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 ‘청춘을 돌려다오’

지난 5월10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블랙먼데이’가 증시를 강타했다. 900선을 넘었던 주가지수는 700선대로 추락했고 개인투자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일부 객장은 아예 개점휴업 상태에 빠지는 충격을 맛봤다.증시추락의 요인은 다양했다. 불안정한 해외변수에다 국내경제 또한 극도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리스크가 커지자 외국인투자가들은 ‘셀 코리아’(Sell Korea)로 대응했고, 허약한 증시는 와르르 무너지는 나약함을 보였다.때를 맞춰 여기저기서 외국인에 휘둘리는 증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특히 졸지에 폭탄을 맞은 개미들(개인투자자들)은 “은행이나 보험사,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도대체 뭐하는지 알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현재 국내증시에서 외국인투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43%를 오르내린다. 삼성전자 등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투자를 하고 있고, 국내증시에서 ‘큰손’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그 비중이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조만간 50%를 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반면 맞수로 불리는 기관투자가 비중은 16%선에 머물고 있다. 외국인의 30%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그 수치가 해마다 쪼그라들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선진국들이 40~50%를 넘나들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명함을 내밀기가 쑥스러울 정도다.지난 96년에는 30.7%를 기록했었고, 그 이전에는 40%선에 이르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부 전문가들은 아예 “한국증시에 기관투자가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한다.기관투자가가 ‘조막손’으로 전락한 이유는 간단치 않다. 복합적 요인이 뒤얽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부실채권 정리에 매달리면서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한 결과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너무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다.경제수장인 이헌재 부총리조차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관들이 안전 위주로 자산을 굴리다 보니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외국인들이 주식의 40% 이상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강조하고 “기관투자가들이 한국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반대의견을 낸다. 기관투자가의 책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투자여건이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기관의 돈을 움직이는 운용자들의 경우 매달 투자결과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리스크가 큰 주식투자에 적극 나서겠느냐는 의견이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기관들의 경우 주식투자를 하다가 크게 손해 본 사례가 몇 차례 있어 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강조했다.일각에서는 연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식투자에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주식투자를 완전 허용하는 쪽으로 규제를 풀고 각 연기금의 기금법 역시 수정돼야 한다는 논리다.그도 그럴 것이 외국의 사례를 보면 연기금 전체 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59%, 영국 61% 등 매우 높다. 연기금이 증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 자릿수인 4%에 불과하다. 주식투자는 그야말로 명목상 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최근 정부에서 규제를 풀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결과가 기대된다.외국인 독주 문제 많아기관투자가들이 다양한 주식연계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컨대 비과세상품을 허용하는 등 적절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401K로 대변되는 기업연금을 통한 주식투자 확대가 기관투자가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장기투자에 대한 중요성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패턴이 단기에서 장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치상으로 봐도 수명이 1년이 안되는 초단기 펀드비중이 57%로 과반수를 차지한다. 펀드마저 극심한 단기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기관투자가들에게 건전한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이에 비해 3년 이상 장기펀드는 16%에 불과한 실정이다. 10개 중에 1~2개만이 장기펀드에 속하는 셈이다. 주상철 대한투자증권 경제연구소장은 “대부분의 기관들이 펀드자금을 단기로 운용하다 보니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며 “운용성과 평가의 개선 등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기관투자가는 주식시장의 안전판 외에 기업경영 감시 등 공적인 역할도 담당한다. 기업이 궤도를 벗어나 딴 짓을 하는 경우 이를 적극 제지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전념하도록 견제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기관투자가의 경우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증권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최근 들어 제 목소리를 내는 사례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도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국내증시가 특정세력에 의해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외국인의 독주는 전혀 반갑지 않고 증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투자주체들의 견제와 보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욱 강화돼 한국증시의 견인차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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