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털판매, 깐깐한서비스로 쾌진격

사람 중심의 ‘또또사랑’ 경영철학 펼쳐··· IMF 후 더 강해져

웅진그룹은 방문판매업계의 ‘성장모델’로 여겨진다. 모기업인 웅진닷컴부터 국내 정수기업계의 기린아인 ‘웅진코웨이’까지 웅진그룹의 성장을 견인한 것은 방문판매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존의 방문판매 조직을 활용, 건강식품시장에도 진출해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지난해 웅진그룹의 매출액은 1조8,000억원으로 4년 전인 99년 5,957억원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성장했다. 올해 매출목표는 전년 대비 33% 신장한 2조4,000억원. 학습지,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그간 방문판매로 일군 회원제사업을 더욱 강화해 목표치에 도달한다는 전략이다.서적세일즈로 출발, 자타 공인 판매의 귀재방문판매업계에서 웅진그룹이 발군의 역량을 보이는 데는 윤석금 회장의 역할이 지대했다.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 판매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윤회장은 입사 한달 만에 국내 판매 1위를, 1년 만에 세계 판매왕을 차지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방문판매의 귀재다. 스스로도 “나는 누구보다 판매에 자신 있다”고 공언할 정도다. 1980년 웅진출판을 창사하며 사업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윤회장의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웅진이 고속성장한 비결에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윤회장의 고집이 있다. 윤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좋은 회사란 좋은 제품을 만드는 회사이고 좋은 제품이란 창의적인 제품”이라고 강조한다. 판매에 앞서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 실제로 웅진그룹의 히트상품들은 기존에 전혀 없었던 것들이었다. 총 700만권이 팔리며 웅진출판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 출시 9개월 만에 1억병의 판매실적을 올린 웅진식품의 ‘아침햇살’ 등이 대표적이다.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데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계절의 흐름에 따른 동식물의 변화와 다양한 풍속을 소개하는 은 3년의 제작기간과 8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탄생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였다. 출판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계속 이어졌다. 70권으로 이뤄진 은 무려 8년에 걸쳐 만들어졌을 정도다.윤회장의 진면목은 새로운 판매기법을 도입하는 데서 더욱 도드라진다. 이 좋은 반응을 얻었던 80년대 중반 윤회장의 고민도 깊어만 갔다. 판매가 잘될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방문판매용으로 제작된 36권짜리 전집인 은 고가의 제품이어서 대부분 독자들이 할부로 구매를 했다. 따라서 판매실적이 좋아질수록 당장 제품제작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고민을 거듭하던 윤회장은 86년 회원제 학습지인 를 내놓으며 자금확보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흑백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학습지시장에 컬러로 제작된 는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출시 1년 만에 회원이 40만명을 넘어섰고 정기구독료로 모인 돈이 150억원에 이르렀다.5년 만에 순이익 128배 증가11개 계열사로 구성된 웅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정수기, 비데, 연수기 등 환경가전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웅진코웨이개발이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의 절반이 이 회사에서 발생했다. 특히 정수기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52%에 이르러 강력한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다.지난 89년 창사한 웅진코웨이개발의 매출액과 순이익은 수직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98년 이후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98년 894억원에서 2003년에는 8,349억원으로 매출액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순이익의 증가세는 더욱 놀랍다. 98년 4억5,000만원에서 2003년에는 575억원으로 무려 128배 성장했다.웅진코웨이개발이 98년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업계 최초로 도입한 렌털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반화된 판매방법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렌털판매를 하겠다는 윤회장의 아이디어는 파격적인 것이었다.IMF 외환위기와 함께 고가의 정수기 판매량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윤회장은 ‘어차피 팔리지 않을 거라면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는 것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결과는 예상을 웃돌았다. 98년 3만9,000명에 불과했던 정수기 렌털회원은 지난해 128만명을 돌파했으며 연수기, 공기청정기 등의 회원을 합하면 총 247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돈이 부족한 것이지 좋은 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제품구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낮추면 호응을 얻을 것’이라는 윤회장의 판단이 멋들어지게 적중한 것이다.렌털판매가 성공을 거둔 데는 2가지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회사측은 분석하고 있다. 우선 원가절감. 렌털판매는 일종의 장기할부판매여서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적어도 2년이 걸린다. 따라서 원가를 낮추지 않고는 자금의 유동성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회사는 일반 상수압력만으로도 정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필터를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깐깐한 서비스’도 렌털판매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윤회장은 차별화된 서비스가 렌털판매의 관건이라고 판단, ‘코디’라고 불리는 전문관리원 제도를 만들었다. 이들은 제품의 정기점검, 멤버십회원관리, 필터교환, 회원모집 등 정수기에 대한 모든 비포서비스(Before ServiceㆍBS)를 책임진다. 현재 8,000명의 코디가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매월 500명 정도가 증원되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혔다.제품경쟁력, 차별화된 서비스 외에 윤회장의 열린 인재등용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평소 “좋은 CEO는 자신보다 훌륭한 후배 CEO를 양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윤회장은 이례적인 인사로 화제의 중심에 서는 일이 잦다. 웅진식품 조운호 사장과 웅진코웨이의 문무경 사장의 발탁은 특히 파격적이었다.조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98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37세, 직급은 부장이었다. 승진 이유는 간단했다. 모두가 어렵다며 포기하자던 웅진식품을 조사장만이 살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는 것. 조사장의 장담대로 웅진식품은 업계 선두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98년 40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은 2002년 2,350억원으로 60배 가까이 성장했다. 문사장 역시 초고속 승진을 한 경우다. 입사 1년 만에 부장으로, 다시 1년 만에 웅진코웨이의 대표이사에 취임했다.윤회장은 웅진그룹의 올해 경영정신을 지난해 ‘사랑’에서 ‘또또사랑’으로 바꾸었다. 끊임없는 사랑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함께 발전하자는 것.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임을 강조하는 윤회장과 웅진그룹이 어떤 기업문화를 만들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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