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NO’…국민이익 최우선

최근 우리 정치권과 재계는 불법대선 정치자금 수수로 납세 대중으로부터 정경유착을 일삼아 온 기득권익의 온상으로 매도당하면서 동반 추락하고 있다. 이것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인지는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우리 재계는 최대의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우리 기업인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동일인 계열신용한도와 출자총액한도 규제 등 과잉중복규제가 역차별의 사전 규제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아무리 얘기해 봐야 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반기업 정서를 이유로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규제개혁을 꺼려한다. 재계의 각종 정책제안은 오히려 위기과장 행위로 치부, 개혁의 고삐는 더 죄려 한다. 이러다 보니 정치권에 대한 재계의 불신 또한 만만치 않다. 악순환이다.이웃 일본에서는 소속 업종이나 단체의 개별이익을 떠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행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재계라는 말을 입에 올리거나 그 일원임을 자처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만큼 재계의 멤버 요건이 엄격하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무게가 있고 정치권과 일반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일본 재계는 2차 세계대전 전에는 소위 재벌이 정치자금으로 정치를 지배하다가 전시 통제기에는 정부의 의향을 개별업계에 전달하는 단순한 단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당시 연합군사령부(GHQ)와 정부에 경제계의 의사를 반영해야만 했던 격변기에 새로운 중추적 경제단체로서 탄생한 게이단렌(經團連ㆍ경제단체연합회)이 재계의 창구 노릇을 하게 된다.또한 재벌개혁에 따른 공직자 추방령에 의해 전쟁 전의 경제계 지도급 인사를 대거 잃게 되는 재계 공백 상황에서 보수성향의 게이단렌에 이어 당시 40~50대 초반의 진보적 성향의 중견 경영인들이 결속해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의 경제 동우회다. 전후 민주화 개혁과 노동공세의 긴박한 상황에서 정당한 경영권 행사를 위한 재계의 노무 대책 총사령부로서 닛케이렌(日經連ㆍ일본경영자단체연맹)도 출범했다.2002년 5월 게이단렌과 닛케이렌이 통합하기 전에는 중소기업과 지방상권의 충실한 대변자인 일본상공회의소와 함께 경제4단체가 공동대표로서 오랫동안 재계를 이끌어 왔다. 제각기 개별적 특수성을 지니면서도 수평적 연대 활동을 통해 재계 공통이익을 한목소리로 대변해 오고 있다.일본의 재계는 구미의 재계와 같이 문자 그대로 단순한 이익단체가 아니고 개별기업과 업계 이익을 떠나 국민 전체 이익을 위한 업계간의 이해조정, 관민 협조 방식의 창출, 국민경제 장기전략 구상 등 경제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끊임없이 수용한다.흔히 일본의 경제단체는 몇가지 중요한 기능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해당 업계에 유리한 규제보호(보조금, 수입규제, 관세, 비관세 장벽 등)와 규격 등을 정부에 요청한다. 또 카르텔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업종 관련 각종 정보를 정부ㆍ행정과 공유함으로써 설비ㆍ생산조정과 불황 카르텔의 대상, 기간, 지원내용을 긴밀하게 협의 조정해 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보조금 배분, 설비폐기, 기술ㆍ규격 설정 전파 등에 관련된 정부정책 수행을 위한 대리인 기능을 담당한다. 이들 제반 기능은 정부, 단체, 기업간 정보의 비대칭성과 대리인 비용 때문에 비효율을 초래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른바 법적 근거가 모호한 일본 특유의 행정지도의 폐단이 가중되기도 했다.그러나 일본의 단체는 정보공유와 발신이라고 하는 순기능을 통해 정부정책 효과를 높여 온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회원기업의 현장정보를 정부에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 입안과 집행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정보의 쌍방향 교류를 통해 정부와 기업간의 정보 격차 해소,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 창조적 정보창출과 발신에 이바지해 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재계는 이러한 순기능에 역점을 둔 경제단체의 집합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도맡아야 할 궂은일을 솔선수범하고 있다.이러한 유연하고 진취적인 재계의 행동양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경제4단체가 각각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회원기업의 중장기 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열린 멤버십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닛케이렌은 1,300개 대표적 기업 회원사와 126개 업종별 단체, 47개 지방별 단체회원을 대신해 정부조직을 방불케 하는 각종 상설위원회와 21세기 정책연구소를 통해 민간 주도의 활력 있는 자유, 공정, 투명한 시장경제체제 수호를 위한 지침과 정책대안을 제시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노사안정,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시스템, 글로벌리제이션 하의 산업 경쟁력 강화 등 우선정책 사항을 제시한다.전국의 방대한 중소기업망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상공회의소는 그 주축이 지방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대정부 요망사항은 여타 단체에 비해 언제나 철저하고 적극적이다. 정부가 경기대책을 강구하더라도 전국의 중소, 영세기업의 말단까지 그 효과가 침투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금리인하를 요구할 경우에도 신규대출뿐만 아니라 기존 대출까지도 포함시키며 지방상권 활성화, 연쇄도산방지보험 실시, 기업경영개선자금 융자조건 완화 등 매우 구체적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최근 산업기술공동화 실태조사와 대책에 부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재계의 연구집단인 경제동우회는 경영자 개인 자격으로 회원이 되므로 다른 단체와는 조직과 사업내용이 다르다. 특히 기업과 산업의 입장보다는 경영자 의식이나 이념문제를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동우회가 매년 1월에 발표하는 연두견해와 4월 정기총회 대표간사의 소견은 그해 경영자의 문제의식과 경제문제에 대한 기본대응 방향을 명시하는 것으로서 재계는 물론 정계, 관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한마디로 일본 재계는 구성단체의 제각기 정책노선을 분명히 하면서도 재계와 국익을 위해서 한목소리를 냄으로써 정부와 정치의 기능을 보완하고 있다. 그래서 단체에 파견된 개별기업과 정부 공무원의 명함에 자신의 기업과 정부부처보다 단체명을 즐겨 새길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우리의 경우에도 공공부문의 축소, 관민의 역할 재정립은 대세다. 그만큼 개별기업과 산업의 이익을 떠나 경제단체가 그들의 고유영역에서 회원의 다양한 수요는 물론 회원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나아가 경영자, 근로자, 투자자, 소비자 및 교역 파트너들과의 인터페이스를 중시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경제단체의 열린 멤버십을 전제로 한 지배구조 개선, 우선정책 사항과 노선의 재점검, 지지정당의 객관적 정책평가를 통한 정치자금 지원, 재계 자체의 정책연구 기능 강화, 세계 경영 네트워크와 그 성과의 환원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익과 세계평화에 공헌한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 행동강령 공유 등 문제는 산적해 있다. 차제에 일본의 경제동우회와 같은 차세대 기업인 조직의 탄생도 기대해 본다.최근의 탄핵심판 해법처럼 불법행위는 인정하되 형사소추할 정도는 못된다는 식의 일과성 재단만으로 정ㆍ관ㆍ재의 악의 고리를 차단할 수 있을까. 기업 총수와 정치인 차원이 아니다. 우리 재계와 정계가 환골탈태,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시스템 아래 글로벌 플레이어로 거듭나야 한다. 평소 존경받아 온 몇 안되는 대기업 총수와 정치인이 검찰청 문간에서 더 이상 플래시 세례를 받거나 귀중한 목숨을 버릴 것이 아니라 윗분을 만나면 국가 장래를 논하고 나태한 정치인과 관리들을 길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