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우상’ “수출할 만한 의원 되겠다”

이번 총선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경제살리기’다. 각 당이 경제인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고, 유권자들 역시 이를 크게 환영하는 것도 최근의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 그런 점에서 이계안 전 현대캐피탈 회장(52)의 정치인 변신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초고속승진의 대명사인데다 국내의 대표적인 실물경제통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영입된 경제인 출신 가운데 나라를 바꾸고 경제를 살릴 적임자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마 과정과 향후 비전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수출할 만한 국회의원.’17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이계안 후보(전 현대캐피탈 회장ㆍ52)의 캐치프레이즈다. 지난 2월 열린우리당 입당을 전격 발표하며 정치신인으로 변신한 이후보는 기업인답게 구호에서도 경제 냄새가 물씬 풍긴다.이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실물경제통으로 손색이 없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현대석유화학 상무, 현대건설 부사장, 현대그룹 경영전략팀 부사장,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캐피탈 회장 등을 두루 거치며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46세에 현대자동차 사장에 오를 만큼 승진이 빨랐고 이후 재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를 받아왔다.직장에서 워낙 잘나갔던 까닭에 그의 출마소식을 듣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뭐가 아쉬워 험하디험한 정치판으로 뛰어들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쏟아졌다.“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개인적으로 평소 정치적 성향이 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경영자로 활동하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요. 성장과정에서 정치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특히 선친은 당신이 직접 정치를 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아 꿈을 접었기에 저한테 자주 권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현대자동차 사장이 됐을 때도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어요. ‘혼자 잘된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는 말뿐이었습니다. 이 말에는 ‘정치를 해서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이후보가 출마를 결심한 결정적인 동기는 정치판이 바뀌고 있다는 점과 경제문제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아마 예전 같으면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정치권에도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때마침 열린우리당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와 결심을 굳혔다.또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문제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기업의 경영자는 회사를 위해서만 일하면 되지만 국회의원이 되면 어려운 국가경제를 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를 결심했다.다른 지역을 마다하고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남다른 인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이지만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리를 잡은 곳이 지역구 내의 흑석동이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배어 있는 셈이다.또 고등학교 다닐 때 사당동에서 자취를 했던 것도 이후보로서는 평생을 살면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동작을은 지역적 특성상 할일이 참 많은 곳입니다. 위치상으로는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지만 생활여건은 아주 열악해요. 전체 면적 가운데 주거지 비율이 94%를 넘을 정도로 상업시설이나 문화시설이 부족하지요. 또한 주차시설도 절대적으로 모자라 하루 종일 주차전쟁을 치를 정도입니다. 그런 면에서 뭔가 강한 의욕 같은 것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정치 신인’ 이후보는 요즘 하루에 500여장의 명함을 돌리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지역구의 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저녁이 되면 목이 뻣뻣해질 정도다. 때로는 인사를 건넸는데 누군지 모르거나 아는 체도 안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미 각오한 터라 웃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는 여유까지 생겼다.이후보는 현대에 다닐 때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전 6시쯤이면 예외 없이 일과를 시작했다. 평소 신조가 조부가 늘 강조했던 ‘小富在勤’(부지런하면 밥은 안 굶는다)일 정도다.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 선거전에 뛰어들어서도 이런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바빠졌다.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선거사무실에 도착해 하루 일정을 챙긴 다음 곧바로 주민들을 만나러 나간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고 강행군은 오후 9시30분까지 이어진다.사무실로 돌아와 하루를 정리하고는 다시 TV토론 연습에 들어간다. 지역 케이블TV에서 준비 중인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 대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반복해서 연습한다. 좀 낯설기도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알릴 기회로 보고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하루 일과는 밤 12시가 다 돼서야 끝난다.고단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업인 출신이기 때문에 덤으로 얻는 것도 있다. 특히 이제는 선가 자체가 기업의 마케팅 과정과 비슷해지고 있어 기업마인드로 무장한 이후보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마케팅의 요체는 시장이 원하는 좋은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상품이 나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소비자가 사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선거가 바로 그런 것 같아요. 과거와 달리 이제는 조직이나 돈만 갖고는 안되는 시대잖습니까.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 이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공약을 내놓고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유명 CEO 출신이다 보니 주민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괜한 오해도 받는다고 토로한다. 회장 경력을 보고는 창업자의 2세쯤으로 여기거나 큰 부자가 어떻게 서민들의 고충을 알겠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승진이 빠른데다 최고경영자까지 오른 경력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것 같아요. 원래 농군의 아들이고,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고 해도 잘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이계안’이 누구인지 알릴 기회는 많다고 봅니다. 또 주민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겠느냐’며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26년 동안 10번 이사했고, 지금도 형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마지막으로 이후보에게 만약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는 “미래의 일을 가정해 미리 이야기하지는 않겠다”며 “당선이 되면 그때 행동으로 보여 드리겠다”고 말을 맺었다. 약력: 1952년 경기도 평택 출생, 1975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76년 현대중공업입사, 1985년 현대건설 부장, 1998년 현대건설 부사장, 1998년 현대자동차 사장, 2001년 현대캐피탈 회장, 2004년 열린우리당 민생경제특별본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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