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직 반발 딛고 ‘소신정책’ 펼쳐

경제학자서 변신 1년4개월간 재임, 관료사회에 신선한 자극 줘

조순 전 경제부총리(77)는 이번 조사에서 최고의 경제관료로 이름을 올렸지만 원래는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저자로 한국경제학의 수준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그에게 경제학을 배운 제자들이 한국경제의 각 분야에 골고루 포진, 산업화 시대에 큰 역할을 했다.조 전 부총리는 서울대 강단만 무려 22년을 지켰다. 1967년부터 88년까지 경제학과 교수 등으로 재직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가 88년 1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일대 변신을 시도한다. 경제학 분야 최고의 학자에서 한국의 경제정책을 주무르는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 당시 관가에서는 ‘과연 학자출신인 조 부총리가 관료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가 큰 화제가 될 만큼 그의 부총리 취임은 파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조 부총리는 취임 이후 관료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자기 몫에 대한 욕구의 자제’를 강조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역설했다. 아울러 강력한 정책추진 의지를 나타내며 보신주의에 빠져 있던 경제팀에 큰 자극을 주기도 했다. 당시 국민들은 이런 조 부총리의 움직임에 큰 박수를 보냈고, 점차 믿음을 갖게 됐다. ‘포청천’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전파하는 데 성공했던 셈이다.아울러 그는 “언제든 그만둘 준비가 돼 있다”며 뚝심있게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보적인 경제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던 셈이다. 특히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누누이 “한국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평가를 받기 싫다”며 재임기간 중 각종 정책을 나라와 국민을 위해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농업개혁 등에서 굵직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또 하나 조 부총리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금융실명제다. 그는 취임 이후 노태우 대통령한테 특명을 받아 금융실명제 실무작업을 측면에서 크게 지원했다. 나중에 변수가 생겨 재임 중에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조 부총리는 금융실명제의 후원자이자 경제부총리로서 실무작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실명제는 결국 많은 반대를 딛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93년에야 빛을 봤다.하지만 이런 조 부총리의 의욕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빛이 바래기도 했다. 기존의 관료조직과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고, 88서울올림픽 때 활짝 피어올랐던 경기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여기저기서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등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이 과정에서 관료조직과의 불화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특히 그는 내부결속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자주 궁지에 몰렸다. 경기부양 문제부터 한국중공업 매각문제에 이르기까지 관료조직과 끊임없이 의견대립을 보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각에서는 학자출신 경제부총리를 기존 관료조직이 인정하지 않는 측면도 강했다고 말한다. 학자출신과 관료출신들이 어울려 서로 약점을 보완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또 재무부와의 갈등도 심각해 많은 우려를 낳기도 했다. 당시 경기진작을 위해 금리인하 문제가 불거졌고 조 부총리는 조기실행을 권고했으나 재무부는 “아직 때가 아니다. 우리에게 맡겨달라”며 조 부총리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또 당시 재무부가 주도한 12ㆍ12증시부양 대책 수립과정에서 조 부총리는 전화로만 간단하게 보고받는 등 철저하게 외면당하기도 했다.결국 조부총리는 취임 1년 4개월여 만인 90년 3월 경제사령탑 자리에서 물러났다. 새로운 경제팀을 만들려고 했던 뜻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지만 소신있는 행보로 기득권에 얽매여 있던 관료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학자출신 경제부총리로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약력 : 1928년 강원도 강릉 출생. 49년 서울대 상과대 전문부 졸업. 67년 미국 버클리대 경제학 박사. 67년 서울대 상대 부교수. 70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78년 초대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88년 경제기획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 92년 한국은행 총재. 94년 이화여대 석좌교수. 95년 서울시 초대 민선시장. 97년 민주당 총재. 98년 한나라당 총재. 98년 15대 국회의원. 2002년 명지대 경제학과 석좌교수(현). 2002년 서울대 명예교수(현). 2004년 SK(주) 사외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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