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변혁…‘세상의 중심은 나’

효율 · 편리 · 즐감 · 건강 · 쾌적 · 안정 등 6대 욕구가 경영변수

‘AnytimeㆍAnywhereㆍAnybodyㆍAnynetworkㆍAnydeviceㆍAnyservice’이른바 6A다. 앞으로 다가올 유비쿼터스 세상을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다.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곳곳에 내장된 컴퓨터로 삶의 모든 게 변하게 된다. 생활공간은 물론 작업현장까지 새로운 형태의 정의가 필요하다. 좋든 싫든 유비쿼터스가 제시하는 지배질서를 따라야 하는 건 물론이다. 단편적인 온라인 세상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유비쿼터스가 내놓은 제3공간은 직접적이고 강제성을 띠는 동시에 집단성향까지 보인다. 간접ㆍ선택ㆍ개인성의 전자공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구성원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그간 확고했던 위계질서는 사라진다. 남성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힘을 잃고, 그 자리는 여성성이 꿰찬다. 디지털 유목민인 노마드족이 확산되고, 호불호에 따른 양면성은 한층 짙어질 전망이다.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는 보다 역동적이다. MS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다가올 시대에는 ‘생각의 속도에 따른 비즈니스’(Business at the speed of thought)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유비쿼터스가 요구하는 스펙이 아니면 비즈니스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의 소비자는 파격을 원한다. 물리적인 소유보다 멤버십과 같은 이너서클의 자격을 더 선호한다. 가족보다 자신에 대한 수요가 우선이다. 일터도 변한다. 디지털ㆍ광대역ㆍ이동화에 힘입은 새로운 모습의 재택근무가 유행한다. 가치판단은 경제논리에 따라 변한다. 문화ㆍ정치도 경제에 종속된다. 유비쿼터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절히 대응하면 기회일 수 있지만 자칫 엇박자를 내면 위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기반의 변화유비쿼터스는 세상을 바꾼다. 지배적인 게임의 룰 자체가 과거와 다르다. 사회 성격도 몇가지 방향으로 변신을 반복한다. ‘개인주의 심화’가 대표적이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개인적인 행동 양태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측된다. 모든 컴퓨터가 나를 둘러싸는 까닭에 남과의 공유와 협력이 그다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의 집단주의 슬로건은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발붙일 공간이 없다. 집단행동은 더욱더 보기 힘들게 된다. 공동이익을 전면에 내세워도 유비쿼터스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먹혀들 공산이 낮다. 따라서 어디를 가나 괴롭혔던 혈연ㆍ학연ㆍ지연의 3연은 전설 속에 남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집단이기주의 역시 저절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집단의 힘을 빌릴 만한 이유도 명분도 없어지기 때문이다.반면 개인주의는 보다 확산될 개연성이 높다. 사람과의 면대면 접촉이 줄어드는 까닭에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 판단한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철저히 본인에게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늘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킨다. 탈공동체 조류도 구체적이다. 한계가 많은 오프라인상의 특정조직에 얽매이기를 기피한다. 대신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만나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선호한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이 활성화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김동환 중앙대 교수는 “유비쿼터스를 뜻하는 제3공간 거주자는 도처에서 자연스레 조직화된다”며 이를 “소리 없는 스스로의 조직화(Silent self-organizing)”로 명명한다. 군중 속의 고독을 깨트릴 관계를 가상공간에서 찾는다는 분석이다.개인주의 심화는 곧 ‘위계질서 타파’로 이어진다. 유비쿼터스 시대에 가까워질수록 연공서열에 따른 전통적 위계문화는 변신을 강요받는다. 이른바 종적 상하관계에서 횡적 평등관계로 사회시스템이 바뀐다는 얘기다. 종신고용ㆍ연공서열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다. 위계질서 타파는 지금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특히 베이비붐의 주역인 2030세대가 사회에 편입되면서 4050세대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현장이 많다. 