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요”

“예쁘게 하고 다니라고 중학생인 손녀딸이 사준 귀걸이예요.”7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환한 미소가 돋보이는 김상학씨. 한국맥도날드 본사건물에 위치한 종로 관훈점에서 일하는 김씨는 진정한 멋을 아는 실버로 통한다.한국맥도날드에서 채용해 전국 곳곳에서 일하는 50~70대의 고령 직원 30여명 중 김씨는 최고령자. 나이는 제일 많지만 프로의식은 그 누구 못지않다.평소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손님에게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카락을 뒤로 깨끗이 묶고 화장도 곱게 한다. 맥도날드에서 정리ㆍ정돈업무를 맡고 있는 그녀는 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6시간 일하면 힘들지 않느냐고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요. 항상 웃으며 봉사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일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운동을 할 수가 있어 여태까지 감기 한번 안 걸렸을 정도로 건강해요.”2년 전부터 맥도날드로 출근하는 김씨는 아파서 결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출근시간 30분 전까지 회사에 도착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 지키고 있다. 서비스업 종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평생 서비스업에 종사해서 맥도날드에서의 업무가 친숙하다고 한다. 고향인 대구에서 약사인 남편과 함께 약국을 운영했었다.46세 되던 해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해 온 김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한정식집을 차렸다. 한정식집을 꾸려가며 1남4녀의 자녀를 키워낸 김씨는 막내딸이 대학원을 졸업하자 10여년간 해 오던 식당일을 접었다. 그후 6명의 손주를 키우며 60대를 보냈다.“손주들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3학년까지 어느새 많이 성장했죠. 무슨 일이든지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때마침 구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실시한 취업 희망 노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 참여했어요.”교육을 받고 이력서를 작성한 김씨는 서초종합사회복지회관을 찾았다. 복지회관의 추천서를 받아야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김씨는 즉석에서 거절당했다. 다른 노인 구직자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김씨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복지회관 관계자를 설득했다. 결국 추천서를 받은 김씨는 맥도날드에 이력서를 냈다.“맥도날드 아셈점을 찾았는데 점장님이 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채용할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60세 직원보다 훨씬 일도 잘하고 건강하다고 강조했죠. 결국 2002년부터 맥도날드 직원이 됐어요.”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던 김씨는 사내에서도 인정받아 본사가 위치한 관훈점으로 발령났다. 인사동과 탑골공원 등과 가까운 관훈점에는 다른 점포에 비해 실버 손님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실버 손님들은 김씨를 ‘미스김’이라고 부르며 정겹게 지낸다. 셀프서비스인 맥도날드에서 김씨는 실버 손님을 위해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한다.“1시간에 3,000~4,000원을 받아요. 월급으로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 주는 재미가 쏠쏠해요. 건강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겁니다.”나는 멋쟁이 실버 / 엄남익 서울 송파구 실버악단장“음악으로 사회봉사합니다”나이가 들면 예전 같지 않은 게 많다. 악기연주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히 금관악기는 벅차다. 젊은 사람들도 폐활량이 모자라 숨을 몰아쉬기 일쑤다. 하지만 송파구 실버악단 엄남익 단장(77)은 다르다. 그의 트롬본에서는 여전히 젊은 음악이 ‘쌩쌩’ 터져 나온다.“제 연주스타일은 열정적이지요. 비를 맞으며 연주를 해도 신바람이 납니다. 그래야 관객의 흥을 돋우지요.”고등학교 때 처음 음악을 접한 엄단장은 한 번도 음악을 쉬어본 일이 없다. 동아방송 전속악단, MBC 전속악단, 서대문교도소 악단, 6ㆍ25참전 예술인협회 악단 등 그가 이끈 악단을 꼽으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거기에 생업을 위해 했던 야간업소 악단까지 헤아리면 발가락을 동원해도 여의치 않다.“송파구 실버악단을 이끈 게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그동안의 공연 횟수가 얼추 500회가 넘어요. 요즘도 봄, 가을에는 매주 3~4회씩 공연을 합니다.”엄단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어디를 가든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는다는 악단의 연주실력이다. 성인가요에서 민요, 팝, 최신가요까지 레퍼토리가 무려 1,000곡에 달한다. 어떤 분위기든 ‘띄울 수’ 있다는 것.“우리 단원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에요. 최소 경력이 50년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해요. 악보만 주면 바로 앙상블을 만들어 냅니다.”