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투자 ‘활짝’…한류 열풍도 ‘후끈’

많은 전문가들과 연구기관들이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을 경고하는 가운데 급기야는 작금의 국제금융시장 상황이 1987년의 ‘블랙먼데이’(Black Monday)와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난 5월21일 영국 가 세계적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캐피털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것이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우려와 달러가치 폭락,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이자율에 대한 혼란스러운 메시지 등이 당시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때도 미국의 경상수지적자 확대와 달러약세, 인플레이션 우려, 부동산 붐의 퇴조,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 체제의 출범 등이 있었다.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자산시장이 숨을 죽이고 있다. 이 가운데 미술품시장은 거꾸로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의 세계 미술품시장 상황이 당시와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만 봐 넘기기에는 예사롭지 않다.당시의 세계 미술품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1980년대 초입 약세를 보이던 미술품시장은 1983년 들어서면서부터 상승기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미술품 투자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블랙먼데이’ 이후였다. 이때의 열기는 1990년까지 이어지는데, 이 기간을 미술품시장 전문가들은 ‘광란의 시기’라고 부를 만큼 미술품 가격은 폭등에 폭등을 거듭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주식과 부동산 투자 열기가 식으면서 본격적으로 미술품 투자가 시작됐으며 이후 1993년 무렵까지 평균 10배 정도 가격이 올랐다.이런 현상에 대한 재미있는 학문적인 분석이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이나 주식시장 붕괴 같은 실물 및 금융부문의 재난은 거꾸로 미술품에 대한 투자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메이 모제스 미술품가격지수’(Mei/Moses Fine Art Index)를 만든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메이 교수와 모제스 교수는 1875년부터 2001년 상반기까지 126년간 겪었던 4차례의 전쟁과 27번의 경제불황이 미술품 가격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연구는 전쟁이나 주식시장 붕괴시 미술품이 자산가치를 보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1차 세계대전 시기인 1913~1918년에 영국과 미국의 주가는 25% 정도 떨어졌다가 1920년에는 1913년의 94%까지 회복됐다. 반면 같은 기간 미술품 가격은 주가보다 낙폭이 훨씬 적었고 1920년에는 1913년 가격의 125%까지 올랐다. 2차대전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2000년에는 주가는 떨어졌지만 미술품 가격은 16%나 올랐고 2001년 들어서도 주가는 계속 약세를 보였지만 미술품 가격은 상반기에만 15%가 올랐다고 이 연구는 분석했다. 2001년의 9·11테러 직후의 위기 속에서도 미술품시장은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호경기는 이어지고 있다.최근의 미술품시장 붐은 뉴욕이나 런던 같은 미술품시장의 본바닥보다 신흥부국들 쪽에서 더 뜨겁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인도, 러시아, 중동이다. 이들 지역의 높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본 신흥부자들이 예술에 눈을 뜨면서 앞다퉈 미술품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 지역 저명 작가들의 작품가격은 최근 2~3년 동안 10~20배 올랐다.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부국들의 미술품시장에 대해 심층보도하면서 이들 국가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게 될 위상을 생각하면 이들 미술품시장은 아직도 저평가돼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분석했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이제야 미술품을 투자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인근 아시아를 포함한 해외 미술품시장이 이처럼 뜨겁게 달아오를 때도 국내 미술품시장은 10년이 넘는 오랜 침체의 늪에서 여전히 찬바람만 흉흉했다. 최근 해외경매에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국내 시장가격의 낮게는 2~3배, 높게는 20배가 넘는 가격에 팔리면서 겨우 미술품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지난 5월 말 홍콩 크리스티의 경매현장을 사례로 들어보자. 홍콩컨벤션센터라는 300평쯤은 되는 넓은 공간에서 5일간 11차례에 걸쳐 이뤄진 이 경매는 연일 400~500명은 족히 되는 참가자들로 붐볐다. 이 경매의 하이라이트였던 5월28일의 경매는 ‘현대 및 동시대 동남아미술’(Modern and Contemporary Southeast Asian Art), ‘20세기 중국미술’(20th Century Chinese Art), ‘아시아 동시대미술’(Asian Contemporary Art)의 세 부문이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뉘어 열렸다. 500여점에 가까운 출품작들이 거의 다 팔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록이 수립되면서 참가자 모두를 열광케 했다. 홍콩에서 열리는 경매였지만 참가들의 과반수가 서양인을 포함한 비중국계 아시아인들이었다.한국작품에 대한 반응도 높아 32점의 작품 중 31점이 낙찰됐다. 대개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높게 팔렸다. 가장 놀라운 것은 김동유의 작품이었다. 그의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추정가 7만~10만 홍콩달러)가 높은 추정가의 22배인 220만 홍콩달러(약 28만4,000달러)에 팔린 것이다. 수수료를 포함하면 약 3억2,300만원으로 국내에서 팔리는 가격의 30배쯤이다. 우리나라 젊은 작가 중 단연 최고의 기록으로 박수근이나 김환기와 같은 최고 작가에 접근하는 것이다.이 기간에 서울에서는 국내외 100여개 화랑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견본시(Art Fair)인 한국국제화랑미술제(KIAF)가 열리고 있었다. 1,000만원대에 걸렸던 김동유의 작품은 다음날 모두 철수됐다. 이 소식을 접한 화랑이 판매를 보류한 것이다. 김동유는 1965년생의 젊은 작가다. 일본이나 중국의 젊은 작가 중에 작품 한 점이 10억원 전후해 팔리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한국작가에 대한 해외에서의 이러한 평가는 미술품에서의 한류 열풍의 예고편쯤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런 조짐은 진작부터 있었다. 지난 2004년 10월 한국작가의 작품 8점이 처음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돼 모두 낙찰됐다. 2005년 들어서는 2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고영훈과 배병우의 작품이 고가에 낙찰됐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미술품에 대한 해외에서의 인기는 일과성이 아님이 확인됐다. 지난 봄·가을의 홍콩 경매에서 한국작품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지난 3월31일 세계 미술품시장의 중심인 뉴욕에서 ‘아시아(한·중·일 3개국) 동시대작가미술’(Contemporary Art Asia: China, Japan, Korea) 경매가 있었다. 아시아 미술의 열풍을 간파한 소더비가 기획한 경매로, 예상과 기대대로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경매작품 245점 중 90%인 220점이 낙찰됐고 1,320만달러의 낙찰금액은 소더비의 예상을 70% 가까이 초과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장 샤오강은 그의 작품이 97만9,200달러(약 9억5,000만원)에 팔리면서 아시아 최고 비싼 젊은 작가로 등극했다(이 기록은 6주 후인 5월11일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이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14만달러에 팔림으로써 바로 깨졌다). 중국작가들의 위세에 가려 빛이 바래긴 했으나 한국작가들도 출품작 25점 중 23점(92%)이 팔리는 성과를 올렸다. 이러한 열기가 지난 5월28일의 홍콩 경매로 이어진 것이다.세계 미술품시장에서의 한류 열풍은 국내로 역류 중이다. 이제 국내에서도 미술품 투자시대가 열리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미술품이 주식이나 부동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체투자자산(Alternative Asset Class)으로 자리잡고 있다. 벌써부터 적잖은 사람들이 미술품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술품 경매가 재테크시장에서 각광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김순응·K옥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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