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비중 사상 최고… 40% 돌파

삼성전자·국민은행 등 우량주 유통물량 외국인이 싹쓸이

‘아임 스틸 헝그리.’(I’m still hungry.)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8강 진출 후 내뱉은 일성이지만, 이 말은 외국인들이 한국증시를 야금야금 잠식해가는 현 상황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지난 10월29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투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섰다. 29일 종가 기준 상장종목의 시가총액은 329조9,966억원. 이 가운데 외국인 보유액은 132조756억원으로 40.02%를 차지했다. 92년 외국인에 대한 증시 개방 이후 94년 말 10.19%, 99년 말 21.91%, 2000년 말 30.8%, 2001년 말 36.62%, 2002년 말 36.01%의 추세로 외국인 비중이 증가해 왔다. 아시아권에서 일본(19%), 대만(20%)은 물론 금융선진국인 미국(11%), 영국(32%)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보다도 월등히 높다.외국인들은 올해 들어 IT와 금융주를 중심으로 시가총액 상위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삼성전자(2조2,169억원), LG전자(7,364억원), 삼성전자 우선주(5,401억원), 한국전력(5,346억원), 한미은행(4,377억원), 국민은행(3,699억원) 등의 순이다.이에 따라 이들 기업의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주식의 58.3%(10월29일 기준)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비중은 72%에 달한다.국내 기관ㆍ개인투자자 소외 심화외국인 비중과 영향력이 이처럼 커지면서 국내 기관과 개인투자자는 더욱 소외되고 있다. 외국인들이 올해 10조원이 넘는 순매수를 기록하는 동안 기관과 개인은 각각 7조286억원, 5조4,839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했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정부와 증권업계의 갖가지 투자유인책에도 불구하고, 한번 떠난 증시로 다시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더욱 심각한 점은 개인이나 기관이 증시로 돌아오고 싶어도 살 수 있는 물량이 없다는 것. 외국인들이 우량주 물량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주식의 경우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제외한 유통되는 주식(전체 주식의 79% 수준)의 73%를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27%의 물량을 국내 기관과 개인이 나눠가져야 하는데, 그나마 외국인의 집중 매수세로 주가가 크게 올라 개인투자자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주식이 됐다. 국민은행(유통물량 중 외국인 비중 81.8%), LG전자(48.9%), 현대자동차(59.4%), 삼성SDI(50.9%)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외국인이 선호하는 주식의 유통물량 상당부분은 이미 외국인 손에 있다고 볼 수 있다.최병화 동부증권 투자상담사는 “투자의 안전성을 위해서는 우량주를 추천해야 하는데, 일부 우량주들은 지나치게 주가가 높은데다 유통물량마저 구하기 힘들어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사실상 불가능한 종목이다”고 말했다.기업 성장잠재력 위축 우려SK(주)의 주식을 대량 매집,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버린의 예에서 보듯이 외국인 지분율이 높을 경우 경영진이 경영권 행사에 부담을 느끼거나 실제로 제한을 받아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크게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0월7일 기준으로 삼성, LG 등 10대 그룹의 주식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44.3%. 그룹별로 보면 삼성 53.3%, LG 27%, SK 41.5%, 현대자동차 40.6%, 한진 23.7% 등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은 총수 일가의 지분율보다 외국인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삼성증권 이기봉 연구위원은 “기업은 장기적인 성장엔진을 찾기 위해 단기적인 이익 창출을 희생하는 과감한 투자를 실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부 외국인투자가들은 단기적인 자본소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장기적인 투자결정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최근에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관련 제도 개선을 정부에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대한상의는 “선진국에서는 적대적 M&A에 대해 다양한 방어수단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오히려 최소한의 방어행위마저 규제하고 있다”며 신주발행금지, 총수일가의 지분율 공개 등의 제도를 우선 폐지하고, 10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 대해서는 2배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는 차등의결권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증권거래소 자료에 의하면 97년 이후 외국인투자가들은 국내 증시에 59조원을 투자해 57조원의 투자수익을 올렸다. 수익률로 따지면 97%에 달하는 훌륭한 성적이다. 대부분 외국인투자가들이 글로벌 관점에서 장기적인 투자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증시 성장 수익의 상당부분이 국내 투자자가 아닌 해외투자가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특히 40%가 넘는 외국인투자가들의 지분 대부분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에 집중돼 있어 이들 기업의 기업가치 상승의 과실을 외국인투자가들이 독차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안정판·불안요인 양면성삼성증권 이기봉 연구위원은 “일부 단기성 유동자금을 제외한 대부분 외국인투자가들은 국내 투자자보다 주식회전율이 낮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장기투자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인 지분의 확대는 국내 투자자들의 잦은 매매로 인해 변동성이 확대됐던 국내 증시에서 투자위험을 감소시켜 주는 안정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외국인투자가들의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했다. 이와 함께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유치와 함께 증시활성화 방안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회계 및 증시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어 시장효율성과 경영투명성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그러나 유동성 악화 및 글로벌 투자환경 변화요인으로 외국인투자가가 순매도세로 돌아서면 국내 증시는 폭락할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같이 지수 내에서 비중이 큰 종목의 실적전망이 단기간에 악화될 경우 대규모 자금이 국내 증시를 이탈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증시는 단기간에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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