가치관의 혼란을 호소하는 구성원도 적잖다. 하지만 아직은 위계질서가 비교적 탄탄하다. 공무원 사회를 필두로 상하 명령체계로 조직이 유지되는 곳이 상당하다.어쨌든 대세는 위계질서의 타파다. 유비쿼터스 세대에게 위계질서는 견디기 힘든 개념이다. 이들을 위계질서만으로 다스린다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강두영 세일즈랩 대표는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탐닉한다”며 “때때로 생각이 없는 철부지처럼 보일 때도 있다”고 평가한다.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대신 철저히 스스로에게 충실하다는 뜻이다. 버스ㆍ지하철을 타면 내내 휴대전화 게임을 즐기는 젊은층이 단적인 사례다.‘여성화’도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배논리다. 여태껏 세상은 남성위주로 운영돼 왔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남성중심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확고한 헤게모니로서 존재해 왔다. 인류역사는 남성을 주역으로 이뤄졌던 반면, 여성은 조역이나 방관자에 불과했다. 여성이 주류사회에 편입하거나 주요 포스트에 올라서면 그 자체가 흥미로운 뉴스거리였다. 여성의 성공은 특별함 그 자체였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약간의 조미료 역할이면 그만이었다. 대부분의 여성은 사회진출에 각종 유무형의 제약을 받는다. 그 결과 경제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절반이 아닌 남성에 소속된 종속변수였던 셈이다.유비쿼터스 시대의 여성은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적용받는다. 관건은 능력이지 성차별이 아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신여성도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여성의 사회진출도 보편적이다. 여성성의 심화는 섬세함과 건강ㆍ쾌적ㆍ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웰빙ㆍ레저ㆍ휴식 등 부드러운 사회현상은 여성화된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갈등의 해소방법도 대결보다 대화가 주류를 이룰 확률이 높다.컴퓨터의 설치 확산은 ‘노마드족’(Nomad族ㆍ신유목민) 증가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굳이 한곳에 머물러 일을 처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필요ㆍ여건에 따라 자유롭게 접속ㆍ해제를 되풀이하는 임의접속이 보편화된다.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는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이동한다. 또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구성원에게는 신유목민을 제외하고 별다른 대안이 없다. 정착을 통한 안도감은 역으로 경쟁력 저하를 의미하기도 한다.사실 신유목민의 등장은 디지털 기반의 확충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일찌감치 노마드의 탄생을 예고한 선각자도 한둘이 아니다. 언론학자인 마샬 맥루한은 30년 전에 “미래 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게 될 것”이라며 집이 사라질 것을 내다봤다. 정착기피를 빗대 “나는 클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얘기까지 떠돈다. 최근에는 여성화와 맞물려 ‘우마드’(Woman + Nomad)란 개념까지 소개됐다. 동명의 책을 쓴 김종래씨는 “여성의 탁월한 시테크ㆍ멀티태스킹 능력은 향후의 디지털시대를 완전히 장악할 것”이라고 전한다.호불호에 따른 ‘양면성 심화’도 미래사회의 한 특징이다. 앞으로는 의사결정에 있어 좋고 싫음이 명확해진다. 획일적인 문화 아래에서 개인의 욕구와 심성을 숨겨왔던 게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더 이상 미학이 아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주력세대는 자신의 기호에 따라 가감 없는 행동 양태를 보이게 된다. 이들은 좋아하는 건 한없이 즐기되, 싫어하는 건 티나게 거부할 공산이 크다. 시간배분이나 노력도 좋아하는 일 위주로 진행한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가급적 신속히 끝내기 마련이다.경영환경의 변화효율ㆍ편리ㆍ즐김ㆍ건강ㆍ쾌적ㆍ안정 등…. 이들 6대 인간적 추구요소는 유비쿼터스 시대의 비즈니스맨이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경영변수다. 경영전략 방향을 이곳에 맞추지 않으면 더 이상 매출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유비쿼터스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과거와 다르다. 때로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삶의 우선가치를 본인에게 맞추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에게 집단성ㆍ남성성ㆍ정착성ㆍ획일성을 강조해봐야 통할 리 만무하다. 