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을 잇는 사람들

‘가업’ 하면 흔히 10대 이상 내려오는 일본의 우동집을 연상한다. 흔히 이들은 장인정신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은 건설업체인 일본의 콩고구미(Kongo Gumi)이다. 이 회사는 578년에 세워졌다. 무려 40대에 걸쳐 1,400년을 지속해 온 것이다.세계경제에서 가족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찮다. FFI(Family Firm Institute)에 따르면 가족경영기업들이 미국 고용창출의 78%, 근로자 고용의 60%,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대다수 기업들이 2, 3세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특히 기업에 다니던 직장인들이 부모세대가 땀 흘려 일군 가업을 이어받는 경우가 흔해졌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회적 분위기와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삼팔선, 사오정 등 용어가 말해주듯 앞날이 불안해진 직장인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반대 현상도 함께 파악된다. 중소기업의 2세들이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가업 잇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일반 기업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대다수가 승계과정에서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의 존 와드 교수는 가족기업 전체의 80% 정도는 2세대에 승계되지 않으며, 겨우 13%만이 3세대까지 넘어간다고 밝혔다.그러나 규모가 작은 기업이나 자영업 등의 경우 ‘가업 잇기’는 물려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창의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더불어 부모가 걸었던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보람도 만만치가 않다고들 한다.이번에 소개하는 네 사람도 이런 경우다. 이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다가 가업을 잇기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가시밭길을 자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또 이들은 부모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서 빈 구멍을 메웠거나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해 가업 잇기의 성공사례로 손색없어 보인다.강승모 유성물산교역 사장은 재정경제부 최연소 과장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을 만큼 잘나가던 공직을 접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중소기업 사장으로 변신했다. 병세가 악화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웠을 뿐만 아니라 ‘품질 제일주의’를 신조로 삼고 있는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허영석 소공동뚝배기 사장은 미국과 일본에서 3년간 공부했다. 공무를 마치고 귀국해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에 취직, 3년간 AE로 뛰다가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는 젊은 패기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전개해 현재 40여개의 가맹점을 개설했으며, 중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그는 ‘초심으로 일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지키는 동시에 다양한 경영기법을 접목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성언 고우영화실장은 만화가인 고우영 화백의 둘째아들로 미국에서 디자인회사에 다니던 중 귀국해 아버지 일을 도맡아하고 있다. 화실은 그의 귀국으로 되살아났으며, 암수술로 위기에 처했던 고화백은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고씨는 단순히 아버지 일을 물려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버지의 작품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가 주력하고 있는 복간작업도 그 가운데 하나이고 앞으로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으로 다양화할 계획이다.주효석 모박사 부대찌개 실장은 잘나가던 조경기사이자 공무원 신분에서 부대찌개집 살림을 맡은 경우다. 연로하신 아버지를 대신하기 위해 뛰어들었지만 자기 나름의 경영복안을 갖고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상호도 기사식당에서 모박사 부대찌개로 바꿨다. 프랜차이즈 사업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물론 부모님의 음식맛에 대한 일관된 고집은 그대로 지켜나갔다는 점이다. 그는 지킬 것은 지키고 확장할 것은 확장하는 경영방침으로 평범한 식당을 기업으로 변모시켰다.이들 네 사람의 스토리를 잘 살펴보면 가업 잇기의 성공비결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선대의 경영철학을 철저히 계승했다는 점이다. 제품의 질이나 서비스 면에서 창업자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고, 이를 위해 피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또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혁신을 꾀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가업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들에게서는 독불장군식의 경영방침이나, 무리한 사업확장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물려준 사람도, 물려받는 사람도 행복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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