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다가온 1배럴=40달러

2분기부터 하향안정세로 반전 예상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국내외 경제 회복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9월 중순부터 꾸준히 저점을 높여 온 유가는 배럴당 40달러(뉴욕상품거래소 WTI 기준)에 근접하며 13년 만에 최고치로 급등한 상태다. 올 들어 상승폭만도 15%에 달한다. 런던시장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나 우리나라가 원유를 도입할 때 기준가격으로 사용하는 두바이유도 비슷한 폭으로 급등했다. 이라크전쟁이 마무리되면 유가가 하향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전망이 빗나간 지는 오래다. 반면 고유가가 ‘기업비용 증가 → 물가상승 → 소비위축 → 경기회복 둔화’라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왜 오르나국제유가를 선도하는 서부텍사스중질유(WTI) 선물가격은 최근 13년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37~38달러에서 움직이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 및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올 들어 10% 이상 오른 33~34달러,30~31달러에서 각각 거래되고 있다. 1년 전 대비 상승폭은 일제히 30%를 넘는다.이 같은 유가급등은 기본적으로 수급불안, 달러약세, 투기세력, 테러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다.수급불안을 심화하는 최대 주범은 세계 원유수출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이다. 국제적 석유 카르텔인 OPEC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지속적인 ‘감산카드’로 단결력을 과시, 수급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해 하루 원유생산량을 290만배럴 감산한 OPEC은 올 들어 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4월부터 생산쿼터 축소(2,450만배럴 → 2,350만배럴)를 포함, 모두 25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라크전 마무리 → 이라크 원유 증산 → OPEC 회원국 쿼터 확대→ 공급증가 → 유가하락’이란 시나리오를 무색하게 만든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는 세계경기 회복에 따른 석유소비 증가가 유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원자재 블랙홀’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중국의 지난해 석유소비량은 하루 600여만배럴로 전년보다 60만배럴(11%)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석유수요가 향후 수년간 급증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원유수요 역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직접적인 수급요인 외에 미 달러 약세도 유가 급등을 부추기는 주요 변수다. 달러가치가 지난 1년 동안 유로화 대비 20%, 엔화 대비 10% 급락하면서 산유국들은 ‘달러구매력 약화’를 보전하기 위해 일제히 유가를 높여 불렀다.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OPEC 내에서 유가관리대(현재 바스켓유 기준 배럴당 22~28달러)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근저에는 달러 약세가 깔려 있다. 투기세력들의 원유매집이 유가를 급등시켰다는 분석도 많다. 달러약세, 원자재난 등을 틈탄 투기자금이 원유시장에 대거 몰리면서 유가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전세계를 덮고 있는 테러 불안감도 유가 상승의 복병이다.어디까지 오를까대다수 전문가들은 유가의 추가 상승폭이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분기에 접어들면서 지난 1년 동안 원유시장에 드리워졌던 ‘수급불안’이라는 그림자가 점차 옅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이런 전망의 근거는 무엇보다 국제원유시장에서 와일드카드인 이라크의 원유생산이 최근 들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는 현재 하루 25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 전쟁 이전 수준에 근접했으며 이중 170만배럴 정도를 수출하고 있다. 수급불안의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점차 해소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라크의 원유생산이 수년 내 하루 50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라크의 생산 확대는 궁극적으로 OPEC 회원국들의 결속력을 와해시킬 가능성이 크다. 자칫 지난 1년여간 OPEC 회원국들이 보여준 ‘감산단결력’이 ‘증산경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월 감산 이행 여부를 놓고 OPEC 회원국 간에 이견이 노출된 것은 이런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러시아를 비롯한 OPEC 비회원국들이 점유율 확대를 위해 산유량을 늘릴 가능성도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가 올해 중 하루 60만배럴 이상을 증산할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 원유파이프라인 독점기업인 트란스네프티의 세몬 바인시토크 사장은 “현재 900만배럴을 약간 웃돌고 있는 하루 산유량이 2005년 초에는 1,000만배럴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지속적 증산은 OPEC의 수장 격으로 러시아와 원유생산량 1, 2위를 다투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사우디가 OPEC의 감산과정에서 미온적인 입장을 취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여타 산유국들도 증산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달러약세가 주춤해지고 있는 것도 유가 추가 상승에 부담이 되고 있다. 달러가 강세로 방향을 틀 경우 원유시장에 유입된 투기자금의 상당분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배럴당 40달러에 육박하고 있는 WTI 선물가격의 10달러 정도가 수급보다는 달러약세 및 투기세력 때문으로 보고 있다. 주간별로 증감이 엇갈리며 국제유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미국의 원유 재고량도 3월 셋째주까지 4주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새로운 지도자로 초강경파가 선출되는 등 그동안 유가상승의 한 축이었던 테러불안 요인은 오히려 강해지는 모습이다.전문가들은 이런 요소들을 감안할 때 대형 테러 등의 돌출악재가 발생하지 않는 한 유가가 2분기부터는 점차 하향안정세로 반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단기적으로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설 수는 있지만 유가의 ‘40달러 시대’는 매우 짧은 기간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유가의 경제파장은무엇보다 고유가는 기업의 비용부담을 증가시켜 궁극적으로 물가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우려된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뒷받침해 온 ‘저금리 기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비용증가 상쇄 명목으로 감원 카드를 꺼낸다면 고용시장 한파가 더 거세질 수도 있다. 한국은행은 유가가 배럴당 5달러(두바이유 기준) 오를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낮아지고, 소비자물가는 0.5%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경상수지는 60억달러 감소하고, 원유 수입비용은 45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대국인 미국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5달러 오르면 연간 소비가 350억달러(약 41조원) 정도 감소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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