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CEO 양성 요람 떠올라

주5일 근무제 시행, 조기명퇴 바람이 재교육 관심 부추겨

“MBA와 EMBA의 인식 차이나 평판은 어떻습니까.”지난 10월 중순 서울 프라자호텔에서는 모 대학의 입학설명회가 열렸다. 대상은 100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이 최근 개설한 EMBA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여서인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특히 점심시간과 연결돼 있던 질의응답 시간에는 답변자로 나선 KAIST대학원 교수들이 점심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이 자리에 참석한 한 참가자 역시 인사담당자로서 MBA과정과 EMBA과정에 인재를 파견했을 경우 각각 얻을 수 있는 이점에 대해 문의 중이었다.최근 차세대 CEO를 사내에서 양성해야 한다는 인재육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EMBA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형성되고 있다.EMBA란 ‘Executive Master degree of Business Administration’의 약자로 말 그대로 중간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말한다.이미 북미와 유럽 등 해외에서는 20~30년 전부터 보편화돼 있는 이 과정에 최근 국내 교육기관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국내 EMBA과정 현황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CEO를 양성하기 위해 인재를 훈련시키는 방법은 해외연수 정도가 최선이었다. 가능성 있는 인재를 뽑아 외국 유명 대학의 MBA과정에 입학하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이었다.하지만 이 경우 기껏 훈련시켜 놓은 인재들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단점이 제기돼 왔다.따라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국내 MBA. 기업 입장에서는 인재를 국내에 묶어두면서도 교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야간과정 중심으로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EMBA 역시 우리나라의 경우 중간관리자를 위한 과정이라는 본래의 컨셉보다 해외 MBA의 대안 차원에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국내에 처음 등장한 EMBA는 산업정책연구원이 핀란드 헬싱키대학과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는 KEMBA(Korean EMBA)다. 지난 95년 1기를 모집한 이 과정은 졸업생만 1,000여명이 넘는다. 단순히 EMBA과정으로 출발한 데서 발전해 98년 이후로는 전공분야도 4개 분야로 확장해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세분화된 교육을 추구하는 이 같은 경향으로 최근에는 맞춤교육 형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늘었다. 예컨대 금융업종과 전자업종의 회사에서 요구하는 인재들의 능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각각 다른 교육 프로그램을 적용시킨다는 이야기다. 가장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기업들의 다양한 요구를 경험해 왔다는 특징이 있다. 직장경력 3년차 이상을 모집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졸업생들은 평균 6~7년차의 과장급 이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최근 신설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EMBA과정은 ‘본격적인 EMBA시대를 연다’는 각오로 선보이면서 아직까지는 생소한 EMBA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 과정은 아예 처음부터 직장경력 10년차 이상으로 모집대상을 못박아두고 있다.내년 3월 개강 예정으로 문을 연 이 프로그램은 특히 비싼 학비로 한바탕 유명세를 치렀다. 대개 EMBA과정은 일반적인 MBA과정보다 2배 가량 되는 학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지만 이 학교의 경우 연간 3,000만원이라는 국내 최고가를 책정해 화제가 됐다.10월에 열린 입학설명회의 열기에서 높은 관심도를 보여줬던 KAIST의 EMBA과정은 지난 11월 말 입학지원을 마친 결과 경력 12~15년 정도의 지원자들이 모여든 것으로 나타났다.그밖에도 연세대 상남경영원도 97년부터 워싱턴대학과 손잡고 6개월간은 한국에서, 그리고 1년간은 미국에서 수학하는 과정을 운영 중이다. 또 고려대 역시 올 봄 EMBA과정을 개설해 4학기 과정으로 실시하고 있다.연세대의 프로그램은 LG그룹의 맞춤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LG와 함께 손잡고 기획돼 LG 직원이 정원의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LG그룹이 인재경영에 관심을 가지면서 개설된 프로그램으로 선진기업의 성공사례나 경영기법을 배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왜 EMBA인가지난 11월 중순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후보자를 선발하고 CEO로 집중 육성하는 승계 프로그램을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EMBA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무엇보다 인재양성이 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특히 올해 기업들의 최고 경영 이슈 중 하나는 ‘핵심인재’로 대표되는 인재전쟁으로 인재를 확보하고 양성하는 데 기업들이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한해이기도 했다.EMBA과정이 개설돼 있는 산업정책연구원의 도재헌 KEMBA 팀장은 “최근 기업들이 설비투자보다는 인재육성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개인들 역시 ‘이제 MBA는 성공을 위한 필수자격증’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지원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EMBA에 지원한 조욱성 대우조선 이사는 “예전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쌓인 