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빼닮은 제품 속속 등장

PC의 고속화와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이 PC에서 가능하게 만들었다. PC의 멀티미디어 기능은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가 되기도 하고, DVD 영화 타이틀을 재생할 수 있는 조그마한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막강한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기술이 결합돼 지나간 TV 드라마를 PC에서 보는 것이 가능케 됐고, 케이블TV의 방송을 하드디스크에 녹화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이런 PC의 막강한 기능은 가전제품들이 도맡아왔던 여러가지 일을 대신 처리해줄 수 있게 됐지만 PC는 만족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최신의 컴퓨팅 기술은 아예 가전제품과 닮아있는 PC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기능뿐만 아니라 모양조차 가전제품을 닮은 PC. 현시대는 PC와 가전제품이 닮아가는 시대다.닮음의 키워드는 ‘디지털 영상’PC와 TV가 어떻게 닮아갈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디지털’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구조적으로는 아날로그시대의 대명사인 TV와 디지털시대의 상징인 PC는 절대로 닮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둘이 급격하게 가까워지게 된 계기가 바로 ‘디지털 영상’이다. 초기에 PC에서 사용되던 동영상이라는 것은 해상도가 낮고 조악했다. 하지만 PC의 성능이 발달하고 압축기술이 좋아지면서 고화질의 영상을 적당한 크기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발전을 거듭해 본격적으로 디지털 영상이 각광받게 된 것은 ‘DVD’라 불리는 미디어의 개발이 완료되면서부터다.디지털 영상 압축과 멀티미디어의 꽃이라 불리는 DVD 영화 타이틀은 대중의 눈을 현혹하기에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은 DVD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 더 큰 TV와 다채널 스피커 시스템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DVD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1999년 즈음에는 인공위성을 통한 ‘디지털 방송기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실제로 디지털 방송의 규격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당시에 대중은 디지털TV를 구입하기도 했다.하지만 값비싼 디지털TV를 구입할 수 없었던 대중은 PC의 성능에 눈길을 돌렸다. 아날로그TV와는 전혀 다른 주사 방식을 사용하는 PC의 모니터에서는 DVD의 영상을 훌륭하게 재생할 수 있었고, 가전용 DVD플레이어와 전용 앰프에서 만들어내는 다채널 사운드를 PC에서도 훌륭하게 재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C 사용자들은 더 큰 화면과 편리한 사용자환경을 요구하게 됐고, TV와 DVD플레이어 사용자들은 더 싼 가격과 강력한 성능을 요구하게 됐다. 이들 두 진영의 시작과 접근방법은 다르지만, 최종목표는 같았다. ‘디지털 영상을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할 것이냐’는 문제다.서로 출발은 다르지만 닮아버린 제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소니 바이오V 시리즈와 소니 PSX를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소니 바이오V 시리즈는 한마디로 말하면 ‘액정화면과 PC의 본체가 결합돼 있는 제품’이다. 하지만 그 디자인은 굉장히 교묘하게 돼 있어 PC라는 느낌보다 TV라는 감각에 더욱 어울린다.대형의 액정화면은 PC라는 느낌을 지워버리고 멀리 떨어져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DVD 영화 타이틀의 재생은 물론 TV튜너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다. 케이블TV를 연결하면 케이블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가전제품일까. 그렇지 않다. 굳이 구분을 짓자면 소니 바이오V는 윈도OS에 의해서 동작되는 PC다. 즉 PC 속에 TV 기능을 집어넣은 ‘TV in PC’ 개념에 충실할 뿐이며, 가전제품의 모습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가전제품과 같은 모양은 PC 사용에 겁을 내는 대중 속으로 쉽게 파고드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소니 바이오V가 ‘TV in PC’라면 소니PSX는 ‘PC in TV’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PSX는 TV튜너를 내장하고 있는 DVD플레이어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 확장된 기능은 PC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TV튜너를 통해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영상은 내장된 DVD-RW를 이용하여 곧바로 DVD미디어에 녹화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PSX에 내장돼 있는 하드디스크에 방송을 녹화할 수 있고, 언제든지 재생이 가능하다. 게다가 인기 게임기인 PS2의 기능도 갖고 있어서 수준 높은 3D게임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메모리스틱 등을 이용하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TV 화면으로 쉽게 볼 수 있고, PDA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재생하는 것도 가능하다.저작권 문제 등 갈등 요소 산적PC가 가전제품화되고 가전제품의 기능이 강화돼 PC처럼 되어 간다고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영상이 디지털화되고, 또 하드디스크나 DVD와 같은 디지털미디어에 저장이 되면서부터 큰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불법복제에 따른 ‘저작권 문제’다. 저작권이 있는 영상물이 PC를 통해서 불법으로 복제되는 것을 체험한 업계에서는 PC와 가전제품의 만남으로 그러한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홈네트워크에 대한 상호운용성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업계 단체인 DHWG(Digital Home Working Group)는 PC업계, 가전업계, 실리콘업계 등으로 구성돼 차세대 제품에 대한 가이드으로 설정을 준비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부터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대응한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가이드라인에는 디지털 장비의 홈네트워크에 관한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DHWG의 가이드라인에는 ‘디지털 저작권 관리’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직은 결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사실 DVD 영화 타이틀에는 이미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여러가지 암호화 코드가 적용돼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고도로 발달된 소프트웨어 기술과 PC의 막강한 성능에 의해서 여지없이 깨어져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영상데이터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전제품의 기능을 추구하는 PC에서 사용되는 OS에는 CCI(Copy Control Information)의 권한에 따라서 시스템 차원에서 콘텐츠의 재가공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소니의 경우는 자사의 제품에 이러한 보안기술을 추가하고 있지만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영상출력 방식을 경유한 불법복제에서 허점이 생기게 된다. 물론 아날로그 방식의 신호에도 암호화를 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방식의 영상신호가 존재하는 상태에서 그 모든 경우에 대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가전제품이고 싶어 하는 PC와 PC를 닮아가는 가전제품들은 홈네트워크시대를 열고 있다. 그리고 TV방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홈서버의 개념도 만들었다. 홈서버는 TV와 다양한 디지털 기기 및 PC를 연결하게 만들었다.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디지털 데이터는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NEC는 ‘닷 게이트’라는 소프트웨어를 PC에 장착해 가전시장에 대응하고 있으며, 히타치는 PDA를 TV와 가전제품에 연결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도시바는 현재보다 수백배의 성능을 가진 가정용 서버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 NTT는 웹서버와 가정용 보안카메라 기능을 갖춘 무선 라우터인 ‘리빙 게이트 I’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삼성과 삼보 등이 기존의 PC 개념에서 탈피해 가전제품에 근접한 개념의 PC를 개발, 홈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현시대는 ‘디지털’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능을 추구하는 홈네트워크가 진행 중이다. 그 시작으로 디지털 영상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앞으로 냉장고와 에어컨, 보일러 등의 제어도 홈네트워크에 포함될 것이다. 분명히 시간이 흐를수록 홈네트워크화는 더욱 가속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업체들간의 규격 통일, 디지털 콘텐츠의 보호 문제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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