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맞벌이족 심야쇼핑 급증

일본 유통시장의 2004년 최고의 화두는 ‘올빼미 슈퍼’다. 24시간 심야영업의 주역은 연중무휴로 문을 여는 편의점들이 터줏대감으로 군림해 왔지만 늦은 밤까지 영업하거나 철야로 꼴딱 새우는 슈퍼마켓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이들 앞에 붙여진 닉네임이 올빼미 슈퍼다.일본 유통업계에서 대형 점포들의 심야영업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대형 점포들의 영업시간을 쥐고 비틀었던 대규모 소매점포 입지법(대점법)의 개정으로 지난 2000년부터 영업시간이 원칙적으로 자유화됐으니 물꼬가 정식으로 터진 것은 햇수로 따지면 만 4년이 돼 간다. 대점법 규정이 일부 완화되면서 중형 사이즈의 슈퍼마켓들이 하나둘씩 심야영업에 뛰어들었던 94년 이후부터 꼽는다면 10년의 세월이 지났다.그러나 올빼미 슈퍼의 명실상부한 전성시대는 이제부터 막이 올랐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업체 간의 경쟁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심야에도 문을 열어 놓지 않는 점포는 순식간에 도태될 위험이 부쩍 높아져서다.의 조사에 따르면 이온, 다이에, 세이유, 이토요카도 등 일본 슈퍼마켓업계의 빅4 업체들이 운영하는 점포 중 폐점시간이 오후 11시 이전인 곳은 전체의 30%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절반을 훨씬 넘는 70%의 점포가 오후 11시가 넘어 문을 닫거나 졸음을 쫓으면서 철야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 유통업계 최강의 경영 인프라와 고수익 기반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이온의 경우 24시간 영업 점포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 업체간의 생존경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 중인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올빼미 슈퍼의 증가는 업체간의 경쟁 격화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미혼 인구의 증가로 1인 1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나홀로 세대’는 오는 2025년이면 1,715만세대에 달하면서 2000년에 비해 무려 33%나 증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본의 전체 세대를 4,500만세대로 잡을 경우 줄잡아 3가구 건너 1가구는 혼자 사는 독신자 가구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맞벌이 부부의 급증도 올빼미 슈퍼의 성업을 부추기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들이 심야 쇼핑에 의존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뿌리를 내리면서 올빼미 슈퍼들의 전성시대를 앞당겼다는 분석이다.심야영업의 전성시대가 열렸다지만 올빼미 슈퍼들이 단순히 영업시간 연장만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도쿄 스기나미구에서 영업 중인 서미트는 저녁시간이 지나면 상품 진열대의 모습이 소리 없이 바뀐다. 채소의 경우 배추는 4분의 1 조각으로, 무는 반 토막 형태로 진열대가 채워진다. 즉석식품은 시간대별로 최저 수량만을 깔아놓는다.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인상을 고객에게 전해줘 구매를 앞당기기 위해서다. 이 회사는 점포 위치에 따라 저녁시간대의 진열 품목을 아예 바꾸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지하철역 입구에 자리잡은 점포에서는 혼자 사는 샐러리맨 등 독신 가정 세대주를 겨냥한 부식, 요깃거리를 오후 8시부터 집중 배치해 놓고 있다.심야영업 슈퍼는 도심부와 지하철역 부근 등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뿐만 아니라 변두리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도쿄 외곽의 소도시 도코로자와에 설치된 세이유의 하나조노점은 지난해 10월 오후 10시에 문을 닫던 영업시간을 단숨에 24시간 체제로 전환한 후 매출이 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와 단신 부임의 회사원 등을 겨냥한 새로운 판매전략의 시도가 들어맞은 결과다. 편의점의 아성을 위협하는 올빼미 슈퍼의 출점 공세는 더욱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시각이다. 가격경쟁력에서 편의점을 압도하는데다 심야 쇼핑 확산으로 든든한 지지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사 스타일의 점포 난립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본능률협회의 사이키 리에코 컨설턴트는 “시간의 이점만을 앞세운 고객 유치 전략은 한계가 있다”며 “성장을 뒷받침할 만한 적절한 전략 구사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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