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혁신’ 마인드를 가져라

개선활동으로 원가절감 나서야… 정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해야

‘해외로 꼭 떠나야 합니까?’ 해외로 떠나는 기업 CEO들에게 물으면 대다수가 “그럼 다른 방법이 있나요” 하고 되묻는다. 이들은 인력난, 인허가 등의 각종 규제, 대기업의 원가압력, 대립적인 노사관계 등을 들며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국가적으로는 산업공동화라는 어려움이,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이라는 숙제가 남기 때문이다.기업이 해야 할 일초점을 기업에 놓고 생각해 보자. 국내 환경이 어렵다고 해외로 나가야 하는가.이 물음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기업마다 처한 사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는 것이다. 부품사업을 하는 벤처기업 에스세라는 지난 96년 중국 옌타이에서 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 수원 근방에서 공장용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인 휴대전화 단말기 부품 레조네이터(Resonnater)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서다. 이 기업은 왜 국내 회귀를 꾀하고 있는 것일까. 최재영 개발팀장은 “중국지역의 사업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기와 용수가 안정되게 공급되지도 않을뿐더러 비싸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 문제로 생산 차질을 빚은 적도 많다고 한다. 또 고급인력을 유치하는 것도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고 했다.그래서 중국을 경험한 에스세라가 1년간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자동화와 첨단제품이었다. 그는 “차라리 인프라가 좋은 한국에서 자동화를 통해 혁신을 꾀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최종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물론 중국에는 저가제품, 국내에서는 고가제품이라는 이원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에스세라의 리턴은 중국진출을 염두에 둔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대륙은 지난 77년부터 다양한 종류의 차단기를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다. 이 업체는 아예 해외이전 대신 생산혁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금용 생산혁신팀장은 “세계적인 기업들은 고임금을 떠안고도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며 “우리도 국내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선의 노력도 하지 않고 떠나는 것은 일종의 현실도피라는 것이 대륙 경영진의 방침이라고 귀띔했다. 최팀장은 “국내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것은 20~30% 정도인데 그렇다면 70~80%의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라는 보고서를 통해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을 통한 비용절감이 아닌 국내에서 기술개발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양호 수석연구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개발 노력 없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선진기업들처럼 자국내 생산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문제는 대기업은 이미 오래전에 각종 혁신활동으로 원가절감에 나서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가전업계 국내 최강인 LG전자의 경우 10년이 넘는 합리화 활동 결과, 현재 국내에서 인건비 비율을 5%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다. 매년 큰 수익을 내고 있는 철강업체인 포스코도 6시그마 운동을 전사적으로 실시해 오는 2006년까지 약 9,000억원의 재무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엄두를 못내는 기업이 적지 않다. 하지만 특별한 기술 개발력을 가지지 못한 기업은 ‘혁신’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정부의 역할은정부가 역할을 거론하면 답은 쉽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현장의 기업 CEO들과 전문가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부 정책으로 대립적 노사관계 해소 및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44.5%), 대체산업의 육성 및 산업의 고부가가치화(20.8%) 등을 들었다. 그 뒤를 고비용구조 개선(14.7%), 규제완화(6.4%), 인력수급 원활화(5.9%) 등이었다.김익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일반 기업들이 창업하고 안심하고 기업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또 “관료주의가 가장 큰 문제이다. 공무원을 상대해서 인허가를 따내는 게 너무 어렵다. 따라서 민간경제가 활성화되도록 세제, 금융, 인허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과다한 노동조합의 경영간섭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산업공동화에 대한 해결책도 별반 차이가 없다. 무엇을 선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신성장산업 육성’이라는 답으로 귀결된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산업경쟁력 실장은 지금의 해외이전은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가 겪어야 할 필연이며, 선진국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이 산업공동화를 우려하기보다 신사업구조조종기로 파악한다. 따라서 탈공업화는 당연한 현상이며, 탈공업화 과정을 밟아야만 신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닦인다는 것이다. 