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파는 ‘달인’ 수두룩

보험 ㆍ가전 등 전통 텃밭 강세 여전 … 자동차 등 남성중심 시장도 '위협'

여성에게 회사의 운명을 맡긴 기업들이 적잖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주고객층으로 삼는 판매ㆍ영업 중심의 기업들은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업전략에 충실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다. 김순무 한국야쿠르트 사장이 “1만2,000명 여사님들이 회사의 보물”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나, 서경배 태평양 사장이 “2만7,000여 여성판매원이 총매출의 45%를 책임진다”고 자랑하는 것은 그만큼 ‘세일즈우먼’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방증이다.최근에는 남성이 득세하던 자동차, 제약, 무역업종에서도 여성영업인력의 활약이 대단하다. 혼자서 수십억원어치를 팔아치우는 ‘무서운 여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영업의 세계에서 여성은 ‘소수자’가 아니다.보험ㆍ가전ㆍ화장품 ‘여성 텃밭’보험, 가전, 화장품업계는 전통적으로 여성영업인력이 주축인 분야. 보험업계의 경우 올해도 변함없이 여성이 판매왕 자리를 ‘싹쓸이’하고 있다.동부화재 ‘판매왕’을 거머쥔 동부화재 김경숙 동안양영업소 설계사(43)는 지난해 12억4,400만원의 보험영업 실적과 2억5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흥국생명도 지난해 11억원의 매출을 올린 주안지점 김춘남 설계사에게 ‘보험왕상’을 수여했다.삼성화재는 2002년 ‘설계사 왕’이었던 남수원지점 조근옥 RC(리스크 컨설턴트ㆍ43)를 ‘판매왕’에 선정했다. 지난해 17억6,200만원의 매출과 2억9,700만원의 소득을 올린 조씨는 95년 영업을 시작한 이후 10년 동안 한결같이 독거노인과 양로원, 농아원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나눔 영업’을 실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23년 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켜 온 ‘타고난’ 보험왕도 여성이다. 삼성생명 종각지점의 송정희 팀장(56)은 80년부터 FC(파이낸셜 컨설턴트)활동을 시작, 첫해 신인상을 차지한 이래 23년 동안 계속해서 연도대상을 수상해 보험업계 ‘여왕 중의 여왕’으로 불린다. 삼성그룹은 송팀장의 업적을 높이 사 임직원이 아닌 FC로는 최초로 ‘2004년도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여했다.가전업계 여성파워 역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삼성전자 주부판매사원인 김경희씨(45)는 지난해 혼자서 61억원어치를 팔아치워 판매왕 자리에 올랐다. 김씨는 전년도에도 36억원의 실적을 올려 1위를 차지했었다. “대량구매가 가능한 고객을 발굴하고 한달 휴대전화 요금이 30만원이 넘을 정도로 고객들과 대화”한 것이 비결이라고. LG전자 김정애씨(48)도 지난해 36억원의 판매기록을 세워 판매여왕이 됐다.어려워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역전의 여전사들이 모여 어엿한 부서를 만든 경우도 있다. 지난 86년 옛 대우전자에 주부사원으로 입사해 88년부터 5년 동안 판매왕 자리를 지켰던 백숙현 특판사업본부장(44)은 판매왕 출신 주부사원의 모임인 ‘르망회’ 회원 20여명을 이끌고 지난해 친정인 대우일렉트로닉스로 복귀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출범에 맞춰 특판팀 부활을 김충훈 사장에게 건의, 회사가 이를 받아들인 것. 백본부장은 한창때 한번 계약에 어지간한 대리점 1년 매출을 능가하는 22억원어치를 따내는가 하면, 10년간 누적 매출이 150억원에 이를 정도로 전설적인 실적을 올렸었다.자동차ㆍ제약ㆍ호텔 ‘여성 프런티어 증가세’자동차나 제약업계는 아직까지 남성 영업맨 중심의 업종인 게 사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 프런티어들이 속속 늘어나면서 남성 중심의 판도가 변하고 있다.현대자동차 수원 서부지점 곽경록 과장(38)의 경우 지난해 5,000명 영업사원 가운데 6위의 실적을 올렸다. 