과거지향적 제품은 이미 시장에서조차 외면당하는 추세다.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전술전략을 세운 기업만이 생존을 담보한다. 유비쿼터스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법이다.유비쿼터스 시대에는 경영환경도 기본적으로 변한다. 우선 ‘소유의 경제’가 사라진다. 사실 소유욕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다. 훌륭한 집에 멋진 자가용을 갖는 건 자본주의의 핵심가치다. 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험난한 인생살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소유의 경제가 통하지 않는다. 이미 20세기 후반에 그간의 소유가치로부터 리스ㆍ렌털의 사용가치로 조금씩 비즈니스 영역이 확장되고 있음을 목격한 바 있다. 이른바 ‘가소유의 경제’다.가소유란 특정 멤버십 문화ㆍ단체 등에 가입(소속)ㆍ멤버십ㆍ이용권 등의 권한이 있느냐를 뜻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타워팰리스 거주여부다. 아직은 소유개념에서 가소유로 넘어가는 디딤돌 성격이 강하지만, 조만간 타워팰리스 시민권은 훨씬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곳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특별한 콘텐츠를 제공받는 권한이 생긴다. 특정계층의 이너서클에 가입ㆍ활동한다는 건 소유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가족해체’도 유비쿼터스 시대의 경영전략에 편입돼야 할 고려사항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싱글족이 유행처럼 번질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전 인류의 절반이 고달프고 신경 쓸 일 많은 가족생활보다 화려하고 단출한 싱글생활을 택할 것으로 분석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아쉬운 판에 굳이 부모세대의 희생과 봉사를 강요할 수도 없다. 이 조류는 이미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추세다. 독신세대를 위한 다양한 가전ㆍ디지털 기기가 생산되고 있다. ‘나홀로족’을 위한 서비스산업도 급성장을 반복한다. 클릭 한번으로 모든 생활용품이 제공되는 시대인 셈이다.유비쿼터스는 일터, 이른바 ‘작업공간의 변화’를 시도한다. ‘집 ↔ 직장’을 오가던 근무환경이 다양한 공간으로 획기적인 변신을 꾀하게 된다. 언제, 어디를 가던 곳곳에 컴퓨터가 내장돼 있는 까닭에 붙박이 근무 형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가령 이마트의 ‘e투데이 시스템’을 보자.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기업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요약된다. 출타 중인 상사에게 원격결재를 받게 됨으로써 불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게 된다.작업공간의 변화는 사실 재택근무와 비슷하다. 20세기 말에 유행했던 재택근무는 산업사회가 완성시킨 ‘일터 = 직장’의 고정관념을 단번에 깼다. 한때 인기를 끌며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비쿼터스 시대의 재택근무와는 비교조차 안된다. 20세기의 재택근무는 전화ㆍ팩스가 고작이었다. 따라서 재택근무자의 대상도 철저히 주변업무로 제한됐다. 반면 유비쿼터스 시대의 ‘컴백홈’은 디지털화와 광대역화를 무기로 핵심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게까지 허용된다.또 유비쿼터스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경제가 담당하게 된다. 정치ㆍ문화ㆍ예술 등 모든 섹트가 경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미래학자인 대니얼 벨은 인류문명을 구성하는 세 가지 축으로 정치ㆍ경제ㆍ예술을 꼽았다. 특히 예술이 가장 상위에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게 대부분의 예술이란 게 돈(경제)과 지위(정치)가 있는 사람들의 문화였기 때문이다.하지만 벨의 정의는 이제 수정이 불가피하다. 유비쿼터스가 지배하는 시대의 문화ㆍ예술은 어디까지나 2등 섹트에 머무른다. 철저히 경제논리에 예속된다는 얘기다. 엔터테인먼트산업이 발전하는 게 단적인 예다. 문화와 예술은 돈을 버는 데 하나의 중요한 수단일 뿐이다. 그 자체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그간의 경험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미국 행정부를 보면 보다 적나라하게 이해된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나 체니 부통령은 이미 특정산업ㆍ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국가원수가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단적인 케이스다. 모든 게 경제논리로 평가될 만큼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전체 사회기반이 경제에 종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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