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통업, 사업구조 대폭 개선해야”

“백화점업계는 잠에 푹 빠져 있고, 할인점들은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편의점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오쿠보 다카시 다이아몬드컨설팅 회장이 진단한 한국 유통산업의 상황이다. 그는 1984년 신세계백화점 본부장으로 한국 유통업계에 투신해 대구백화점 경영고문, 삼성물산 유통부문 사장 등을 거쳐 올해 19년째를 맞은 한국 유통업 전문가다. 그는 한국에서 94년부터 유통관련 컨설팅회사인 다이몬드컨설팅을 운영하고 있다. 오쿠보 시게루 사장은 그의 차남.요즘 오쿠보 회장이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분야는 편의점이다. 그는 “한국의 편의점이 위기를 맞고 있는 주된 이유는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 3월께 ‘쇼핑센터 도입방안과 매니지먼트’에 대한 책을 낼 예정이다.최근 한국의 백화점은 경기둔화에 따른 소비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다른 문제점은 없을까요.한국 백화점업계는 외환위기 때만 제외하면 지난 15년 동안 매년 10%대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고속성장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경기불황 탓도 있겠지만 경영관리상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백화점 내 자체브랜드의 직영매장 비중이 낮고, 고급이미지만 부각시켜 중저가 상품을 찾는 고객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할인점에 손님을 많이 빼앗기고 있는 형국입니다. 식품매장의 경우 백화점이 할인점보다 상품 및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습니다.이제라도 새로운 관리 노하우를 도입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자체브랜드의 직영매장 비율을 20%대로 늘려 체인화해야 하고, 매장을 단순하게 브랜드가 아닌 카테고리로 나눠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할인매장과도 가격경쟁력을 벌일 수 있는 자체브랜드의 중저가 상품 개발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백화점을 이제는 쇼핑센터의 개념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할인점은 일본에서 벤치마킹하러 올 정도라고 하는데 과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물론 일본 유통업체들이 한국의 이마트를 다녀간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들은 이마트의 관리 노하우를 배우러 온 게 아닙니다. 일본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월마트, 까르푸, 테스코 등 세계적인 할인점업체들에 맞서 한국 유통업체들은 어떤 대응하고 있는가를 보러온 것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할인점업체들은 너무 자만심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한국의 할인점업계는 이마트, 롯데마트 등과 같이 자금력이 든든한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중소기업들의 시장참여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에는 유니크로 같은 지역 곳곳에 중소기업들이 세운 소형 할인점들이 많습니다. 매년 일본에 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들어보지도 못한 중소형 할인점들을 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이마트의 경우 대체적으로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주 도전적인 실험들을 많이 하고 있죠.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보입니다. 먼저 할인점을 백화점식으로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인점은 백화점보다 저비용 체제로 움직여야 합니다. 좀더 체인 기능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지요.상품구색에 있어서도 종류보다는 잘 팔리는 제품 위주로 진열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값 자체가 비싼 골프용품까지 팔고 있는데 이는 백화점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생겨난 기현상이라 할 수 있어요.슈퍼마켓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은 유통업태가 슈퍼마켓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러 유통업태 중 가장 발전하지 못한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슈퍼마켓이 지역밀착형으로 성장해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등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오히려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죠.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상품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 노력해야 합니다. 일본의 1인당 1일 슈퍼마켓 방문횟수는 3~3.5회인 데 반해 한국은 1.7회에 불과합니다.최근 편의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던 것으로 압니다. 한국의 편의점업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요.한국의 편의점은 1989년 1호점이 들어선 이래 현재 7,600개에 이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2005년까지는 1만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점포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성장기에 들어섰는 데도 불구하고 적자를 보는 점포들이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편의점이 순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매출은 1일 150만원인데 한국 편의점들의 평균 1일 매출은 15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잘되는 곳을 제외한 상당수의 점포들이 적자를 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실제로도 한국의 편의점들 중 30%가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적자를 내는 편의점들이 이 정도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본의 경우 적자를 보는 편의점들은 전체의 3%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 편의점들이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일본의 비즈니스 포맷을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입니다.기로에 선 편의점들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요.나름대로 편의점업태의 5대 혁신과제를 만들어 봤습니다. 먼저 한국 소비자들에게 맞는 상품구색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지지를 얻어내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편의점들은 여성 고객이 약 30%밖에 안되는 데 이를 60%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신선한 야채 등 ‘1일(데일리) 상품’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매장도 현재의 3분의 2 정도로 줄이는 게 가능합니다. 가격전략도 세워야 합니다. 데일리 상품을 중심으로 가격을 할인점 수준으로 낮추면 많은 고객들이 할인점 대신 편의점을 찾을 겁니다. 24시간 운영도 지역상황에 따라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간당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형태의 편의점 기본 모델을 만들어 테스트하며 문제점들을 지속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일반적으로 한국의 편의점 점주들은 한달에 500만원 정도를 집에 가져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1일 매출이 300만원 정도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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