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가르치고, 문화로 포장하니 ‘척척’

와인시장 2010년 1조원 기대 … 족집게 수요 파악 ‘숙제’

대형할인점 롯데마트 부평점에 근무하는 양정관씨(29)는 최근 색다른 경험을 했다. 와인에 관한 강의를 근무시간에 들을 수 있었던 것. 직무교육 중 일부로 소믈리에의 와인강의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양씨는 “평소 다양한 직무교육을 받아왔지만 와인에 관한 내용을 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와인에 대한 고객의 관심이 커지다 보니 판매자인 직원들도 관련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던 터”라고 들뜬 감정을 나타냈다. 와인 열풍이 대형할인점 직원들의 교육 커리큘럼까지 바꿔놓은 것이다.우리나라 와인시장이 불황 속 호황을 누리는 것은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의 전파와 더불어 와인업계만의 독특한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양씨가 받은 교육이 하나의 예로, 와인업계의 가장 특징적 마케팅은 바로 ‘교육 마케팅’이다.대개 와인하면 처음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외 와인업체는 물론이고 국내 수입업체 모두 와인을 알리는 일에 마케팅 전략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양씨의 사례도 할인점에서 와인판매가 무시할 수 없는 품목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경우다.이 같은 교육 마케팅의 가장 흔한 사례는 와인 메이커스 디너(Wine Maker’s Dinner).와인 메이커스 디너는 말 그대로 와이너리(와인농장) 농장주나 와인메이커가 직접 만든 와인을 음식과 함께 고객에게 소개하는 자리다. 보통 코스요리와 대여섯 가지 이상의 와인이 함께 제공돼 비용 측면에서 혜택이 있다. 하지만 비용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유명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얘기를 와인메이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배움의 시간이 마련되는 셈이다.JW메리어트호텔의 레스토랑 JW’s 그릴에서 근무하는 호텔 식음료부 손두환 과장은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 대한 와이너리의 요청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면서 “한달에 2~3건 정도 제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바의 경우 위스키 판매가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와인수요가 늘고 있다”며 “레스토랑의 경우도 저녁식사 예약고객 중 70%가 와인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몇몇 호텔에서 진행됐던 이 같은 와인 메이커스 디너는 이런 장점을 앞세워 최근에는 소규모 와인바나 레스토랑으로까지 번졌다. 와인 메이커스 디너는 와인메이커들이 고객의 의견을 다음해 와인제조에 반영할 수 있는 이른바 ‘피드백’ 기능이 탁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에는 아예 대기업에서 와인 전문업체에 와인교육을 의뢰하는 일도 많아졌다.와인은 상품이라기보다 문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와인을 어려워하는 것도 어울리는 문화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점이 정작 와인제조ㆍ수입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문화로 접근하면 마케팅 방식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와인 수입업체들이 각종 파티나 VIP 행사 협찬에 종종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매년 11월 셋째주 목요일 밤 12시에 선보이는 프랑스 와인 보졸레누보의 경우 각종 파티를 통해 크게 이슈화된다. 보졸레누보 파티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지만 파티 형식 행사가 젊은 소비자들이 나름의 와인문화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최근 와인업체들은 한국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이슈화하고자 애쓰고 있다. 와인 등 수입주류를 유통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 김종오 마케팅부장은 “와인은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와인 대중화를 위해 한국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고객에게 제시하는 것도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와인업체들의 파고들기식 ‘다이렉트 마케팅’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 중 하나다. 동호회와 연계한 활동이 활발하다. 우리나라 와인시장 흐름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와인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와인동호회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데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특정 와인이 유행아이템으로 떠오르는 일도 순식간이다. 와인유통업체 나라식품의 나윤정 대리는 “와인동호회가 마니아층만 모인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이 와인 매출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다만 국내에 와인전문가들이 확장된 시장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따라서 동호회를 통해 올바른 정보가 확산되게 하는 일도 와인업체들이 할일이라는 주장이다. 일종의 적극적 위기관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최근에는 대기업들도 하나둘 와인시장 진출을 넘보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중소 와인업체 직원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가 하면 또 일부에서는 이미 시장조사에 나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와인업체들은 와인시장이 2010년께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마케팅은 기다림과 선택의 미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장기적인 시장으로 보고 시장수요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쉽고 저렴한 와인으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고급 와인 위주의 VIP마케팅도 늦춰서는 안되는 게 와인 마케팅이다.바이런은 ‘와인은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고, 오래된 것을 새롭게 하고, 싱싱한 영감을 주며, 일의 피곤함을 잊게 한다’고 했다.와인에 대한 명언은 이처럼 대부분 행복과 사랑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결국 와인의 마케팅 전략이 이 같은 와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축제의 술’ ‘기쁨의 술’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매출증대를 이루고 있는 와인업체들의 마케팅 노력은, 매출 수치의 크고 작음과는 별개로 불황기인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만은 분명하다.INTERVIEW 필립 라페 올란도윈담 수석와인메이커“한국인들의 와인사랑 놀라워”해외 와인업체들이 한국시장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요즘이다. 이를 반영하듯 유명 와인메이커들이 방한해 설명회를 갖는 일이 많아졌다.6월 초 한국을 찾은 필립 라페 올란도윈담 수석와인메이커(64)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호주 올란도윈담사의 수석와인메이커로 2002년에는 ‘호주 최고의 와인메이커’로 임명된 적이 있는 호주산 와인의 국제홍보대사다. 신제품 제이콥스 크릭 리저브 와인 출시를 기념해 방한했다.라페씨는 “와인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레드와인이 인기 있다는 사실에 감동받았다”고 밝혔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에서 달콤한 화이트와인이 유행하는 것과 달리 뒤늦게 와인문화를 접한 한국인들이 레드와인의 깊은 맛을 느끼는 게 신기하다는 것이다.그는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와인시장은 성장잠재력이 무한하다고 강조했다.“와인은 사회적인 행사에 어울리는 술입니다. 식사의 일부인 동시에 문화이기 때문에 라이프스타일이 각기 다른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와인메이커는 와인 제조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포도 수확시기를 정하고 와인을 출시할지, 또는 좀더 숙성시킬지를 결정하는 게 와인메이커가 할일이다. 동시에 와인을 이해시키는 일도 그의 중요한 임무다.“최근 와인 메이커스 디너가 자주 열리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와인을 소비자에게 알립니다. 와인은 정확한 조리법에 따라 만든다기보다 경험과 판단으로 제조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라페씨는 40년 넘게 와인메이커 일을 하고 있다. 100만번쯤 와인을 시음했을 그에게 좋아하는 와인을 물었다.“와인은 무엇을 마시느냐보다 누구와 어떤 자리에서 마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저 역시 어느 한 가지를 좋아한다고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그는 또 소비자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전했다. 와인을 어렵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 때문인 것 같다”며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 와인”이라고 덧붙였다.마지막으로 초보자를 위한 추천와인을 묻자 라페씨는 “지식의 홍수시대지만 결국 선택은 기호대로 하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되 처음에는 무난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는 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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