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고충, 선후배가 함께 풀어요”

“요즘 커리어우먼은 가정과 직장일,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하지요. 멘티와 주고받는 대화의 상당부분도 가정과 직장의 조화에 관한 겁니다. 고비마다 서로 의논하면서 더 좋은 해결책을 이끌어 내곤 해요.”삼성SDS에서 교육콘텐츠개발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윤경희 팀장(46)은 다른 부서 과장급 후배 여사원 1명과 멘토ㆍ멘티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SDS가 지난해 7월부터 사내 여성사이트 ‘SDSWomen.com’을 기반으로 사이버 멘토링을 시작하자 기꺼이 멘토로 참여, ‘특별한 관계’의 주인공이 됐다. 7,000여명의 직원 가운데 10명에 불과한 여성 부장인 만큼 후배를 도와주고 이끄는 역할을 자임한 것.“처음에는 나의 멘티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인사팀에서 서로를 연결해 줄 때 역할만 알려줬고, 주로 인터넷 대화방에서 익명의 만남을 가졌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내용, 고민의 특징 등을 통해 누구인지 짐작을 했죠. 지난 2월,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서로가 짐작한 사람이 딱 들어맞아 둘 다 크게 웃었습니다.”윤팀장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까마득히 후배라고 해서 무언가 가르치거나 의견을 앞세워서는 안된다는 것. “어떤 고민이든 해결은 스스로 해야 하므로 좋은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줄 뿐”이라는 설명이다.어느 날 멘티가 “직장 일과 가정사가 겹쳐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파트장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게 옳을까”라며 상담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윤팀장은 “일의 우선순위부터 세우고 평소에 직무 위험관리를 하라”고 조언했다고. 하라, 하지마라가 아니라 어떤 관점에서 일을 풀 것인지 말해 준 것이다. 그는 “후배와의 교류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한다”며 “나도 든든한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윤팀장은 입사 12년차로 삼성SDS 여성인력 가운데 최고참급. 그는 “전체 직원 가운데 여성인력은 16% 정도에 불과하다”며 “남성위주 조직에서 힘겨워 하는 이가 있다면 멘토링으로 풀어볼 만하다”고 권했다. “멘토링의 미덕은 긍정적 마인드로 조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정신적인 지원군을 만들어 주는 것”이란 게 윤팀장의 생각이다.박재범 한국산업은행 자금결제실 행원“무서운 상사가 든든한 형님으로”“멘토제도 덕분에 신입행원 시기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직장에 빨리 적응하고 애사심도 커졌어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선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2002년 8월 입행해 이제 3년차가 된 박재범 산업은행 자금결제실 행원(29)은 두 명의 선배 멘토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입행하자마자 회사가 열어준 성대한 ‘멘토 결연식’을 통해 최광현 국제금융실 팀장을 멘토로, 박재훈 재무관리본부 과장을 멘토 도우미로 ‘모시게’ 된 후 지금까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고려대학교 동문이어서 쉽게 편안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고.“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신입사원이 수십년 경력의 선배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멘토제도가 아니었으면 무서운 직장상사와 애송이 사원의 관계에 그쳤을 겁니다.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는 물론, 진하게 술 한잔 할 기회도 없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인생선배로, 직장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두 분을 대하고 있습니다. 술 자리에선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해요.”50대, 30대, 20대인 남자 셋이 모이는 만큼 멘토링 터전은 주로 술자리다. 직장생활 에피소드부터 개인사까지 하지 못할 이야기가 없다. 선배는 후배에게 사회생활의 지혜를 전해주고 후배는 선배에게 젊은 감각과 패기를 심어준다. 박씨는 “다른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며 “남들보다 빨리 수직교류를 경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사실 산업은행의 멘토제도는 금융권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신입행원이 연수를 마치면 모범적인 선배를 배정해 은행 업무는 물론 진로지도나 인생상담을 하도록 지원한다. 분기마다 지원금이 나와 멘토, 멘토도우미, 멘티가 부담 없이 어울리도록 하는 것도 특징.박씨는 “선배들이 직장에 대한 프라이드가 상당히 높아 늘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말하고 “선배의 가르침으로 직무 전문성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끈끈한 인연을 맺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멘토가 퇴직한 후에도 언제까지나 성실한 멘티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박기완 호텔신라 조리부 사원“멘토링 덕분에 특급호텔 요리사 꿈 이뤄”“대학시절 멘토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곳에 없었을 겁니다.”신라호텔 메인주방의 부춰(Butcherㆍ정육) 섹션에서 일하는 박기완씨(28)는 “멘토링 경험담을 말해 달라”는 주문에 경상도 사나이답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실제로 그는 멘토링 덕을 톡톡히 본 사람이다. 멘토링 덕분에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도전의식도 생겨 ‘선망의 대상’ 특급호텔 요리사가 됐기 때문.경북 경산시 대경대학 호텔조리과를 졸업한 박씨는 요리가 좋아 뒤늦게 전공을 바꾸었다. 건축학과에 다니다 제대 후 다시 대학입학 시험을 봐 호텔조리과에 들어간 것. 그러나 막연히 요리가 좋았을 뿐,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 스스로 “놀기 좋아해서 학업에 그리 열심이지 않았다”고 털어놓을 정도다.박씨가 모범생으로 ‘변신’한 것은 신라호텔에서 10여년을 근무한 하대중 교수와 멘토링(당시엔 전담 지도교수제)을 하면서부터였다. 수시로 연구실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하교수와 요리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함께하면서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박씨는 “하교수를 만나기 전에는 서울에 큰 호텔이 롯데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다”며 “호텔 요리사의 세계를 간접 체험하면서 큰 직장에서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특급호텔로 목표를 정한 박씨는 2000년 7월 신라호텔 실습생 모집에 응시, 선발된 후 엄격한 시험절차를 거쳐 2001년 1월 정직원이 됐다. 지금은 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1년에 서너 번 학교를 찾아 스승에게 인사하기를 빼놓지 않고 있다. 하교수의 전 직장인 신라호텔의 새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한수 가르침을 받아오기도 한다. 하교수가 현역 요리사 시절 활용하던 레시피를 받은 날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하교수 역시 방학 때면 신라호텔 주방을 찾아 제자의 활약상을 직접 보곤 한다.박씨는 후배들에게 멘토를 자청, 일자리 정보와 수험 노하우 등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멘토링에 대해 “99~2000년 당시는 도입단계여서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이제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정보가 취약한 지방대의 경우, 교수나 선배가 멘토링에 참여해 후배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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