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잘하려면 체력이 밑천”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학교 정문까지 거리는 약 200m. 이 길지 않은 거리에 7곳의 보드게임카페가 영업 중이다. 대개 지난해에 개업한 업소들이다. 2~3년 전부터 서울 강남과 신촌지역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보드게임 열풍이 이곳으로 확산된 것이다. 오성환 사장(47)이 운영하고 있는 재미재미 홍익대점은 인근에서 가장 오래된 업소 가운데 하나다.카페의 분위기는 깔끔하고 단출하다. 10여개의 테이블과 계산대, 크지 않은 냉장고와 커피메이커가 전부다. 하지만 분위기는 흥겨웠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게임을 하는 젊은이들이 건강한 공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사장은 오십을 앞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아들이 알려준 사업아이템오사장이 재미재미 홍대점을 오픈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원래 다른 사람이 운영하던 것을 인수했다. 20년간 청춘을 묻은 직장을 떠난 지 2개월 만의 일이었다.“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차장과 부장급 사원 15명에 대해 명예퇴직을 권고했어요. 당시 정보통신 프로젝트 관리 분야의 부장직을 맡고 있던 저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지요.”명예퇴직을 하면서 오사장이 건진 것은 거의 없었다. 회사가 어려운 마당에 퇴직금이 푸짐할 리 없었고 저축해 놓은 돈도 많지 않았다. 명예퇴직 대상자에 대해 3개월간 전업컨설팅 비용을 지원해 퇴직 준비기간을 준 것이 회사가 배려한 전부였다. 20년 근속에 대한 대가라기에는 초라한 대우였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오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은 7월에서 9월까지 진행되는 전업 준비기간에 최선을 다해 ‘먹고 살 길을 찾는 것’뿐이었다.오사장은 생애 최고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전업 프로그램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강의를 듣고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물론 창업 현장을 뛰어다녔다. 관심이 있는 곳에는 무작정 찾아가 정보를 캐냈다. 푸대접을 받기 일쑤였지만 더러 친절한 조언도 들었다. 전업센터에서 개최한 사업계획서 콘테스트에서 1위를 하는 등 그의 창업계획은 차츰차츰 구체화됐다.“1위를 한 아이템이 보드게임카페였어요. 아들이 친구들과 보드카페에 종종 들른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현금흐름이 좋고 재고가 없는 사업을 물색하던 차에 딱 들어맞는 아이템이라는 판단이 섰지요. 워낙 초창기 시장이라 리스크가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커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아이템이 결정됐으니 다음은 입지를 선정할 차례였다. 애초에 오사장이 염두에 둔 곳은 강남권과 신촌이었다. 하지만 강남권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문제가 있었고 신촌은 마땅한 점포가 나지 않아 입지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적당한 점포가 나기를 기다리던 중에 전업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홍익대 앞에서 영업 중인 점포가 나왔으니 인수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점포는 다행히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가시성이 좋아 어디서나 잘 보였고 보유한 게임이 많아 마니아에서 초보자까지 다양한 층의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먼저 매출장부를 보자고 했지요. 일요일 영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최소한 먹고 살 정도는 되더군요.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고 홍보활동을 강화하면 매출이 뛰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단점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점포가 좁아 음식을 팔 수 없었다. 따로 주방을 차릴 공간이 없었던 것. 하지만 보유한 게임이 많아 게임 위주의 서비스를 강화해 단점을 보완하기로 하고 계약을 맺었다. 창업비용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마련했다.다양한 이벤트·할인제도 운영오사장은 홍보를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미팅이벤트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3월에는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미팅이벤트를 가질 예정이다. 게임대회도 개최해 마니아들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타 업소에 비해 다양한 할인 프로그램도 오사장의 아이디어다. 인근 동종업소 가운데 유일하게 이동통신사의 할인점포에 가맹해 멤버십카드를 소유한 고객에게 할인을 해주고 할인쿠폰도 나눠주고 있다. 스낵류는 마진 없이 소비자가에 공급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해 e메일로 보내주기도 한다.“이제 오픈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는 제 예상대로 운영되고 있어요. 매출도 기대한 만큼 올랐고요. 하지만 지금이 중요해요. 게임서비스를 통해 끌어들일 수 있는 손님이 한계치에 도달했어요. 아직까지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이 대학생들 위주라서 몰리는 시간에만 몰리기 때문이지요. 3월 말부터는 게임판매를 시작해 부수입을 올릴 계획입니다.”모든 것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초보자에게 장사가 쉬울 리 없다. 개인시간이 없고 몸이 고단하다는 것은 당연히 예상한 일이었고 충분히 감내할 수 있지만, 장사 수완이 모자라는 데는 씁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최대 비수기인 시험기간에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최근에는 지난 4년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보드게임카페를 하면서 보드게임을 모르는 것도 스트레스예요. 배워 보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게임 한 번 하는데 몇 시간씩 걸리는 복잡한 게임은 어림도 없고요. 손님들이 처음 접하는 게임은 주인이 게임의 법칙을 설명해 줘야 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아요.”사정이 이러니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지금은 주인이 바뀌기 전부터 일해 온 매니저가 돕고 있지만 오는 5월에 그만둘 예정이어서 걱정이다. 대부분의 게임이 수입품이어서 외국어 실력도 좋아야 하고 기존의 게임도 잘 알아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보드게임카페의 주인들 대다수는 나름대로 보드게임의 달인들이어서 걱정이 없겠지만 게임에 익숙지 않은 오사장의 경우 같이 일하던 사람이 그만두면 걱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보드게임카페를 한다니까 사람들이 말렸어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창업을 하는 게 정석이니까 당연한 반응이었지요. 하지만 전 생각이 달랐어요. 사업성이 있고 비전이 있으면 전문성이 부족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 있느냐 없느냐’예요.”오사장은 보드게임카페의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대부분 손님들이 대학생이지만 다양한 연령대로 퍼져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가끔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어색해 하지만 일단 해보면 좋아하시더라고요. 요즘에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손님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어요.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머지않아 보드게임이 전 국민이 좋아하는 놀이문화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합니다.”오사장은 창업을 한 후 하지 못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할 참이다. 원래 등산과 마라톤을 좋아해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종종 들기 때문이다. “장사 잘하려면 체력이 밑천”이라며 오사장은 예비창업자들에게 아이템 선정에 앞서 꾸준한 운동을 권했다.오성환 사장의 Success Key●이미 일반화된 업종은 피해라. 초창기 업종 가운데에서 유망 아이템을 찾아라.●현장조사를 철저히 해라. 머릿속의 사업구상은 공수표에 지나지 않는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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