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탈출구 찾아

지난 1991년 최태우 지팜 사장(55)은 16년간 몸담았던 금성사(현 LG전자)에 미련 없이 사직서를 던졌다. 경북 구미 공장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단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던 차였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새로운 길을 택했다. 새 사업을 준비하던 전임 사장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해 입사 이래 연구원으로 일해 온 그의 경력을 높이 산 것이다. 더욱이 그는 서울에 가족을 남겨둔 채 지방에서 홀로 근무하고 있었다. 소홀히 했던 가정도 돌볼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그러나 최사장은 “그때 회사를 그만둔 것이 나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였다”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대기업 퇴사 이후 그가 겪은 10여년의 시간은 다양한 인생의 교훈과 함께 수많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두 번의 실직과 한 번의 사업실패.’이것이 바로 그가 겪은 지난 10년의 역사다.3년 만에 사업체 접고 재취업전임 사장이 만든 사업체는 신기술 관련 업체였다. 전무라는 직함으로 제2의 인생을 출발하는가 싶었지만 그는 결국 6개월여 만에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사업의 핵심인 해외 기술 제휴 문제가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따라서 회사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문을 닫게 됐다.그래서 다시 시작한 일이 홍보용 판촉물 제조회사의 창업이었다. 친지의 권유로 회사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오히려 월급쟁이 시절 모아둔 자금을 모두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데다 관련 분야에는 활용할 만한 인맥도 없었다.최사장은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인데, 당시 나는 돈을 벌기는커녕 쓰느라 바빴다”고 회상했다.“계속 대기업에만 있었으니 돈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죠. 대기업에서야 시장조사해 주는 직원이 따로 있어서 저는 연구에만 매달리면 됐거든요. 하지만 제가 작지만 한 회사의 사장이 되고 보니 직원들 월급 걱정도 해야 하고 시장조사도 제가 직접 어림잡아 할 수밖에 없더군요.”그는 다시 3년 만인 95년에 사업체를 헐값에 정리해야 했다. 다행히 당시 출범한 갑을통신의 연구소장직에 재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소위 ‘뜬다’던 아이템인 이동통신 중계기 개발회사의 연구소장 일은 지금까지도 그에게 무척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직장인으로 돌아오니 사업체를 경영할 때의 10분의 1 정도만 일해도 인정받는 인재가 되겠더군요. 맡은 업무만 책임지면 되니까요.”3년 정도 행운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그의 불행이 또다시 이어졌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시장에서 퇴출되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실직자의 길로 내몰려야 했다.이렇게 두 번째 실직을 경험한 상태에서 그는 인터넷을 만났다. 생계에 대한 불안으로 매일 다니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인터넷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참 허무하대요. 제가 영어를 뛰어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최신 첨단기술을 잘아는 것도 아니고요. 재취업은 불가능해 보였죠.”인터넷을 공부하면서도 프로그램이나 디자인에 매달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결국 인터넷을 활용해 새 사업을 기획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3년간 해 본 판촉물 사업이 그나마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0년 1월 한국소프트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서울 서초동 소호창업지원센터에 입주했다.“80개 업체가 입주했는데 제가 제일 연장자더군요. 제가 ‘4050모임’을 만들었을 정도니까요.”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지금의 ‘지팜’(www.gfarm.net)이다. 선물(Gift)과 농장(Farm)을 결합해 만든 이름이다. 판촉물 쇼핑몰을 온라인에 열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다들 만류했다. 심지어 “3개월 내에 매출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술을 사겠다”는 지인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어려움도 겪은 그였다.판촉물제조협회에 등록된 개별업자들을 일일이 설득해 온라인쇼핑몰에 입점할 것을 권했다. 환갑, 돌 등 100여개의 테마별로 기념품을 고를 수 있게 물품을 분류했다. 쇼핑몰에 최사장 본인의 소개를 상세히 올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 점주로서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였다.쇼핑몰을 연 지 3개월 만에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개월 후에는 월 7,000만~8,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월 매출 1억원의 실적을 올린 경험도 있다.우수 인터넷쇼핑몰을 평가하는 각종 시상식에서 잇따라 수상했다. 창업세미나 강좌의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또 2002년 초부터는 단순한 소호몰 차원을 넘어 온라인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발전시켰다. 해외에서까지 관심을 보여 현재 헝가리 지사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15개 지점을 거느리고 있다.그는 지팜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을 반복했다.판촉물 판매, 우수 인터넷몰로 ‘우뚝’그의 성공스토리는 급기야 몇몇 일간지에 소개되기에 이르렀다.“쉰이라는 나이에 창업해서 생업을 유지한다는 게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죠. 대기업 출신이라는 어떤 사람들은 기사를 보고 찾아와 또 이렇게 묻더군요. ‘어떻게 대기업이라는 배경을 버리고 바닥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었느냐’고요.”최사장은 대기업에서 누렸던 많은 혜택들이 자연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잘안다. 또 그것을 알게 해 준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회사에 다닐 때와 달리 생활반경이 무척 좁아졌죠. 그래서 지금 제 사업과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나이에 저처럼 평생 할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죽을 때까지’ 할일이 있어 기쁘다는 최사장은 “요즘은 개에 미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에 민감한 판촉물 사업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 애견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애견용품 가격비교 사이트인 ‘개나와닷컴’(www.gaenawa.com)을 열었다.“예전에는 직장을 그만둔 것을 많이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게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곳 아닙니까. 양복 입고 좋은 빌딩에 출근하는 대신 작업복을 입고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평생 할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 시작한 애견사업 덕에 앞으로 20년간의 먹을거리는 충분하니까요.”최태우 사장의 Success Key●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창조’다. 즉 과거의 경험을 분해해 재조립하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재조립했다.●잘되는 식당은 한 가지 메뉴로 승부한다. 어떤 아이템이든 한 분야를 특화해서 매달려라. ‘분식집 경영’으로는 성공까지 가기가 너무 멀다.●몸담았던 회사의 ‘껍질’을 벗으면 나는 알몸에 불과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창업을 생각한다면 남을 믿지 말고 스스로 추진해라. 남과 달라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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