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영업이익 1조원 기대… 차세대공정 등 설비에 1조4천억원 투자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주)하이닉스반도체 본사의 아미문화센타. 2004년 3월26일 하이닉스반도체의 정기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통과돼야 할 주요 의안은 2003년도 사업실적을 포함 모두 5개.주총의 진행을 맡은 우의제 대표이사의 의사봉이 순조롭게 ‘땅땅’ 울렸다. 인사말부터 5개 의안이 제안되고 통과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전부 합해 20여분 남짓. ‘감자안’ 통과를 놓고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로 난장판이 됐던 지난해 주총 상황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다.올해 주총장의 이 같은 순조로운 분위기는 호전되는 하이닉스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2002년 2분기부터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던 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5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 1분기에도 흑자기조를 이어가고 있다.우대표는 “전반적인 D램가격 약세에도 불구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판매가격이 상승했고, D램 생산이 전분기 대비 14% 증가하는 등 생산성 향상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하이닉스의 고부가가치 제품비중은 2003년 3분기 33%에서 4분기에는 45%대로 늘었다. 이에 따라 4분기 시장 평균 판매단가는 2~3% 하락했지만, 실질적인 하이닉스의 평균 판매단가는 오히려 2~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에는 고부가가치 D램의 생산비중이 50% 수준으로 확대될 전망이다.고부가가치 D램은 노트북, 그래픽, 휴대전화 등에 들어가는 고성능, 고수익 D램을 말한다. 이 제품은 2~3개의 소수 업체만 생산하고 있어 범용 D램보다 판매가격이 높을 뿐만 아니라 가격 변동폭이 작아 안정적인 수익성 유지가 가능하다.하이닉스의 올해 예상 매출액은 6조1,400억원. D램가격의 안정세에 힘입어 영업이익도 1조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금융비용 등을 감안한 경상이익도 1,553억원의 흑자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이에 따라 주가도 고공비행 중이다. 올해 초 5,000원대 초반에서 시작한 하이닉스 주가는 4월 초 현재 1만2,0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동양종금증권 민후식 애널리스트는 “D램 산업의 호조와 하이닉스 반도체의 생산성 개선 효과 등이 가시화되면서 주가는 1만6,000원까지 상승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세계적 신용평가사인 S&P도 지난해 하이닉스의 장기신용등급을 부도 직전 수준인 SD(Selective Default)에서 CCC+로 6단계 상향 조정했다. 우대표는 “이 같은 평가가 지난해 벌어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상계관세 부과라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난 후 이뤄진 것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하이닉스는 상계관세를 피하기 위해 “관세지역으로의 수출물량을 최소화하고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미국 유진공장의 생산물량을 확대하고 해외생산 제휴를 모색하는 등의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 추가적인 관세 부담이 거의 없었다”고 우대표는 덧붙였다.투자재원 자체조달 가능하이닉스는 올해 1조4,000억원의 설비투자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해 설비투자액 7,400억원보다 2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투자계획 중 60%는 그동안 재원 부족으로 미뤄왔던 생산공정 업그레이드에 집중적으로 투자될 계획이다.우대표는 “하반기부터 경쟁사들이 0.11㎛(마이크로미터, 1㎛=1/1,000mm)급 D램칩 양산기술과 300mm 웨이퍼 생산설비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경쟁사에 비해 투자효율이 30% 이상 높은 0.11㎛급 D램의 본격적인 양산에 착수하는 한편 300mm 웨이퍼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도 본격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 이 같은 투자가 완료되면 지난해 말 전체 공정의 10% 수준이었던 0.11㎛급 생산비중이 올 연말에는 8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미세공정은 신규 생산설비 추가 없이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예컨대 0.11㎛을 적용해 256메가 DDR 제품을 생산할 경우 0.15㎛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할 때보다 1.6배 많은 256메가 DDR 제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산업연구원 주대영 팀장은 “생산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생산성은 높아지고, 생산단가는 낮아진다”며 “현재 업계에서는 0.13㎛급을 지나 0.11㎛급 생산공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올해 하이닉스의 투자계획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년과 달리 투자 재원 100%를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점. 민후식 애널리스트는 “영업이익과 감가상각비를 합산한 올해 EBITDA(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 규모는 2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같은 현금성 자산 유입에 힘입어 투자자금 1조4,000억원을 내부에서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잉여자금은 차입금 상환에 사용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갖게 한다”고 분석했다.수익구조 다각화우대표는 “지금까지는 메모리반도체산업의 주요 성장동인이 PC에 의한 수요였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가전제품과 이동통신기기, 휴대용 저장장치 등이 메모리 수요의 큰 축을 담당할 것”이라며 “하이닉스의 제품구성도 현재의 D램 위주에서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다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최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난드(NAND) 플래시메모리도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이닉스는 현재 월 1만장 규모의 난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으며, 연말까지는 생산량을 3만장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나증권 이선태 애널리스트는 “전체매출 규모에서 난드플래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까지 크지는 않지만 수익성 다변화 측면에서 난드플래시 시장 진출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하이닉스 매출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또 다른 수익원인 시스템IC 사업부문도 올해 활발할 전망이다. 하이닉스가 생산 중인 시스템IC는 휴대전화용 카메라에 들어가는 CMOS칩, TFT-LCD 구동 드라이버, 전자기기 처리장치인 MCU 등이 있다. 시장에서 이들 제품의 수요가 강세를 보임에 따라 하이닉스는 현재 100%대의 완전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는 주문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부채상환 부담지난해 말 현재 하이닉스의 부채는 4조1,618억원. 