에서 기업에 마케팅을 컨설팅하는 전문업체도 등장했다.삼성전자는 (주)얼리어답터와 제휴, 이 회사 회원을 대상으로 신제품 사용성 평가단을 운영하고 있다. 컴퓨터, C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DVD플레이어 등과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까지 얼리어답터의 평가를 받은 후 시장에 내놓는 과정을 도입한 것이다.거원시스템도 50여명의 회원으로 ‘아이오디오 마스터즈’를 결성해 1차 소비자 집단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온ㆍ오프라인 PC쇼핑몰을 운영하는 컴퓨존,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로 잘 알려진 레인콤 등도 서포터즈 제도를 운영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특히 레인콤은 지난 2000년 말 첫 제품 출시 때부터 얼리어답터를 겨냥한 마케팅을 펼쳐 단시간에 제품력과 브랜드를 알리는 성과를 거뒀다. 정석원 제품기획팀 과장은 “신생회사로서 품질 하나에 성패를 거는 입장이었던 만큼 최고 마니아층으로부터 검증을 받는 게 필요했다”며 “얼리어답터의 타깃 마케팅이 효과를 거둔 후 ‘아이리버 서포터즈’ 제도를 운영해 톡톡히 덕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최근 신입사원 선발에서도 얼리어답터 성향을 가진 지원자를 우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주)얼리어답터의 경우 기업의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돕는다는 취지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 한나영 이사는 “기업의 마케팅 능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소비자 관련 컨설팅을 제공한다”고 밝히고 “유통 마케팅 기반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출시에 앞서 제품 검증을 의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테스트 나는 얼리어답터인가?“잘못 만든 제품 보면 너무 안타까워”아래 10개 문항 가운데 5개 이상에 해당되면 얼리어답터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본다.1. 꼭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나타났을 때 그 물건을 놓쳐본 적이 없다.2. 제품을 배달받기 전날,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잠을 못 잔다.3. 포장박스를 버리지 않는다. 박스의 품질도 제품만큼 중요하게 본다.4. 매뉴얼은 거의 보지 않는다. 매뉴얼을 봐야 할 정도로 사용법이 어렵다면 좋은 제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5. 남들이 모두 다 사는 제품이라고 따라서 사지 않는다.6. 주위에서 무엇을 구입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7. 물건에 대한 애착이 큰 만큼 실망도 컸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 횟수는 적다.8.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한 분야에 마니아라기보다 여러 분야에 박학다식하다.9. 내가 산 물건을 주변에 자랑하는 편이다. 따라서 물건을 산 친구들이 “너 때문에 돈을 많이 쓰게 된다”고 한다.10. 잘못 만든 제품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제조업체에 어떤 방법으로든 말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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