하실장은 “민간기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국내 잔류 성공사례 ① - 이원기 한틀시스템 사장고부가가치 위주 사업 전환 ‘성공’전자개표기 전문업체인 한틀시스템(www.hantle.com)은 2003년 11월 홍콩법인을 설립해 중국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생산은 100% 국내에서 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중국진출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사장이 이렇게 자신만만한 것은 한틀시스템이 만드는 선거개표기, 서류자동분류기, OCR 프로세서 등은 설계에서부터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이사장은 “개표기 등은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주로 생산하는 제품이다 보니 인건비, 원자재비가 경쟁사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올해 초 100억원에 달하는 필리핀 전자개표기 입찰경쟁에서 경쟁사를 제칠 수 있었던 것도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한틀시스템은 2002년 280억원의 매출에 7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2003년에도 이 정도 수준이라고 이사장은 밝혔다.한틀시스템이 개표기시장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은 이사장이 고부가가치 사업 쪽으로 일찍 방향을 튼 결과이다. 주로 이전까지 현금입출금기(ATM)에 들어가는 수표 인식기, 수표 입출금기, 지폐 방출기 등 금융자동화 관련 제품을 생산해 왔으나 경쟁업체들이 덤핑을 치고 나오면서 원가부담에 시달렸다. 이런 와중에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개발에 나섰고, 이후 사무자동화 부문과 선거용 자동개표기 등 신제품을 속속 출시하게 된다.이사장의 전략은 꾸준한 기술력 향상과 탄탄한 조직력으로 승부를 내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가령 2002년 각종 지방선거와 보궐선거 등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내세운 조건은 8개월이었다. 외국기업과 대기업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간이었지만, 중소기업 특유의 순발력으로 수주했다. 실제로 이사장은 “번돈은 모두 연구개발비에 쏟아붓고 있다”고 밝힐 정도이다. 현재 임직원 73명 중 39명이 연구소 소속이다. 한때 연구인력은 국내에 두고 생산만 중국에서 하는 방향으로 고민한 적도 있지만 “부품가공-생산-서비스가 하나로 움직여야 기술력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보고 포기했다. 중소기업들의 잇단 해외진출에 대해 이사장이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공계 인력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다.“일본처럼 신제품이 나오면 엔지니어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의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합니다.”그래야만 국내에서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국내잔류 성공사례 ② - 이영규 은성코퍼레이션 사장기술력·생산합리화로 승부은성코퍼레이션(www.silverstar2000.com)은 극세사를 특수가공한 고기능성 청소용품, 목욕용품, 스포츠용품, 반도체용 와이퍼 등을 생산하는 산업용 섬유 전문기업. 탄탄한 기술력으로 해외 이전 없이 국내에서 성공한 경우다. 은성은 전세계 40여개국에 한해 1,700만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으며 IMF 시절인 97년 28억원의 매출에서 단 5년 만인 2002년 254억원의 매출로 10배 이상 성장했다. 극세사(microfiber)는 머리카락의 100분의 1 정도로 매우 가는 섬유를 말한다. 은성의 이러한 고성장의 바탕에는 이 회사 이영규 사장이 일찌감치 기술력과 생산합리화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이사장은 매년 매출액의 5%를 R&D 분야에 투자하고 있으며 전체 임직원 중 20%에 달하는 개발인력이 신소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그렇다고 이사장이 중국 이전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핵심기술도 이전해야 하느냐는 고민에 부딪혔다. 이사장은 “연구개발 중심 기업에서 핵심 생산시설의 중국 이전이나 기술이전 등은 단기적으로는 인건비 감소 등의 효과를 올릴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는 기술경쟁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이런 이유로 경쟁기업들이 중국으로 떠날 때 오히려 공장을 짓는 등 투자에 주력했다. 저가 제품의 대량 공급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소, 디자인실, 생산시설, 사무실 등의 복합공간을 갖춘 자체 공장을 신축하고, 원사 가공에서부터 완제품 생산,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괄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 등 수요자의 니즈에 맞는 생산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수출의 경우에도 저렴한 가격에 비해 일본제품과 동등한 품질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제품의 경우에도 가격은 20% 정도 비싸지만 월등한 품질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이사장은 밝혔다.이사장은 애초에 중국에 가지 않더라도 생산성 혁신을 통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아직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기술적인 노하우가 쌓여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저희는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자동화 생산시설 구축을 통해 중국이 모방할 수 없는 신소재 개발에 성공했고, 개발된 신소재를 빠르게 상용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이사장은 한국기업이 사는 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차별화된 기술과 상품개발, 디자인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우선 차별화된 기술개발과 상품개발, 디자인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기술경쟁력과 제품경쟁력을 갖추고 새로운 니치마켓을 개척하고 리드해 나간다면 한국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