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벽 넘어 속속 ‘큰자리’ 차지

국회의원 39명 당선 13% 차지, 5급 이상 관리자급 공무원 6.4% 달해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저서 에서 여성의 중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특히 그는 ‘21세기 사회변동의 핵심은 여성’임을 강조하고 여성시대가 빠른 속도로 도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인 샤토브리앙은 여성의 역할을 이렇게 역설했다. “여성이 없다면 남성은 거칠고 고독할 것이다. 우아함도 알지 못할 것이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가 왜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최근 우리 사회 최고의 화제는 단연 여성파워다. 특히 이번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성의 약진은 대단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여의도에 ‘젠더(Gender) 혁명’이 시작됐다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스포트라이트에서 한발 빗겨난 느낌이지만 관계에서도 여성의 진출은 눈부실 정도다. 여성이 속속 고위직에 등용되고, 요직에 진출하는 여성공무원수도 크게 느는 추세다.여의도 점령한 여성의원들17대 총선의 화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이었다. 여성출마자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데다 당선자 또한 급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거기간 내내 각 당의 선거사령탑을 여자가 장악,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선거’였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여성당선자수는 역대 최고인 39명을 기록했다. 지역구에서 10명, 비례대표에서 29명이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전체 당선자 299명 가운데 무려 13%가 여성인 셈이다. 16대 국회의 5.9%(16명)와 비교해도 두 배 넘게 껑충 뛴 수치다.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대표주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대구 달성)다. 이번 선거기간중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리는 등 큰 인기를 끌었고, 침몰해 가던 한나라호를 극적으로 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도 유력하게 부상했다.열린우리당 한명숙 당선자(경기 일산갑)와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경기 광명을)도 뉴스메이커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우먼파워를 과시했다. 특히 한당선자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5선의 홍사덕 의원을 눌러 주목을 받았다. 또 광명시장 출신인 전의원은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확실하게 지리매김하는 성과를 거뒀다.열린우리당의 ‘여성의원 트리오’로 불리워온 이미경(서울 은평갑), 김희선(서울 동대문갑), 조배숙 의원(전북 익산을)은 16대에 이어 또다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들은 한층 젊어진 17대에서 의원들의 연령이 중진 소리를 듣게 됐다. 또 열린우리당 김선미(경기 안성), 한나라당 이혜훈(서울 서초갑), 김희정 당선자(부산 연제)는 초선이지만 치열한 당내 경쟁 등을 뚫고 여의도에 입성해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김희정 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최연소로 당선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김당선자는 “유권자들이 예전에는 거물 정치인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고, 여성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비례대표 여성당선자의 면면도 눈길을 끈다. 특히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은 김애실, 손봉숙, 장향숙, 심상정 당선자 등 모조리 여성 차지였다. 정치권의 여성에 대한 대접이 각별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선거기간 내내 각 당의 ‘입’ 역할을 해 온 전여옥(한나라당), 박영선(열린우리당), 이승희 대변인(새천년민주당) 역시 무난히 국회에 입성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순발력을 바탕으로 당내 입지를 굳혔다는 후문이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선정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여성후보의 경우 향후 여성정치 세력화에 대한 의지를 매우 중요한 선정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여성의원의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17대 국회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16대 국회의 경우 상임위 18개 가운데 여성의원이 한 명도 없었던 곳이 6개나 됐다. 행정자치, 문화관광, 농림해양수산, 건설교통, 보건복지, 정보위원회 등이다. 하지만 17대에서는 이런 모습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경제, 법조, 노동, 교육, 환경, 의약, 언론, 문화, 여성, 지방자치, 국방 등 각 분야의 여성전문가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여성대통령의 등장을 점친다. 박근혜 대표를 필두로 2~3명의 여성들이 차기 대권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이런 논의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여성정치인의 위상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희 총선여성연대 대표는 “여성의원의 대거 등장은 정치문화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며 “이번 17대 국회는 그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커지는 공직 내 여성파워정치권뿐만 아니라 행정부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한때 구색 갖추기 정도로 여성을 기용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최근 들어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수적으로 여성 고위공무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다 핵심부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다.먼저 최고위직에 여성들의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현직 장관만 2명이나 된다.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과 지은희 여성부 장관은 참여정부의 한 축을 이루며 여성공무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한명숙 당선자도 최근까지 환경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차관급으로는 박선숙 환경부 차관이 버티고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으로 일한 박차관은 능력을 인정받아 환경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2인자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공무원의 꽃’이라는 1급에도 모두 4명의 여성이 포진,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김애량 여성부 여성정책실장, 이인실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임선희 국무총리실 청소년보호위원장, 황인자 서울시 복지여성정책보좌관 등이다.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순전히 실력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여성공무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국장급 가운데는 김민경 통계청 경제통계국장, 김혜원 특허청 심사3국장, 조성은 여성부 공보관, 이복실 여성부 기획관리심의관 등이 활발하게 뛰고 있다.수치상으로도 여성공무원의 부상은 눈에 띈다. 중앙인사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실국장급(3급 이상)만 2002년 25명(2.0%)에서 지난해 31명(2.5%)으로 늘어났다. 또 5급 이상 여성관리자 증가속도도 빨라 전체 1만6,440명 가운데 1,046명(6.4%)을 차지한다.여성 고위공무원의 급증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창은 행정고시 합격자다. 지난해 행정고시 합격생 209명 가운데 여성이 무려 70명(33.5%)이나 됐다. 3명 가운데 1명이 여성인 셈이다. 특히 행정고시의 9개 분야 가운데 3개 분야에서 여성이 수석을 차지했다.고위 외무공무원을 선발하는 외무고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외무고시 합격자 28명 가운데 11명(39%)이 여성이었다. 또 2002년 신규 외교관 32명 가운데 여성이 절반을 차지했다. 여성외교관수도 85명으로 전체(1029명)의 8.3%를 차지하고 있다.김동극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과장은 “행정고시나 외무고시 합격자가 크게 늘고 각 부처에서도 여성들의 승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늘리는 주요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