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벽’ 옛말…초임판사 절반이 여성

법무장관에 이어 첫 여성대법관도 눈앞에

법조계에서는 법원 쪽에서의 여성 활약이 단연 돋보인다.선두주자는 이영애 춘천지법원장(사시 13회ㆍ56) 이다. 그에게는 항상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닌다. 여성 최초 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여성 최초 부장판사를 거쳐 지난 2월에는 최초로 법원장 자리에 올랐다.이법원장은 “판사 본연의 업무인 재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법원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 것”이라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변에서 우려를 했지만 지금까지처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법원장 취임시 소감을 밝혔다.초임판사 시절 이법원장은 세상을 놀라게 한 장영자사건의 주심판사로 명판결을 남겼다. 최근에는 새만금 간척종합개발사업의 집행정지를 명한 1심을 취소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판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전효숙 헌법재판관(사시 17회ㆍ53) 도 법조계 여성리더 중 한명이다. 사법연수원 교수와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03년 8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전재판관 임명 당시 여성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환영의 성명서’를 잇달아 내놓았다. 특히 민변은 “첫 여성헌법재판관이 탄생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며 “그가 여성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적절한 인물’로서 추천되었기에 더욱 환영받을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전재판관은 판결을 통해 수사기관의 강제수사 관행을 금지했고, 기업을 상대로 한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해 준 첫 승소사례인 ‘약자보호’ 판례로도 유명하다.이밖에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여성법조인으로는 전수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시 18회ㆍ52)와 김영란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사시 20회ㆍ48)가 있다.전부장판사는 1978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해 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등을 거쳐 2002년부터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다.전부장판사의 고등학교, 대학교(경기여고, 서울법대) 후배인 김부장판사는 법관의 길도 전부장판사가 간 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81년 서울민사지방법원의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고등법원 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이들 두 판사는 이영애 법원장, 전효숙 재판관과 함께 대법관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차기 대법관 인사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대법관 탄생을 기대하는 분위기다.한편 강금실 법부무 장관(사시 23회ㆍ47)도 판사출신이다. 83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한 강장관은 96년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끝으로 법관생활을 정리했다. 3월 말 현재 전국 법원의 판사는 모두 1,821명. 이 가운데 여성판사는 171명(9.4%)으로 그 비중이 10%를 아직 못 넘고 있다.하지만 신규로 임용되는 판사의 수가 2000년 16명(16.6%), 2001년 24명(22.4%), 2002년 36명(31.5%), 2003년 54명(49.1%), 2004년 51명(45.1%)으로 늘고 있어 ‘여성판사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검찰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00년 27명에 불과하던 여성검사는 2001년부터 매년 20여명씩 늘어 올해 106명이 됐다. 3월 말 현재 전체 검사 1,514명 중 7.1%의 수준이다.국내 여성검사 1호는 조배숙 국회의원(사시 22회ㆍ48)과 임숙경 변호사(사시 22회ㆍ52)다. 조의원은 82년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해 인천지검을 거쳐 86년 판사로 전직했다. 이후 95년 변호사로 개업한 조의원은 2001년 16대 국회 당시 민주당 유삼남 의원의 의원직을 승계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전북 익산을에 출마, 경쟁자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했다.임변호사도 82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됐지만 87년 판사로 전직했고 98년부터 광주에서 변호사로 활약 중이다.현재 여성검사들의 실질적인 리더는 법무부 검찰국의 조희진 검사(사시 29회ㆍ42)다. 90년 검사로 임관한 조검사는 2002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를 거쳐 현재 법무부에서 여성 최초로 부장검사급 보직을 맡고 있다.법무부 여성정책담당관실 이영주 검사는 “과거 위압적인 수사관행과 남성 위주의 조직문화 때문에 여성검사가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학수사가 확산되고 있고, 검찰 내 분위기도 우호적으로 바뀌면서 여성검사가 크게 늘고 있다. 또 활동분야도 일반 형사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공안 계통과 특수수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여성변호사의 존재도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4년 현재 활동 중인 여성변호사는 모두 363명. 전체 변호사의 6% 수준이다. 그러나 61년까지는 여성변호사가 단 한명에 불과했다. 국내 제1호 여성법조인이자 정대철 전 의원의 모친으로 잘 알려진 고 이태영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탄력 붙은 여성법조인 증가 속도지난 88년까지도 여성변호사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89년 14명으로 늘었고, 99년에 처음으로 100명을 넘어섰다.고참급 여성변호사 중 강기원 변호사(사시 12회ㆍ62)는 73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해 79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생활을 마지막으로 변호사로 개업했다. 강변호사는 DJ정부 시절에는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여성경영인총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YS정부 시절 환경처 장관을 지냈던 황산성 변호사(사시 12회ㆍ60)도 강변호사와 사시 동기다. 80년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듬해에는 국회의원이 됐다. 이번 17대 총선에서도 기독당 대표주자로 선거를 치렀으나 당선에는 실패했다.전현희 변호사(사시 38회ㆍ40)는 국내 최초의 의사 출신 법률가이다. 서울대 치의대를 졸업한 전변호사는 치과의사 생활을 하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 99년부터 의학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여성의 비율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94년 4%에 불과하던 여성합격자의 비율이 2001년 17.5%, 그리고 2002년에는 23.9%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20.9%를 기록했다. 특히 2002년에는 수석합격(이미선씨), 최고령 합격(박춘희씨), 최연소 합격(안미령씨)을 여성이 모두 휩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이화여대 법학과 정현미 교수는 “그동안 불평등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이 법조계 진출을 꺼려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공정성과 구체적 타당성을 따지는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여성이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법조계의 여성진출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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