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잡는 1~2위만 살아남는 시장

경제학의 작동원리는 ‘최소비용ㆍ최대효과’다. 적게 넣어 많이 빼는 게 기본개념이다. 그렇다면 투입자원 대비 산출성과로 봤을 때 백화점의 명품전략은 어떻게 해석될까. 명품경쟁은 아직 초기단계다. 당연히 초기 자본투자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각 백화점들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유통 특유의 막강한 현금 동원력이 최대 장점이다. 다만 명품의 매출기여도를 따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이 채 무르익지 않은 결과다. 투자자금 회수에는 시간이 약인 셈이다. 김영록 동원증권 애널리스트(유통)는 “백화점의 명품전략은 틀린 선택이 아니다”며 “다만 상당히 제한적 시장인 탓에 경쟁력을 갖춘 상위 1~2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명품전쟁은 언제 왜 시작됐을까. 고급화 전략의 배경은 뭘까. 역시 ‘돈’이다. 상위 1%의 매출기여도가 날이 갈수록 높아져서다. 이른바 ‘파레토법칙’(상위 20%가 매출의 80%를 커버한다)의 실현이다. 그렇다고 느닷없는 현상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퍼지기 시작한 게 최근 본격적인 붐이 인 정도다. 남옥진 대우증권 애널리스트(유통)는 “5월 백화점의 명품매출이 감소한 건 일시적 현상으로 6월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며 “여러 복합적인 요인을 감안할 때 명품의 매출비중은 90년대에 비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진단했다. 현재 백화점의 명품매출 비중은 대략 10~15% 정도로 매년 증가세다.또 다른 이유는 할인점의 등장에서 찾을 수 있다. 할인점의 유통시장 장악력은 엄청나다. 지난 5월 현재 백화점 구매고객은 11개월째 하락세다. 백화점에서의 이탈고객은 고스란히 할인점 신규고객으로 변신했다. 특히 중산층의 하단부가 백화점 무용론에 앞장선 분위기다. 박진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유통)는 “백화점 시장이 축소되고 있다”며 “이는 고소득층의 매출의존도 강화로 연결됐고, 결국 명품비중이 늘어나는 연쇄반응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빠져나간 중산층의 매출을 고소득층의 명품판매로 메워보자는 전략인 셈. ‘할인점과의 차별화’는 곧 명품관 신ㆍ증설로 나타났다.소비패턴의 변화도 명품수요의 증가로 이어졌다. 빈부격차 심화가 자연스레 소비패턴을 양극화시켰다는 논리다.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싼 것만 찾아서다. 요즘 저가(할인점)와 고가(백화점)로 나뉜 ‘카테고리 킬러’가 강조되는 건 이 때문이다. 소득수준의 쏠림현상은 전체적인 소비침체에도 불구, 고소득층의 명품소비를 늘렸다. 또 양극화는 고급화를 야기한다. 박애널리스트는 “명품의 대중화를 내세운 매스티지가 확산되고 있지만 중산층 이탈을 걱정해야 할 백화점으로서는 이 전략조차 성공을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명품수요 증가를 문화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재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명품 선호는 한국사회의 동질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며 “체면을 생각하면서 남보다 튀기 위해선 명품을 통한 과시소비가 필연적”이라고 분석했다. 돋보이고자 명품을 사는데 이게 또 남이 사니 나도 산다(편승효과ㆍBandwagon Effect)는 식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오죽하면 한국에선 비싼 게 더 잘 팔린다는 베블린효과를 목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김연구위원은 “게다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계를 해서라도 반드시 살 만큼 소비에 대한 목표의식도 강하다”고 전했다.한편 명품 전성시대는 국내만의 특징이 아니다. 나라 밖 사정도 다를 게 별로 없다. 가령 일본은 명품과 생필품간의 소비양극화가 중대한 마케팅 포인트로 떠올랐다. 일각에선 이를 ‘루이비통 vs 100엔숍’의 대결구도로 해석한다. 2004년 성장률이 1.9%에 머물 만큼 정체상태인 일본 소비시장의 양극화를 단적으로 상징한다고 봐서다. 실제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저가품을 찾게 만드는 한편 원하는 것엔 높은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내각부 여론조사는 이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가 커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명품의 대표선수인 루이비통은 불황 속에서 작은 사치를 누리려는 일본인의 소비심리와 맞아떨어져 현재 본국의 시장규모를 능가할 정도다. 