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경제의원 ‘이 뭐꼬?’

지난 3월 말 는 총선 열기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때 경제인 출신 후보들의 출사표를 담은 ‘경제의원 나요 나!’라는 제하의 커버스토리(4월5일자)를 게재했다. 당시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자유민주연합 등 4당 경제인 출신 후보 44명의 당찬 비전을 인터뷰 기사로 실어 화제를 모았다.가 경제의원을 집중조명한 것은 전체 공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에 불과하지만 경제인 출신의 약진이 국회의 전문성을 높이고 산적한 경제난의 해법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들 또한 인터뷰에서 “경제인 출신이라는 점이 선거에 도움이 된다”며 당선될 경우 경제살리기에 적극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그러나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인 출신 국회의원들의 활약상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당초의 의욕도 온데간데없어 보인다.특히 집권여당은 홍재형, 강봉균, 김진표 등 경제부총리(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이 3명이나 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당내에서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여당 경제통들의 목소리를 도대체 들을 수 없다’는 지적이 곳곳에 터져나왔다.야당도 기업인 등 경제인 출신이 20여명 포진해 있지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경제문제는 뒷전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당사자들은 여야의 극한 정치대결에서 원인을 찾는다.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경제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는 자조섞인 고백이다.열린우리당 소속의 한 지역구 의원은 “정당정치구조에서 개인의원의 역할에 한계를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유명 기업인 출신의 여당 의원도 “경제문제의 지나친 정치화에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의원은 또 “여야가 대치하고 이념을 중시하다 보니 모든 것이 정치 위주로 흐르고 경제를 살리는 데는 소홀해진다”며 여당 내 분위기를 전했다.야당 출신 의원들은 대개 정부여당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이다. 재경위 소속의 한 의원은 본지의 설문조사에서 ‘경제전문가로서의 경험을 의정활동에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경제문제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정치이슈로 편가르기를 시도하는 정부여당의 행태상 야당의 경제문제 제기가 통할 여지가 없다”고 꼬집었다.관계와 언론계를 거친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도 “집권당이자 단독과반수당인 열린우리당이 이념싸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경제인 출신 의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해결책이 없다”며 정부 여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이번 17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시민단체에 의해 ‘베스트 의원’으로 선정된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시각이 조금 다르다.김의원은 “일반 국민이 흥미 위주의 정쟁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미지와 대중적인 관심을 중시하는 정치권의 입장에서는 경제문제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국회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더욱 시니컬하다. 정치권에서 경제문제는 2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고, 따라서 경제의원들이 설자리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윤창현 명지대 교수는 “국가 정책방향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집권세력이 경제문제를 2, 3순위로 여기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제의원들의 설자리가 좁아진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정부 여당에 직격탄을 날렸다.윤교수는 “경제가 어려울 때는, 경제와 관련 없는 법안을 검토하고 입안할 때도 경제적 파장을 우선해야 하는데 지금은 안중에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가령 국가보안법이나 성매매특별법 등도 경제적 후유증을 먼저 고려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일부 경제의원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추경예산 편성을 놓고 열린우리당 주장으로 정부안보다 금액을 늘린 것이나 최근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서 경기부양 강도를 놓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이 대표적이다.또 집권여당 내에서 꼬리를 내리고 있던 경제의원들이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하며 속속 모임을 꾸리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김진표 열린우리당 의원은 8월 “행정부와 청와대에서 경륜을 쌓은 의원들이 앞으로 당내에서 제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전직 경제관료들이 총대를 멨다.유재건 의원이 위원장을, 안병엽 전 정통부 장관이 간사를 맡은 ‘안정과 개혁을 생각하는 모임’(안개모)도 이제껏 짓눌렸던 경제의원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개혁세력을 견제할 것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고 분명히 내비쳤다.요즘 국민 대다수의 관심사는 ‘먹고사는’ 경제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경제의원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고무적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을 때, 그나마 지금의 경제난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경제의원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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