노하우가 큰 힘이 됐지만 요즘은 정보를 비롯한 모든 것이 대중화됐다”면서 “나만의 특별한 강점을 만들지 않고는 부하직원을 통솔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지원했다”고 이 과정에 거는 기대를 밝혔다.2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EMBA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국내에서 이 같은 과정이 잇따라 개설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IMF를 겪으면서 개인 자격으로 EMBA과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이유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데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기계발에 더욱더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기업으로서는 전일강의가 진행되는 주간과정의 MBA에 직원을 파견하는 것보다 주말강의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 인재를 투입하는 것이 인력손실이 적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국내 EMBA의 취약점과 전망아직까지는 특정 기업체의 파견교육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 국내 EMBA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해외의 EMBA나 국내의 일반 MBA과정에 비해 특정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아직까지 지원율이 높지 않은 까닭에 한 기업에서 지원자가 많이 몰릴 경우에도 그냥 수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또 태생적으로 대기업의 필요에 의한 금전적 지원으로 생겨난 케이스도 있다.따라서 이 경우 EMBA과정이 목표로 하는 실전경험의 공유가 특정 업종에 편중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최고경영자과정과 혼동되는 일도 여전히 발생한다. CEO를 직접 대상으로 하고 있는 최고경영자과정과 달리 EMBA과정은 곧 CEO가 될 임원들에게 CEO의 자질을 심어주는 게 주요 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해외에서 받는 교육에 비해 글로벌 경영 사례를 수집하기 어렵다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EMBA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각 교육기관에서 아직까지 실적이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과정을 개설, 확대하는 데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또 해외에서는 MBA과정에 버금갈 정도로 EMBA과정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MBA과정을 경험한 직장인들이 연차가 오르면 EMBA과정을 통해 재교육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대학의 입장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는 ‘제자’들을 통해 산학협동의 길을 트고 높은 수익창출의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윈윈전략’으로 판단하고 있다.또한 국내에 주5일 근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조기명퇴 바람으로 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적인 상황 역시 EMBA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국내 EMBA과정이 차세대 CEO 양성의 해답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INTERVIEW | 김영걸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기업의 수요 예상보다 많아 조기도입”“이제 해외로 인재들을 2년씩이나 내보내기에는 비즈니스 사이클이 너무 빨라졌죠.”신설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EMBA과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김영걸 교수는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인재들이 빠진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기존에 해외로 교육을 보내왔던 기업들 스스로도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동안 유명 비즈니스 스쿨의 EMBA과정을 듣기 위해 곳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모여드는 것을 보고 확실히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과정이구나 하고 생각했죠.”예를 들어 주말에 EMBA 수업이 있을 때면 HP, 인텔 등 유명 기업의 간부들이 뉴욕, 시카고 등에서 단 하루 수업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와 한 장소에 모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한국에 오자마자 100대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다녔습니다. 수요가 부족하면 내년 이후에나 개설하려고 했는데 인사담당자들이 워낙 강하게 필요성을 피력하더군요.”특히 한국경제를 이끌어 온 국내 기업들의 경우 급성장을 경험한 한국경제와 마찬가지로 기업 스스로도 급성장을 겪은 곳이 많다. 따라서 대체로 단기적인 성과위주로 경영이 이루어져 교육을 통해 갖춘 인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그는 또 잘 교육된 중간관리자의 인프라를 갖춘 기업이 오너와 관계없이 훌륭한 회사(Great Company)로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저희가 국내외 다른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교육의 강도에 신경을 쓴 것입니다. 한 학기 등록금이 국내 최고라고 적극적으로 알린 점 역시 그만큼 자신이 있어서고요. 저희 교수진으로서도 상당한 노력을 요하는 과정이 될 겁니다. 저희가 가르친 내용이 각 기업에서 단 일주일 만에 즉각 적용된다는 사실은 저로서도 무척 설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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