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마케팅력 겸비, ‘열린 경영’ 고평가

유럽시장 석권, 코스닥 벤처기업중 순이익 1위 기염 … 디지털 가전시장 진출도 야심

변대규 휴맥스 사장(40)은 기술개발에 전념하면서 엔지니어출신 벤처 CEO들의 취약점으로 일컬어지는 유통과 마케팅에서 놀라운 성공을 일궈냈다. 특히 초기단계에 대기업과의 경쟁을 피해 틈새시장을 파고 들어 성공을 일궈냈다는 점은 경영자로서의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변사장은 요즘 벤처기업이 그렇듯 지난 89년 젊음을 담보로 겁없이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한 직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선후배들과 자본금 5천만원을 들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휴맥스의 전신인 건인시스템을 세웠다.“휴렛팩커드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한 변사장은 그러나 기술력은 있지만 시장성이 없는 제품만을 개발, 뼈저린 실패를 경험한다. 시장을 찾지 못한 채 3~4년을 방황한 뒤 변사장은 휴맥스가 도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가정용 영상 가요 반주기를 개발한다.주력 제품을 정한 뒤 그는 유통시장을 체계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엔지니어 출신이다보니 유통과 마케팅에 대해선 잘 알리 없었지만 청계천 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유통업자들과 1대1로 거래를 텄다.현장에 살다시피 하면서 유통업자의 판매방식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그는 적정 재고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면 제품이 팔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재고가 있는 제품부터 파는 것이 유통업자들의 생리였고, 재고를 유지하려면 안정적인 가격 관리가 필요했다. 변사장은 직원들에게 매출실적에 신경 쓰지말고, 일관된 가격으로 제품이 출하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유통업자들이 휴맥스의 제품을 일정하게 구입했고, 기술력이 알려지면서 판매는 급격히 늘어났다.가요반주기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변사장은 95년 디지털 가전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첫 발판으로 셋톱박스를 개발, 96년 시장에 내놓는다.그러나 97년부터 셋톱박스를 발주하기로 한 네트홀드그룹이 카날플러스라는 회사에 흡수 합병되면서 이 계약은 무효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IMF체제가 시작되는 등 안팎으로 악재를 만났고, 셋톱박스를 납품하기로 한 해태전자가 부도나면서 내수시장도 사라지고 만다.이렇듯 최악의 위기에도 변사장은 그동안 차입금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회사를 경영한 덕택에 견뎌낼 수 있었다. 여기에 97년말부터 해외수출의 길이 조금씩 열리면서 급격히 떨어졌던 매출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좋은 기업이란 호기에 잘 나가는 회사가 아니라 위기에 잘 대처하는 회사”라는 변사장의 평소 지론으로 추락할뻔 했던 회사는 되살아났다.‘시가총액이 순이익 20배 기업’ 포부휴맥스하면 유럽시장을 석권한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초기 진출엔 어려움이 많았다. 기술력과 가격경쟁력만 있으면 판매는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 방송사 직구매 시장으로 진출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시장은 크고 넓었지만 기술집약적 제품은 변사장의 생각처럼 기술과 가격이 중요한 경쟁요소가 아니었다. 거대 방송국들은 지속적으로 기술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셋톱박스를 구입하는데 공급업체의 신뢰성이나 시장진출 경력 그리고 브랜드 파워를 꼼꼼히 따졌다. 유럽시장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휴맥스가 이같은 조건을 만족시킬리 없었다.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변사장은 아날로그 가전이 디지털 가전으로 바뀌어간다고 확신, 메이저급인 방송사 직구매 시장보다는 마이너급인 가정용 셋톱박스 시장을 공략하기로 전략을 수정한다. 다만 유럽 최고의 정보통신기업인 노키아가 이미 시장에 진입했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변사장은 휴맥스의 기술력으로 노키아를 앞지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노키아가 아무리 대기업이지만 거대시장과 소형시장에 모두 전력을 기울이기는 어렵다는 약점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변사장의 예측대로 유럽의 가정용 셋톱박스 시장이 연간 5억달러에 달하는 시장으로 급성장하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휴맥스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 결과 올해 유럽지역에 6천1백만달러, 중동 3천5백만달러 그리고 아시아 3백90만달러 등 총 1억달러를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이렇듯 마이너급 시장에서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놓은 휴맥스는 이를 바탕으로 셋톱박스 시장에서 메이저 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방송사 직구매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실제 지난 5월 변사장은 10여개의 유럽 중대형 방송사들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다.휴맥스는 수출시장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코스닥등록 벤처기업 가운데 매출액(5백72억원) 상위 5위, 영업이익(1백20억원) 순이익(1백42억원) 1위를 기록됐다.그는 주주가치증대를 위해선 투명경영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투명경영만이 시장으로부터 적정한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최선의 정책이라는 생각에서 한달에 한번씩 투자자들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경영실적을 공개하고 있다.직원들에게는 교육기회를 자주 주며 경력관리도 하도록 배려해주고 있다. 회사의 성장과 직원의 성장이 따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하나를 택한다면 직원의 성장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변사장의 신념이다. 이를 밑바탕으로 그는 “2002년부터는 디지털 가전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겠다”며 “시가총액이 순이익의 20배가 넘는 건실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휴맥스 해외진출 전략“시장변화 재빨리 포착, 발빠르게 진입해야 성공”“필립스, 노키아는 유럽에서 두 눈 뜨고 장사합니다. 그런데 우린 외눈으로 싸웁니다. 어떤 기업은 두 눈 감고 시장에 뛰어들어요.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겁니다.”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의 실정을 이같이 전했다. 현지에 본사를 두고 소비자의 변화를 발빠르게 잡아가는 외국 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적어도 현지법인이나 공장은 갖춰야 한다는 것이 변사장의 지론.휴맥스는 이를 위해 97년5월 북아일랜드에 현지공장을 세웠고, 지난해 12월 중동 현지법인과 독일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이 회사가 가장 어려웠던 97년, 오히려 북아일랜드에 현지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한 것은 모험이었다.지난 6월엔 미국 실리콘밸리에 삼성전자와 합작벤처기업을 세워 미국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진출전략이 밑바닥 시장부터 다져나간 것이었다면, 미국진출전략은 조금 다르다. 이미 94년 위성방송을 시작한 미국시장에서는 거대시장인 방송국시장으로 바로 진출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브랜드 파워와 마케팅력을 갖춘 삼성전자와 손을 잡았다.변사장은 CEO의 주요 덕목으로 “시장의 변화를 민감하게 체크하고 따라가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경기도 분당 본사에서 원격영상회의로 열리는 유럽 영업회의에 꼭 참석한다. 현지에서 보고 들리는 시장현황에 눈을 떼지 않는 것이 해외진출 성공의 맹아(萌芽)란 소신 때문이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