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멀어도 비즈니스는 가깝다

광화문 사거리.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이 길게 늘어서 있다. 불과 1~2분이지만 시간은 더없이 느리게 간다. 성격 급하기로 소문난 A씨에게는 지루함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나마 길 건너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보며 따분함을 달랜다. 광고 일색이지만 속보를 전하기도 해 유익하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전광판의 운영원리가 궁금해졌다. TV 방송은 분명 아니고 속보 기사를 보면 비디오도 아니어서 의문이 더해 갔다. 해답은 전광판 아래에 있었다. 대형 위성안테나가 설치돼 있는 것이다.무궁화위성 가동률 100%위성을 이용한 비즈니스는 도처에 널려 있다. 휴대전화의 시계도 인공위성을 통해 작동된다. 전국에 산재한 경마방송도 위성을 거쳐 운영된다. 기업들은 위성전용망을 구축해 국내는 물론 전세계 지사를 연결,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화상회의도 가능하다.교회도 위성을 이용해 원격 설교를 하고 있다. 중동 사막 한가운데서 휴대전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위성 덕분이다. 방송과 통신산업의 한복판에 위성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대목이다.국내 위성 비즈니스의 역사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95년 KT가 국내 최초의 상용위성인 무궁화 1호를 발사하며 시작돼 96년 무궁화 2호를 궤도에 안정적으로 진입시키며 본격화됐다. 대기업의 사내방송이나 마사회의 경마중계 같은 위성비디오중계, 뉴스 현장중계, 위성전용망 등의 서비스가 대표적인 비즈니스였다.기업들이 인공위성 서비스를 선택한 이유는 투자 대비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우선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위성신호를 받을 수 있는 안테나와 단말기만 있으면 전국 어디서나 동시에 동일한 콘텐츠를 방영한다. 게다가 난시청 지역도 없다. 산속 오지든 바다 한가운데든 선명한 화질을 수신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정작 위성을 보유한 KT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무궁화 1호는 궤도에 안정적으로 진입하지 못해 수명이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위성방송을 위한 방송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몇 년이나 위성을 ‘놀려야’ 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에 논의되기 시작한 이 법안은 99년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무궁화 1호는 이미 수명을 다해 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생긴 누적적자가 현재 5,000억원에 이른다.99년 무궁화위성 3호를 발사하며 위성 비즈니스는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 새로 마련된 방송법에 따라 2000년 위성방송사업자가 선정되고 2002년에는 국내 최초의 디지털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개국한 것이다. 이에 따라 스카이라이프가 사용하는 무궁화위성 3호의 가동률은 거의 100%에 이른다. 주변국의 위성가동률이 70%를 채 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지난 3월 SK텔레콤이 발사한 인공위성 ‘한별’은 세계 인공위성 비즈니스의 신기원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초의 위성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위성DMB) 전용 위성이기 때문이다. 위성DMB는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볼 수 있는 방송이다. 인공위성방송의 취약점인 건물이나 터널 등의 ‘음영지역’을 전용 중계기인 개필러로 보완해 전국 어디서나 이동을 하면서 고화질 디지털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인공위성 비즈니스는 단연 위성항법장치(GPS)다. GPS인공위성이 전송하는 위치정보를 단말기에 구현하는 이 비즈니스는 내비게이션, 텔레매틱스, 카메라감지기 등을 통한 교통정보, 휴대전화를 이용한 보안서비스 등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텔레매틱스산업 육성정책의 일환으로 그동안 불법장비로 판매가 금지됐던 카메라감지기가 합법화되면서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GPS위성 사용 무료GPS서비스가 등장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미국이 그동안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던 GPS위성의 신호코드를 민간에 개방하면서 관련 비즈니스가 탄생했다. GPS비즈니스의 매력은 인공위성 사용료가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지피에스코리아의 심한수 이사는 “인공위성이 무작위로 뿌려대는 신호를 이용하므로 사용료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며 “다만 단말기나 칩제조업체에 사용료를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미국측이 갑자기 GPS 정보의 사용을 금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이에 대비해 ‘갈릴레이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독자적인 GPS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 정부에도 참여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결정에 따라 GPS산업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인공위성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방송과 통신이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산업의 흥망성쇠가 정부의 정책에 달려 있다는 설명이다. KT의 무궁화위성 1, 2호의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다. 위성DMB 위성도 같은 처지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미뤄져 사업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 위성DMB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티유미디어콥의 허재영 CR전략실 과장은 “한달에 위성의 감가상각비만 16억원에 이른다”며 방송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위성방송이 정착하기 위해서 하루빨리 풀어야 할 숙제가 MBC와 SBS의 지상파 재송신 문제다. 현재 스카이라이프는 케이블방송업계의 반대로 이 두 방송을 방영하지 못한다.102개의 비디오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가입자들을 끌어들이기에 매우 불리한 형편이다. 기존 가입자가 계약을 해지하는 가장 큰 이유도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차 떼고 포 떼고 두는 장기’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 회사 정책협력실의 김경렬 과장은 “지상파 재전송 문제는 케이블사업자나 스카이라이프 모두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정부가 이해당사자들의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함에도 한발 물러서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티유미디어콥의 허재영 과장도 “위성DMB도 지상파 재송신 문제가 사업 초기의 최대 갈림길이 될 것”이라며 “위성DMB와 케이블방송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므로 큰 반대를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인공위성 개발에 대한 지원도 더욱 확대돼야 한다. 인공위성은 흔히 ‘국력의 상징’으로 통한다. 막대한 개발비용이 드는데다 첨단의 기술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하다. 위성개발을 위해 전자, 전기, 기계, 화학 등 온갖 분야의 기술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관련산업의 기술력을 크게 증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 수준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자체적으로 소형 발사체를 개발하기는 했지만 상용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직도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한다.김승조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확대하고 우리의 앞선 정보기술을 잘 활용하면 5년 안에 인공위성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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