통계에 따르면 루이비통 전체 매출의 70%가 일본에서 발생한다.중국 백화점에서도 명품은 효자상품 반열에 올랐다. 소득수준 향상으로 생계형 소비는 감소했지만 선택적 소비는 크게 늘었다. 특히 럭셔리 명품소비자는 총인구의 13%(1억6,000만명)에 달한다. 모터쇼현장에 현금다발을 들고 와 고급차를 무더기로 사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벼락부자를 잡으려는 마케팅 전략도 치열하다. ‘1%, 그들만의 쇼핑’을 위해 99%의 일반고객을 희생시키는 건 기본이다. 현재 중국 명품시장은 세계 4위 규모. 각국의 명품브랜드가 중국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명품전략은 이제 추세로 정착된 분위기다. 명품구매력을 갖춘 고소득층을 잡기 위한 경쟁 역시 무차별ㆍ무제한적으로 확산된다. 고소득층을 놓치면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도 나날이 높아진다. 이는 유통업체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일반론이다.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마케팅만 해도 낯설지 않은 현실이다. 백화점 명품전쟁의 경제학은 일단 합격점 이상으로 추정된다. 총매출에서 차지하는 명품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어서다. 최근엔 세일 이벤트까지 가세해 명품의 매출기여도를 높이고 있다.명품전쟁의 양상은 꽤 공격적이다. 유통업체뿐이 아니다. 제조업체의 명품시장 공략 열기도 뜨겁긴 마찬가지다. 가령 글로벌 명품브랜드는 한국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었다. 국내고객을 겨냥한 현지화 전략 수립에도 열심이다. 한국디자이너를 채용하거나 한국소비자만을 겨냥한 명품브랜드를 선뵌 메이커까지 생겨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에 세계적인 명품브랜드가 투자를 아끼는 않는 모습이다.다만 백화점의 명품 확대 시나리오엔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게 아니다. 비경제적 선택으로 향후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남애널리스트는 “명품브랜드를 유치했을 때 소비자와 유통업체에 돌아갈 몫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자칫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쉽게 말해 재주는 곰(유통업체ㆍ소비자)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명품회사)이 챙길 수 있다는 염려다. 그도 그럴 게 명품브랜드 입점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입점수수료가 다른 업체들보다 훨씬 낮아서다. 가령 중소의류업체의 입점수수료가 매출의 30%라면 명품브랜드는 15%가 안되는 곳이 많다. 백화점으로선 단가는 비싸지만 판매마진은 더 떨어진다. 수익성 하락위험이다.게다가 명품브랜드라면 백화점과의 관계도 역전된다. 명품이 갑이고 백화점은 을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입점 때 위치선정 권리는 물론 때때로 인테리어 비용까지 부담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명품업체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백화점들의 명품 유치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 같은 불공정 관행도 잦아질 확률이 높다. 실제로 명품 입점이 백화점 매출구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된 케이스가 있다. 최초 홍보 때 반짝했다 이후 고객ㆍ매출감소로 백화점에서 철수한 경우다. 루이비통ㆍ구찌 등이 한국시장에서 선전한 반면, 몇몇 명품메이커는 고전 끝에 백화점에서 간판을 내렸다.그럼에도 불구, 백화점으로선 명품 확대가 불가피한 선택이란 의견이 대세다. 할인점으로의 이탈고객이 쉽게 컴백할 가능성이 없어서다. 수요기반 자체의 축소다. 따라서 향후 소비경기가 회복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게 없어 보인다. 다양한 상품구색과 눈높이서비스로 무장한 할인점의 경쟁력도 만만찮은 장벽이다. 결국 명품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무적인 건 향후 고소득층의 명품수요가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명품=백화점’의 등식만 자리잡으면 승산이 있는 셈. 백화점간의 명품경쟁은 한층 격해질 수밖에 없다. ‘No.1’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 때문에 ‘블루오션’(경쟁 없는 새로운 개척시장)을 찾으려는 노력도 눈물겹다. 가령 예전엔 없던 고소득 30대 싱글족을 공략하기 위한 차별화된 명품입점 전략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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