매출액(3조6,204억원)보다 부채규모가 더 크다. 자본 2조7,443억원에 비해서도 1.5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동안 출자전환 등의 방법을 통해 여러차례 부채규모를 줄여 왔지만 하이닉스의 부채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규모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특히 2006년까지로 예정된 차입금 상환 유예기간이 지나면 3조원이 넘는 금융권의 차입금을 갚아 나가야 한다.산업연구원 주팀장은 “하이닉스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동안 과도한 부채로 인해 설비투자가 경쟁업체에 비해 뒤처진 상황에서 부채는 계속 떠안고 간다는 데 있었다”며 “오는 2006년까지 하이닉스의 실적이 전폭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부채상환과 투자재원 마련이라는 두 가지 지출을 동시에 감당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부채상환 방법과 시기에 대한 금융권의 불확실성도 우려 사항으로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정부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채권단이 상환유예 조건에 합의했지만, 앞으로는 채권단이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상환시기가 돌아왔을 때 채권은행이 자사의 주주이익을 앞세우며 채권을 일시에 회수하려 할 경우 하이닉스는 상당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설비투자 부문의 격차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선두인 삼성전자의 설비와 비교하면 1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며 “설령 삼성전자와 똑같은 수준의 설비를 갖고 있다 해도 갚아야 할 빚이 많은 하이닉스로서는 지속적인 설비투자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두 회사의 설비투자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고, 이는 곧 회사의 수익성 문제와 직결될 것이다”고 말했다.연구인력 유출도 문제점으로 대두된다. 99년 LG반도체와 합병시 상당수 연구인력이 빠져 나갔고, 이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더 많은 연구인력이 빠져나갔다. 하이닉스를 나온 연구인력 상당수는 대만과 중국 등 경쟁국 업체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99년 이후 연구인력 중 과반수는 떠나갔다. 그동안 산학협력 등으로 연구인력 부족분을 메워 왔지만 하이닉스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연구인력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회생의 원년 될까이천공장 복지관 5층에는 하이닉스 노동조합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여타 노조사무실과 달리 이곳에는 ‘결사투쟁’, ‘~쟁취’, ‘~타도’와 같은 과격한 구호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회사 정문에 ‘노사화합을 통해 2004년을 회생의 원년으로 삼자’는 내용의 큼직한 현수막이 눈에 띈다.정상영 노조위원장은 “올해 6년 만에 임금이 소폭 올랐다. 나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회사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새삼 느꼈을 것”이라며 “성과가 나기 시작하니까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다. 회사 회생을 위해 회사측과 최대한 보조를 맞춰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2002년 ‘하이닉스 살리기 운동’을 주도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종민 교수는 “하이닉스의 실적은 개선되고 있는데, 하이닉스를 합병하려 했던 마이크론은 아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반도체와 같은 전략산업의 기반을 없애면 안된다’는 판단이 옳았음을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하이닉스가 삼성에 비해서는 여러 면에서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이크론이나 인피니온 등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서는 경쟁력이 있다”며 “세계 2등 업체로서도 충분히 회생의 기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지난 수년간 출자전환과 감자를 거듭하며 한국경제와 개인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지게 했던 하이닉스. 채권단을 포함한 투자자는 하이닉스의 회생을 전제로 고통을 감수했다. 과연 하이닉스가 회생에 성공해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돋보기 하이닉스 수난사예견된 거대 부실… 빅딜 통해 탄생DJ정부 빅딜정책의 대미를 장식한 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와 LG반도체 간의 통합은 예견된 재앙이었다. 외견상으로는 D램업계 세계 1위가 탄생하는 화려함이 있었지만 실상은 부실기업과 부실기업이 합쳐져 더 큰 부실을 탄생시켰다.반도체 빅딜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던 98년 당시 하이닉스와 LG반도체의 장부상 부채비율은 각각 935%와 617%. 특히 이연자산을 감안한 실질부채비율은 LG전자가 3,400%였고, 하이닉스는 자본금을 거의 까먹은 상태였다. 게다가 두 회사는 무리한 설비투자로 당시 각각 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 중이었다.서로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 끝에 1999년 하이닉스가 LG측에 지불한 인수대금은 총 2조600억원. 3조900억원의 부채도 함께 인수받아 하이닉스는 출발부터 총 6조5,000억원의 자금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더욱이 2000년 12월부터 이듬해까지 총차입금 8조7,000억원의 절반 가량인 4조2,0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1년 D램가격도 전년 대비 80% 이상 폭락, 회사는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이때부터 독자생존이냐, 아니면 해외매각이냐 등의 진로를 놓고 거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결국 해외매각을 통한 조속한 채권회수를 바라는 채권단의 의지가 반영돼 마이크론과 의 본격적인 매각협상이 진행됐지만 2002년 하이닉스 이사회가 거센 반대 여론을 의식, 매각협상안을 부결시켰다.사업부문 매각을 통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2000년 PDP사업부문이 분사된 데 이어 2001년에는 통신단말기사업부와 통신ADSL사업부가 각각 현대큐리텔과 현대네트웍스로 분사돼 나갔다. 2002년에는 TFT-LCD사업부문인 하이디스가 중국에 38억달러의 가격에 팔렸다.채권단도 지원안을 꾸준히 마련했다. 2001년 10월 채권단은 3조원 가량의 출자전환과 6,500억원의 현금을 지원키로 해 하이닉스의 숨통을 겨우 살려 놓았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속되는 반도체경기 악화로 영업환경이 더욱 나빠지자 2003년 2월 채권단은 소액주주의 거친 반발에도 불구하고 21대1의 감자를 단행했다. 감자로 인해 하이닉스의 자본금은 26조2,175억원에서 1조2,653억원으로, 주식수는 52억3,997만주에서 2억4,952만주로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채권단의 무담보채권 1조9,000억원에 대한 추가 출자전환을 실시했다. 또 잔여여신 3조2,900억원은 2006년까지 만기를 연장, 회생의 계기를 다시금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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