한해 동안 곽과장이 판매한 차는 모두 186대. 이틀에 한대꼴로 차를 팔아치운 셈이다. 비결을 묻자 “물불을 안 가린다”고 대답하는 곽과장은 “아직까지 여성 영업사원을 생소해 하는 고객이 많지만, 남보다 눈에 띄는 까닭에 기억하는 고객들도 많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 96년부터 자동차영업을 시작한 곽과장은 자동차업계 여성 판매사원의 실적에 대해 “숫자가 늘어난 것은 물론 상위권에 여성들이 포진할 만큼 실적도 좋아지는 추세”라고 밝혔다.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여성으로만 한개 지점을 구성했다. 유성애 지점장(46)과 영업사원 10명이 여성으로 구성돼 있는 북일산지점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소비자를 감동시킨다’는 모토로 지난해 3월 출범했다. 2001년 입사한 이후 지난해 3월 지점장으로 취임한 유지점장은 “자동차 세일즈는 남성만의 영역이라는 사회 인식의 변화와 함께 여성들의 활약이 늘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고객의 요구를 빨리 파악하고 고객관리에도 세심해 장점이 많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차 서부지역본부장 최영일 이사도 “자동차 선택권이 남편보다 아내 중심으로 바뀌고 있어 소비자 감동을 이끌어내는 여성 영업사원들이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남성들이 주로 맡던 호텔 판촉 분야에도 여성이 진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JW메리어트 호텔 나유성 판촉부 과장(32)은 “97년 호텔에 입사할 당시만 해도 업계 판촉부는 남성 위주 조직이 대부분이었다”며 “요즘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반반일 정도로 여성 진출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호텔의 객실과 연회 등을 판매하는 판촉업무는 고객을 만나기 위해 발로 뛰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정보수집과 민첩한 업무진행이 요구되는 분야.나과장은 “부드러움과 섬세함, 그리고 세련된 비즈니스 매너로 고객들과 쉽게 벽을 허물 수 있는 등 여성에게 매력적인 분야”라고 밝혔다.이밖에 한국MSD 등 제약업계에도 여성 영업인력 및 실적이 증가세를 보이는 등 영업 전반에 걸쳐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추세다.돋보기 삼성그룹 첫 여성 해외주재원각 분야 전문인력 ‘거침없이 해외로’밤낮없이 세계를 무대로 뛰어야 하는 대기업 해외주재원 중에서 여성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척박한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터프한 일이어서 결혼과 육아를 걱정하는 여성에게 맞지 않는다는 게 그간의 고정관념.그러나 삼성그룹이 지난 3월 200명의 해외주재원 신규인사를 단행하면서 삼성전자의 △목경숙 차장(중국 상하이·39) △연경희 과장(싱가포르ㆍ33) △조경선 선임(런던 디자인연구소ㆍ31), 삼성물산의 △윤현숙 대리(런던지사 로테르담지점ㆍ31) 등 4명의 여성을 파견한다고 밝혀 여성인력 중용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동안 사무관리직 중심으로 여성주재원을 파견한 적은 있지만, 마케팅ㆍ디자인ㆍ상품기획ㆍ무역 등 전문분야 여성들이 대거 해외주재원으로 파견되기는 처음.이 가운데 목차장은 현업에서 부서장까지 지낸 삼성 여성인력의 선두주자 가운데 한명이며 연과장은 삼성의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에 의해 탄생한 싱가포르 지역전문가 출신. 또 유럽을 총괄하는 런던 디자인연구소에 파견된 조선임은 디자인 분야의 독보적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물산 런던지사 로테르담 지점에 파견된 윤대리 역시 해외영업ㆍ마케팅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삼성은 앞으로도 능력 있는 여성인력들의 해외 파견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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