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냐 전문화냐 선택만 남아

국내 은행권은 1997년 환란 후 정부 주도의 금융구조조정 과정을 겪어왔다. 미국의 주요 은행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해 온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효율성 개선과 비용절감, 지역기반 확대를 통한 신규시장 진입, 고객에 대한 교차판매 기회 확대 등을 위해 인수합병을 추진했다.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정부의 보이는 손에 의해 구조조정을 겪은 국내 은행산업은 그 과정에서 대형화와 업종 다각화를 급속하게 진행됐다.1998년 말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충청은행과 대동은행, 동남은행, 동화은행, 경기은행 등 5개 은행이 퇴출됐다. 그 후 다양한 형태의 합병을 통해 27개 일반은행 중 현재 10개 은행만 살아남았다. (표참조)살아남은 우리금융그룹과 하나은행, 국민은행, 신한금융지주회사, 한미은행, 제일은행, 외환은행, 대구은행, 전북은행, 부산은행 등의 10개 은행은 현재 각각 과거와는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상위은행의 집중도가 과거에 비해 대폭 증가한 동시에 하위그룹은 M&A설에 끊임없이 휘말리고 있다. 국민은행과 신합금융그룹은 리딩은행으로 거듭났고, 우리금융그룹과 하나은행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외환은행과 한미은행, 제일은행 등 규모와 사업범위라는 측면에서 약세를 보이는 은행에는 외국자본이 진입해 있고 동시에 인수합병 가능성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은행으로의 자금집중 현상에도 불구하고 향후 은행의 성장성은 최근 1~2년 사이에 보여 왔던 패턴으로 진행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내부 성장(Internal Growth)이 어려워짐에 따라 추가적인 M&A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제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김박사는 이어 “은행산업의 절대 수익규모는 구조조정의 성과와 경제여건 호전으로 2000년 이후부터 회복국면을 시현했으며 수익부분의 중장기 추세는 아직까지 판단하기 어렵고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특히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향후 아파트 가격이 급락하거나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경우 담보부실화에 따른 가계의 부채상황 능력 저하가 가계대출 부실로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은행권 부실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은행의 수익성 관점에서 볼 때 향후 추가 M&A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스콧 크리슨텐슨 JP모건 아시아태평양 뱅킹 본부장은 “아시아 M&A 사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M&A시 투자자는 인수 이후 이익창출 증대 효과보다 비용절감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비용점감은 12~24개월 이내에 증명돼야 긍정적인 시장평가를 유지할 수 있으며 특히 자국 내 M&A의 경우, 약 40% 정도의 비용절감이 목표가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아시아에서는 M&A를 통해 1차적으로 추구되는 비용절감 효과가 정치경제 및 제도적 제한에 막혀 있으며 이는 M&A의 성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커크 윌슨 모건스탠리 IB뱅킹 글로벌 본부장은 “세계 전체 금융산업의 M&A는 98년 5,600억달러(약 680조원)를 정점으로 감소추세에 있었으나 20003년 다시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전체 금융 M&A 계약 중 은행이 60~70% 정도를 차지하며 M&A 계약 규모에서 전체 금융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세계적으로 초대형 금융그룹과 전문화 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며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하며 전세계적인 은행산업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분석했다.최근에는 은행의 은행에 대한 M&A뿐만 아니라 타 금융권을 인수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증권 또는 카드사 인수의향을 내비쳤고,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또한 LG카드,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의 합병 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구조재편 결과 생존한 10개 은행은 현재 과도기적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은행이 조만간 대형화 또는 전문화 중 한방향으로 전략적 선택을 취해야 할 당위성이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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