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가치 공유하는 관행 뿌리내려야

경영철학이란 표현을 끄집어내는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치 ‘또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한다’는 식의 반응이다. 그러나 건강한 기업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경영철학과 공유가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제도만을 벤치마킹해 도입한다면 그 제도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문화될 확률이 99%이다. 그러나 경영철학과 공유가치가 확실하게 뿌리내렸다면 형태는 달라질 수 있어도 철학과 가치가 다양한 프랙티스를 통해 면면히 이어진다. 100대 기업의 많은 사례를 접하면서 정말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단순한 프랙티스가 아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철학과 가치이다.“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미를 찾기 위해 그들의 삶을 바칠 것이다.”온라인 트레이딩으로 유명한 찰스 스와프는 직원이 1만8,000여명에 달한다. 데이비드 포트럭 사장이 하는 말에서 의미를 달리 표현하면 올바른 철학이나 가치가 된다. 찰스 스와프는 직원들간의 동료애를 장려해 왔다.어느 날 회사는 위중한 병을 앓는 직원들이 병가가 너무 짧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회사는 이런 직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휴가 나누기’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직원 상호간에 자신의 휴가 일수를 기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특정한 사람을 지정해 기부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일반 병가펀드에 신탁할 수도 있다. 심각한 병을 앓고 있거나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직원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시간이다. 서로에게 도움의 손길을 나눠줘 회사 전체가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룬 것은 물론이다. 찰스 스와프는 다른 회사를 벤치마킹해 ‘휴가 나누기’와 같은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동료애라는 공유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제도를 고안하게 되고 그것이 프랙티스로 정착된 것이다.현실만을 되풀이해 얘기하는 것은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원들은 보다 많은 급여와 다양한 복지 혜택에 관심을 둘 것이다. 회사는 이윤을 내면서 직원에 대한 복지는 가급적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이런 입장의 차이가 대다수 기업 현장에서 표출되는 일반적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만을 얘기하는 것은 갈등을 증폭시킬 뿐이다.자일링스는 세계적인 반도체기업이다. 비메모리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개발이 주종목이다. 최고경영자(CEO)인 윔 로랜츠는 ‘언제라도 볼 수 있는’(Visible) 동료이다. 기업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이 회사의 성공을 위해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그는 아주 독창적인 방식들을 개발해 냈다.‘윔에게 물어보기’(Ask Wim Program)는 직원들이 어떤 질문이든 자유롭게 던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윔은 매달 모아진 질문에 충실한 답변을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전혀 독창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웬만한 기업들이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이 같은 프랙티스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윔이 해마다 사무실을 옮긴다는 사실을 알면 의미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윔은 보다 많은 직원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알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그의 사무실을 옮긴다. 영업부, 생산부, 기획부 등으로 그는 책상을 들고 스스로 찾아다닌다.단순한 제도는 별 의미 없어오픈도어(Open Door) 제도는 한때 국내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했다고 발표했던 ‘사장실 문호개방 정책’이다. 그러나 지금 그 제도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얼마나 사장과 직원들간의 대화를 활성화시키는 데 도움이 됐는지 알 길이 없다. 보기에 그럴듯하다고 다른 기업의 제도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그 끝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다. 정말로 직원들과의 대화, 구성원의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공유가치라고 느껴진다면 윔처럼 책상을 들고 돌아다니면 된다. 구내식당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날 때마다 편안하게 대화하면 된다.간혹 큰 기업들은 ‘직원이 1만명이 넘는데’, ‘업종이 틀려서’라는 식으로 핑계를 대려고 한다. 직원이 100만명이 넘는 월마트도, 수십만명인 페덱스도, 14만명에 달하는 메리어트도 경영철학과 공유가치를 확립해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메리어트인터내셔널은 호텔, 휴양시설 등 다양한 접객시설을 체인으로 갖고 있는 글로벌기업이다. 빌 메리어트 사장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직원은 항상 존중받으며 공정하게 대우받을 것이란 문서에 서명한다. 신입사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권리와 다른 직원의 권리를 이해하는 과정이다.이는 존중과 공정성에 대한 철학을 담은 것이며, 이렇게 철학만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얘기 정도로 치부하고 덮어버린다. 그러나 빌의 일화를 이해하면 철학이 어떻게 프랙티스로 정착되는가를 알 수 있다. 호텔의 집무실로 들어갈 때마다 빌은 자동차에서 내린다.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도어맨과 악수하며 ‘당신은 회사의 첫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을 해주고 있다’고 격려를 잊지 않는다. 도어맨을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는 정착된 프랙티스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 철학과 가치를 중요시하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다.사우스웨스트항공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가를 인재채용의 가장 큰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함께 일할 동료들이 직접 면접에 참여하고, 행동인터뷰란 방식을 통해 채용 대상자의 과거 행동패턴을 철저히 알아낸다. 고객을 즐겁게 하는 공유가치에 대해 얼마나 적응할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를 파악하려는 것이다.회사는 직원들에게 서로를 배려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다른 업무의 내막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의 날’을 만들어 시행할 뿐이다.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직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일터는 이들 기업처럼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정착된 프랙티스가 다양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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