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부대’옛말…고급두뇌 속속 새둥지

의사·회계사·박사 접고 보험영업맨 변신

몇 해 전 86아시안게임의 육상스타 ‘라면소녀’ 임춘애씨가 삼성생명의 보험설계사가 돼 화제에 올랐다. 90년대 당시에는 보험설계사들은 주로 ‘아줌마부대’로 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색 경력을 지닌 임씨의 진출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었다.90년대 말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이 종신보험 돌풍을 일으키며 보험설계사업계는 급속도로 탈바꿈했다. 대졸 학력에 2년 이상의 직장경력을 지닌 남성 보험설계사들이 각계각층에서 펼쳐 온 활동을 뒤로 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찾아 보험업에 몰려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졸여성도 보험설계사 업계에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이제는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보험설계사가 되겠다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의사나 회계사, 변호사 등 ‘사(士)’자 고소득 전문직이나 외국 명문대학 MBA 출신이 보험설계사로 변신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지난해 9월 국세청은 국회 재정위원회에 전문직 종사자의 연봉수준을 국정감사자료로 제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전문직 수입금액 1위는 5억5,000만원의 변리사였다. 2위인 관세사는 연간 3억6,300만원의 수입을, 3위 변호사는 3억4,000만원, 4위 개업의는 2억9,4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회계사는 5위를 차지하며 2억4,700만원, 세무사는 6위로 2억1,300만원, 법무사는 7위로 1억3,500만원의 평균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일반 샐러리맨으로서는 부러울 따름인 고액 연봉을 받던 이들이 보험설계사로 나선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이들은 입 모아 “실적만큼 받는 수입체제를 갖춘 보험설계사 직업에 매료됐다”고 밝힌다.외국계 생명보험사인 ING생명과 푸르덴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뉴욕생명에는 회계사 출신보험설계사들이 맹활약 중이다. ING생명은 전직 의사인 보험설계사도 2명 보유하고 있다. 종합병원 내과과장 출신 강신재씨와 연세대 가정의학과를 졸업하고 5년 이상 의사로 일해 온 정인철씨가 이들이다.ING생명에는 파일럿 출신 설계사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부기장 출신으로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상윤씨가 그 주인공이다.보험전문 판매법인에서는 이들 고소득 전문직 출신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보험회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백화점’인 이들 법인은 대형보험사에 비해 규모가 작은 대신 고도로 전문화된 인력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판매법인에서는 ‘사’자 출신들이 전업보험설계사로 일하기보다 업무제휴 형식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보험전문 판매법인 TNV금융컨설턴트그룹도 ‘사’자가 전문직으로 무장하고 있다. TNV 재무분석팀에서 근무하는 류주현 공인회계사는 다른 회계법인에 소속돼 있는 동시에 TNV에 몸담고 있다. 류공인회계사는 “회계사도 영업이 필수인 시대가 왔다”며 “개인자산관리시장의 성장성이 상당히 높으며, 그중에서도 핵심은 보험”이라고 말했다. 또 “회계사는 회계ㆍ세무 업무 외에도 투자, 금융, 재테크 등 종합 컨설팅 서비스를 할 수 있어야 차별화, 고부가가치화될 것이라 확신해 TNV에 합류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는 동기 회계사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 아니지만 3~4년 후에는 확연히 높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TNV에는 변호사도 활동하고 있다. 강승룡 KEY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TNV와 업무제휴 형식으로 프로젝트별 법무 컨설팅을 제공한다. 한 달에 서너 번 고객과의 미팅에 합류해 주로 법무자문을 한다. 강변호사는 “변호사업계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사무실에서 고객을 기다리기보다 고객을 직접 만나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 백정선 대표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으로 컨설팅그룹을 만든 뒤부터 고객반응이 대단하다”고 전하고 “고객은 법무 및 재무ㆍ회계 컨설팅이 포함된 수준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회사는 신규 수요창출에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상한선 없는 성과위주 연봉에 매료”힘든 공부 끝에 합격한 회계사나 수년간 인고의 과정을 거친 의사 등이 제 직업을 버리고 뛰어드는 보험설계사의 세계. 그렇다면 보험설계사는 얼마나 벌까.보험사들은 매해 5월 보험영업 실적이 출중한 보험왕, 보험여왕을 뽑는다.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연봉 1위를 차지한 설계사에게 고급승용차와 수천만원의 상금을 주기도 한다.올해 시상식을 개최한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보험판매왕을 집계한 결과 이들의 평균 매출은 연 32억원이었다. 생보업계의 설계사가 43억5,000만원, 손보업계 설계사는 9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평균 소득은 생보업계 3억8,000만원, 손보업계 2억원. 생보ㆍ손보업계를 통틀어 1위를 차지한 예영숙 삼성생명 설계사는 무려 18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예설계사의 연봉은 20억원 이상이다.그러나 모든 보험설계사가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실적으로 평가받는 이들은 계약을 못 올리면 지갑도 텅 빌 수밖에 없다. 전체 2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보험설계사 가운데 연소득 7,600만원이 넘는 설계사는 3,319명선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에 본부를 둔 백만달러원탁회의(MDRT) 한국협회가 지난 3월 말 현재 연소득 7,600만원(MDRT 가입 자격) 이상인 설계사를 집계한 결과다. 수입이 6만6,000달러(약 7,600만원)가 넘고, 가입자와 분쟁 중인 계약이 한 건도 없어야 하는 MDRT의 전세계 70개국 회원은 2만7,729명. 미국이 1만4,682명으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한국이 2위를 차지했으니 한국 보험설계사의 높아지는 위상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보험업계는 또한 지난해 5월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린 생명보험 설계사를 집계한 적도 있다. 삼성생명 등 12개 생보사를 대상으로 2002년 실적으로 바탕으로 총산해 연소득이 1억원을 넘은 설계사를 파악한 결과 총 3,304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집계 대상에서 빠진 푸르덴셜생명과 ING생명, 알리안츠생명 등도 포함하면 생보업계 전체의 연소득 1억원 이상 설계사는 4,000명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10명 가운데 0.17명꼴인 고소득 보험설계사그룹에서 전문직 출신 설계사들이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의 활약으로 보험설계사에 대한 기존의 인식이 뒤바뀔 것이라는 점. 하나같이 “전문지식으로 무장해 보험영업시장을 점령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는 점도 뚜렷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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