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현대차 등 ‘단골 방문지’ 굳혀

7월22일 오후 2시55분. ‘톨게이트를 빠져나갔습니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휴대전화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5분 뒤면 우웬 반 안 베트남 국회의장 일행이 공장 정문을 통과할 것이다. LG전자 평택공장 의전담당 강석윤 과장(35)은 일정표를 다시 한 번 훑어본다. 한 달 전부터 준비해 온 행사다. 수없이 치른 일이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한치의 실수라도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방문시간은 1시간. 톨게이트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은 강과장은 대기 중인 김쌍수 부회장에게 도착사실을 보고했다. 공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은 뒤 곧장 대강당으로 옮겨 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졌다. 꽃다발 증정과 함께 김부회장의 인사말이 3분 정도 이어졌다. 이어 쇼룸(전시관)을 둘러보고 PC사업부 라인을 돌아봤다. 190평 쇼룸에는 PDP를 비롯한 LG전자가 자랑하는 각종 제품이 전시돼 있다.금액으로 치면 6억원어치다. 제품별 연구위원이 직접 질의응답에 응했다. PC라인 투어시간은 15분. 투어가 끝나자 곧장 리셉션장으로 자리를 옮겨 약 10분간 다과를 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곧이어 환송식. 선물증정과 함께 우정의 악수를 나눈 국회의장 일행이 공장을 떠났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58분. 그제야 강과장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어낼 수 있었다.1시간 의전 위해 한달간 연습 또 연습한국공장을 찾는 외국 VIP들에 대한 접대는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나라의 체면이 걸린 일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수를 던진 기업들 입장에서도 제품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대통령이나 주지사 등 VIP들의 방문은 주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자랑하는 기업들 중심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이들 기업은 별도의 의전팀을 두고 있다. VIP의 공장방문은 보통 1~2시간 정도 걸린다. 오찬이 곁들여질 경우 2시간이 소요된다. 그 1~2시간을 위해 각 기업의 의전담당 직원들은 보통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특히 국빈급의 경우 사전에 청와대와 의전 및 경호문제 등을 협의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또 영접에 나서는 이를 누구로 할 것인지, 참석 임원을 어느 정도 규모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주로 왕이나 대통령, 총리 등은 A급으로 그룹회장이 직접 나선다. 국회의장, 정당 대표 등은 B급으로 대표이사가 맡는다. 이밖에 C급은 보통 관련 부서 임원이 접대한다.방문일정이 확정되면 분초를 쪼개 계획을 수립한다. 가령 전시관(홍보관)에서 생산라인까지의 이동거리가 50m라면 일반인 걸음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직접 걸어보며 체크할 정도이다. 의전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중 하나는 통역사만큼 능통하다. 그외 지역은 삼성전자나 LG전자의 경우 해당 국가에 파견 중인 직원을 불러 통역을 맡긴다. LG전자의 경우 이들은 보통 일주일 전에 귀국해서 별도의 교육을 받는다. 일정표가 짜여지면 보통 한 달 전, 일주일 전, 사나흘 전, 하루 전 등으로 나눠 철저하게 반복훈련을 거듭한다. VIP와의 거리까지도 염두에 둔다. 직접 통역을 맡은 직원의 경우 VIP와 1m 정도 거리를 두며, 나머지 직원은 5m 정도 떨어져서 수행해야 한다. 이것도 실제로 연습을 반복한다. 다과나 오찬 서비스는 보통 호텔 지배인 출신이 맡는 경우가 많다.삼성전자는 VIP들의 단골 코스. 세계적 IT, 전자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2000년 이후 폭스 멕시코 대통령,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 판반카이 베트남 총리 등 국가원수급만 15명이 방문했다.삼성전자 3년간 국가원수급만 15명 방문VIP들이 주로 방문하는 수원사업장의 경우 역사관, 제품관 등 홍보관만 연면적 1,000여평에 달하고 350여개 제품이 전시돼 있다. 의전팀의 준비는 치밀하다. 회사제품 개발자를 초청해 학습하는 것은 물론 회사의 변화상에 대해 꼬박꼬박 챙긴다. 방문 VIP에 대한 정보도 미리 입수해 대비한다. 이밖에 매너에 대한 교육을 외부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받을 정도로 말투부터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신경 쓴다. 95년부터 의전팀에서 일한 방진선 과장(31)은 “의전은 단순히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정의했다. 의전을 통해 최대한 영업으로 연결시킬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방과장은 일본 황족의 방문이 기억에 남는다고 귀띔한다. 이전까지 전자산업의 경우 일본을 쫓아가는 입장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삼성전자의 첨단제품을 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일본으로 돌아가 ‘인상 깊었다’는 신문 기고문을 쓰기도 했다는 것이다.LG전자도 글로벌 기업답게 VIP들의 방문이 잦은 기업이다. 2002년 이후 하반기부터 우방궈 중국전인대의장,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 등 12명의 국가원수급이 다녀갔다. 특히 지난 2001년에는 몽골 시ㆍ도지사 23명이 LG전자 창원공장을 방문해 디지털 제품 전시장 및 에어컨 생산라인 등을 견학했다. LG전자의 의전팀은 치밀한 준비로 유명하다. 의전팀의 내부 슬로건도 ‘연습, 또 연습’이다 의전담당인 강석윤 과장(35)은 “리허설을 실전처럼 하고 있다”며 “분초를 쪼개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각 제품별 연구위원을 불러 어떤 질문에도 상세하게 답변하는 데 힘쓴다고 전했다.현대자동차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에르도안 터키 총리 등 전ㆍ현직 국가원수급 10여명이 아산 및 울산공장을 방문했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미국과 중국에 진출하면서 양국의 주지사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이 적잖게 드나들었다. 현대차 의전팀은 방문객들을 1~5등급으로 나눠 의전하고 있는데, 이중 1~2등급이 보통 VIP로 통한다. 국빈급이 방문할 경우, 사회자로 현직 아나운서를 초청하기도 한다. 아산 의전팀 관계자는 “부시 전 대통령이 왔을 때 가장 긴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미군에서 직접 나와 보안을 점검하는 등 워낙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현대중공업도 VIP의 명소로 통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부지 150만평, 9개의 도크, 연간 60여척의 배를 만드는 광경은 장관이다. 공장에 들어서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규모에 놀라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보는 것과 같은 놀라움을 맛볼 것”이라고 자랑한다. 지난해까지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사람은 모두 1,250만명. 2003년에만 18만명이 다녀갔다. 이중 VIP들도 상당수다. 장쩌민 중국 주석을 비롯, 대처 영국 전 수상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인물들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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