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는 만큼 쓰는 것도 중요, 기업들도 다양한 사용처로 ‘유혹’

“제 지갑 속에 지금 20장의 카드가 들어 있습니다.”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을 육박하는 개인워크아웃 시대에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즘 같은 시대라면 황당한 일만은 아니다. 신용카드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포인트 적립카드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업종을 불문하고 마일리지 포인트가 기업의 필수 마케팅 수단이 됐다.최근 삼성카드는 에스마일(S-MILE)카드를 선보였다. 이름에서 보듯 마일리지 관련해 특화된 카드다. 항공사별로 나눠 쌓던 마일리지를 통합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이 카드의 특징이다. 마일리지로 최근 개통된 고속철 승차권도 구입할 수 있다.‘마일’이 상품명에 등장할 정도로 마일리지 마케팅이 소비생활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항공사가 원조지만 최근에는 이동통신과 정유업계 등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정육점, 미용실 등 영세한 점포에서도 마일리지 포인트를 활용할 정도니 적립카드 20개쯤은 놀랄 일도 아니다.항공 마일리지의 공식명칭은 ‘상용고객 우대제도’(Frequent Flyer ProgramㆍFFP).가입회원이 항공기 이용실적에 따라 취득한 마일리지를 쌓아두면 언제라도 필요할 때 무료 항공권을 이용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마일리지는 좌석 승급 보너스로도 사용할 수 있다.가장 대표적인 마일리지 마케팅의 성공 케이스로 꼽히는 항공 마일리지 서비스는 78년에 미국에서 시작됐다. 항공시장 규제가 풀린 뒤 항공사 사이의 가격경쟁이 심해지면서 81년에 아메리칸에어라인이 처음 도입했다.그후 이 제도는 전세계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항공이 84년에 선보인 것이 처음이다.하지만 항공 마일리지는 최근에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로 매스컴에 부각됐다.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도입한 마일리지 제도는 항공사의 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항공 마일리지 누적금액이 급증하면 업계에는 잠재적 경영부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항공사에서는 혜택 폭을 줄이는 방향으로 약관을 변경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업종을 불문하고 마일리지제도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를 갖기에 이르렀다.마일리지 마케팅도 유행우리나라의 지난해 전자상거래 규모는 235조250억원으로 2002년에 비해 32.2% 증가했다.첫 조사가 실시된 지난 2000년과 비교하면 3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전자상거래 활성화로 오프라인상에서 쓰이던 마일리지제도도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도입됐다.최근 마일리지 마케팅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전자상거래 덕분이다. 마일리지 포인트는 영원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포인트의 혜택을 크게 하자니 기업에 부담이 되고 적립금 액수를 줄이자니 소비자에게 영 매력을 알릴 수 없다.e마일리지는 그런 면에서 기존의 마일리지 포인트와 차별화된 특징을 갖는다.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전자상거래는 소액결제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예컨대 게임, 아바타서비스 등 온라인콘텐츠사업은 일종의 ‘푼돈 비즈니스’다.인터넷에 쌓인 적립금은 사이버화폐이기 때문에 쌓인 즉시 쓸 수 있다는 점도 오프라인과 다른 점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적립금을 일정액까지 모아야만 활용할 수 있게 돼 있다. 당연히 적립기간은 길어지고 소비자는 지치게 된다는 이야기다.마일리지는 쌓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 입장에서 마일리지는 추가 매출액 발생 없이 언젠가는 소진해야 하는 서비스 비용이 되기 때문이다.항공사의 경우도 쏟아지는 비난을 ‘마일리지 사용처의 다양화’라는 새 카드로 무마하려는 추세다. ‘마일리지 공제로 직영호텔에 숙박할 수 있다’고 고객을 유혹하는가 하면 공항 라운지 이용에도 마일리지 공제를 조건으로 달았다.통합 마일리지가 선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SK(주)의 오케이캐쉬백이 대표적이다. 쉽게 포인트를 모으고 마일리지 사용처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99년에 시작됐다.포인트 소비촉진 차원에서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일명 ‘마일리지 스와핑’이 마일리지 마케팅에 기여한 바도 상당하다.네티즌 사이에 ‘마일리지 스와핑’이라고 불리는 포인트 통합 사이트는 말 그대로 각각 다른 업체를 통해 쌓은 적립 포인트를 하나로 합칠 수 있게 한 인터넷 사이트를 말한다. 그만큼 사용가능한 포인트를 쌓는 시간이 단축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사실 마일리지 마케팅을 시도하는 기업이 고려해야 할 점은 사용촉진뿐만이 아니다. 마일리지가 로열티 마케팅의 일환임을 기억해야 한다. 소비자가 적립금을 쌓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마련한 소정의 양식에 신상명세를 기입해야 한다. 이로써 기업은 고객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얻게 된다. 따라서 기업은 이를 활용해 고객감동 마케팅으로 이어가야 한다.마일리지를 활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마일리지가 매출을 통해서만 발생된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즉 포인트 적립을 통해서 엄청난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오산이다. 기업이 주는 서비스를 즐긴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같은 맥락에서 최근 마일리지를 기부문화로 이어가는 마케팅 방식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SK텔레콤은 가입자들이 해마다 열리는 마일리지 기부 행사에 참여해 기부 신청을 하면 이를 현금으로 환산해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할 예정이다. 또 KTF는 가입자가 언제든지 직접 용도를 정해 기부할 수 있게 하고 있다.아시아나항공은 고객들의 마일리지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향에 보내주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하던 마일리지는 이제 온라인을 중심으로 화폐의 개념으로 인식되는 과도기에 서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도 준(準)화폐인 마일리지 포인트를 ‘알토란’같이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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