악단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연주회 일정도 점점 빡빡해지고 있다. 구청의 문화공연과 각종 자선공연은 물론이고 ‘서울 국제 올림픽 박람회’와 ‘여주 도자기 축제’ 등 다양한 행사에 초대받고 있다. 올 여름에는 일본 공연도 잡혀 있다.“구성원이 실버라고 음악도 실버인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젊은 악단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습니다. 전자음악이 주류를 이루면서 우리 같은 악단 자체가 씨가 말랐지만요.”엄단장은 신디사이저가 등장한 80년대를 가장 어려웠던 시절로 기억한다. 전자음악에 밀려 마땅히 연주할 무대조차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 외의 길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교사생활을 한 아내 덕에 생계 걱정이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저는 행운아예요.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 이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가족에게는 미안합니다. 아직도 아내는 제가 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할 정도니까요.”엄단장은 전국의 모든 자치단체에 실버악단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자신보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기회가 없어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악단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을 돌려보낼 때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고.“나이가 들면 돈보다는 보람을 찾게 됩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사회에 봉사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봉사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나는 멋쟁이 실버 / 선우익 실버퀵서브웨이택배 실장“일을 한다는 건 축복이자 행복”“할머니라니!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나 인터뷰 안할 거야.”고희를 훌쩍 넘긴 ‘실버퀵할머니’ 선우익씨(72)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달을 나가려는 듯한 행동으로 기자의 애간장을 녹인 선우씨는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겠다’는 단서를 단 뒤에야 ‘딱’ 1시간의 인터뷰를 허락했다.“이게 내 명함이야. 궁금한 게 도대체 뭐야. 어서 시작해.”선우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과거를 흉금 없이 털어놓았다. 아버지 몰래 대학등록금을 유흥비로 탕진하고 위생하사관으로 입대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부터 남편과 둘째아들을 잃었던 가슴아픈 사연까지.“일부 사람들은 내가 퀵배달한다고 우습게 보는데, 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고 할일이 있다는 건 축복이자 행복이라고. 안 그래?”선우씨는 자신의 가방에서 손때가 묻은 배달장부를 자랑스럽게 꺼내보였다. 그의 장부에는 그동안 배달한 물건과 수량 등이 차곡차곡 기록돼 있었다.“퀵배달을 처음할 때는 길을 몰라서 엄청나게 고생했지. 하지만 경력이 쌓이니까 이제는 쉽고 재미있어.”선우씨는 2000년 10월 ‘실버퀵서브웨이택배’가 설립될 때부터 배달을 시작한 베테랑이다. 때문에 선우씨의 직함은 실장이고 동료 할아버지들이 지어준 별명인 ‘예쁜이’가 붙어 ‘예쁜이실장’으로 통한다.“하루 수입은 보통 4만원이야. 우리 회사, 아니 대한민국 통틀어 노인들 가운데 이 정도 버는 사람은 없을 거야.”선우씨는 퀵배달로 버는 돈에서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두 저축한다. “소주 2잔이 유일한 낭비”라고 말하는 선우씨는 “매달 통장이 불어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고 기뻐했다.“호주에 큰아들하고 막내딸이 살아. 둘 다 명문대 나왔고 지금은 결혼해 호주에서 살아.”선우씨는 20년 전에 교사였던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이후 ‘월부책’ 장사 등 혼자서 생계와 아이들을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선우씨는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것에 별로 큰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내년 10월이면 내가 퀵배달을 한 지 5년이 돼. 이 일을 시작하면서 5년만 하고 호주로 가겠다고 애들과 약속한 시한이기도 하지.”선우씨는 자녀들이 퀵배달을 그만두고 호주에서 함께 살자고 했던 것을 거절한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5년간 자신의 일을 하면서 지금까지 즐기지 못한 인생을 ‘소주 2잔’과 ‘퀵배달’로 충분히 느낀 표정이었다.“지하철 퀵배달이 보잘 것 없고 힘들지 모르지만 노인들이 하기에는 제격이야. 집에서 놀고 있는 노인들에게 이 일을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선우씨는 약속한 인터뷰 시간이 지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렇게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게 그의 명쾌한 답변이었다. 단골과의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는지 선우씨는 황급히 가방을 챙겨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 모습에서 20대 청춘보다 더 뜨거운 정열을 엿볼 수 있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