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유통지존’ 싸움 막 올라

신세계 “백화점도 따라잡을 것”… 롯데 “할인점 1위 탈환 가능”

“(롯데가) 따라오기는 힘들 겁니다.”(신세계 관계자)“(순위변동에) 전혀 신경을 안 씁니다.”(롯데쇼핑 관계자)올 상반기 실적에서 순위가 변동한 것에 대한 양사의 입장은 이처럼 달랐다. 그렇지만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과 순이익에서 신세계가 롯데를 각각 1조원, 160억원을 앞서나가면서 양사의 ‘유통지존’ 논쟁은 더욱 가열됐다.신세계는 ‘22년 만에 유통업계 최강자로 등극’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통해 대외적으로 ‘지존’임을 선포했다. 이에 롯데는 “회계상의 기준이 변했을 뿐 위상의 변화는 없다”는 주장을 펴며 ‘지존은 여전히 롯데’라며 맞대응했다. 향후 전망도 엇갈린다. 신세계는 “1위는 대세이며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본 반면, 롯데는 “곧 예전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반된 시각을 드러냈다. 과연 누가 유통업계의 진정한 ‘지존’일까. 또 향후 양사의 ‘반격’과 ‘방어’는 어떻게 진행될까.롯데 “할인점 목표 1위 불변”먼저 롯데부터 살펴보자. 롯데가 신세계에 밀린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올해부터 회계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유통업체 매출은 임대매장 판매액을 모두 포함하는 ‘총매출’ 개념을 썼다. 그렇지만 올해부터 총매출 개념 대신 제조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만 매출액으로 집계토록 했다. 이러다 보니 임대매장 형태인 백화점 매출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직매입 비중이 높은 할인점은 매출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다.여기에 할인점, 온라인쇼핑몰, 편의점 등이 고속성장하며 유통업계의 체질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와중에 90년대 중반 백화점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할인점 시장이 어느새 더 커진 것이다. 백화점은 지난 98년 이후 매년 6~7%대의 성장세를 보인 반면, 할인점은 연간 26~27%로 백화점과 비교해 20%포인트 이상의 고성장을 거듭했다. 당연히 백화점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롯데가 이마트로 할인점업계를 석권한 신세계에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롯데는 2003년 6월 말 기준으로 백화점 20개, 할인점 30개, 대형 슈퍼마켓(롯데레몬) 13개 등을 보유하고 있다. 비중을 따지면 백화점(49.6%)이 할인점(44.1%)보다 높은 백화점 중심 기업이다. 이런데도 98년부터 뛰어든 할인점사업인 롯데마트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롯데마트의 부진이야말로 롯데가 ‘유통황제’ 자리를 신세계에 내준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다.사실 롯데의 할인점사업은 명성에 비해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단 매출액 기준으로 이마트, 홈플러스에 이어 3위에 불과하다. “뭐든 시작하면 1등을 해야 한다”는 신격호 회장의 경영관도 통하지 않았던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롯데가 할인점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98년. 마그넷(현 롯데마트) 강변점을 설립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출발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초기에 주로 지하층에 점포를 연 것이 실패했다. 또 2,000평 규모의 소형 위주로 나간 것도 이익률을 떨어뜨렸다. 여기에다 롯데쇼핑 내 사업본부체제로 있으면서 급변하는 트렌드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올 상반기 부산해운대점을 폐점하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올해 10여개의 점포를 개설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오픈한 점포가 없을 정도로 주춤한 상황(올 연말 3개 점포 오픈 예정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 관계자는 “1위 탈환이 여전히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어떻게 1위자리를 탈환한다는 걸까. 우선 체질을 바꾸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미 여러차례 극약처방이 내려졌다. 올 4월에는 롯데쇼핑 내 본부체제에서 예산, 투자, 인사권 등 주요 업무에서 자율권을 갖는 독립경영체제로 재편했다. 최근에는 ‘정신무장’을 강화하기 위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해병대 훈련을 다녀올 정도로 부활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와 함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향후 개점점포를 기존의 2,000~2,800평 규모에서 3,500~4,000평으로 대형점포 위주로 꾸밀 계획이다.또 로고도 새로 만들고 각종 사인물 색상도 변경하는 등 전반적인 기업이미지통합(CI) 작업도 오는 10월 중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지난 9월부터 처음으로 TV광고도 내보내고 있다. 이런 바탕 위에 내년부터 매년 10개의 점포를 열어 향후 70~75개의 점포를 오픈한다는 계획을 밝혔다.부지확보에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창원 기업문화실 부장은 “추가로 확보된 부지가 약 3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롯데마트는 이런 공격적 전략으로 ‘할인점업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향후 벌어질 M&A에 적극 참여해 덩치를 키울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각 기업들의 계획을 보면 할인점이 400개가 넘어선다. 따라서 퇴출되는 기업이 분명히 생길 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신세계 “경쟁상대는 세계 1위 월마트”신세계는 ‘22년 만에 1위 탈환’에 고무된 모습이 역력하다. ‘윤리경영을 더 강화하겠다’든가 ‘분기별 실적발표를 다달이 하겠다’는 것은 선두업체로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신세계의 성공은 일찌감치 할인점사업에 주력한 결과이다. 지난 98년 회원제로 운영 중인 프라이스클럽 매각대금(1억달러)을 할인점 부지매입에 털어넣으면서 자금력을 확보했다. 또 당시 백화점 부지였던 산본, 대구 성서지역, 해운대, 전주 등의 백화점 부지를 할인점 부지로 활용하는 등 일지감치 할인점사업에 전력을 쏟았다.이와 같이 앞서 준비하고 실행한 것이 결국에는 ‘이마트 신화’를 일궈냈고, 신세계의 유통 1위 등극을 도왔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세계는 현재 할인점(87.64%) 비중이 백화점(12.36%)보다 월등히 높다.일단 신세계는 다시 찾은 1위 자리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자체 전망한다. 주력인 할인점사업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판단에서다. 추가점포 오픈 계획도 늦추지 않을 작정이다. 현재 신세계는 7개의 백화점과 56개의 할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2007년까지 백화점은 9개, 할인점은 100여개 이상의 출점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부지 문제도 걱정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달수 IR팀 과장은 “현재 87호점까지 개설할 부지를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신세계는 향후 국내보다 해외시장에 눈을 돌릴 작정이다. 이미 97년 중국에 진출해 있는 상하이 이마트 이외에 톈진지역에 추가로 이마트를 개설하는 등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밖에 M&A에도 적극 나선다. 뉴코아 분리매각이 이뤄질 경우 눈여겨봐둔 점포를 중심으로 매입에 나설 계획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고전 중인 월마트코리아가 철수한다면 우리가 인수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M&A 계획을 갖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아무튼 신세계와 롯데의 선두다툼은 더욱 치열해진 전망이다. 그렇지만 누가 진정한 ‘유통지존’이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지금은 신세계가 웃고 있지만, 과거에는 롯데가 웃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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