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오른다’ 아파트 분양가의 정체

IMF 위기로 부동산값이 폭락 일로를 걷던 지난 98년, 정부는 나락으로 떨어진 부동산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민영아파트에 대한 분양가 규제를 20년 만에 전면 해제했다. 당시 주택건설업계는 “분양가 규제를 받을 때는 차별화된 주택상품을 개발해도 채산이 맞지 않아 곤란을 겪었지만, 자율화 이후에는 다양한 상품을 그에 맞는 가격에 내놓을 수 있어 소비자에게도 이익”이라고 입을 모았다.이후 아파트 분양가는 꾸준한 상승을 거듭해 왔다. 의 조사에 따르면 분양가 자율화 이전인 97년 평당 464만원 수준이었던 서울지역 분양가는 규제가 완전히 해제된 99년 평당 562만원 수준으로 훌쩍 뛰었다. 그리고 올 7월 현재 서울의 평균 분양가는 평당 1,000만6,000원으로 불과 5년 만에 2배 수준이 되었다.게다가 올 들어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11개구에서 공급된 아파트의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게 매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종로구는 기존 아파트의 평균 평당 매매가가 795만원선인 데 비해 분양가는 이보다 2배 이상 비싼 평당 1,641만원선을 기록했다. 올 들어 서울에서 공급된 아파트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이라고 해봐야 강북구 우이동의 G아파트 27평형으로 평당 573만7,000원이었다. 총분양가는 1억5,400만원으로 결코 ‘싼값’이 아니다.분양가 인상 ‘전국적 붐’서울지역에서만 분양가 앙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초순 분양시장을 뜨겁게 달군 용인 동백지구에서는 “올려도 너무 올린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높은 가격의 아파트가 쏟아졌다. 특히 현진종건의 분양가 인상폭은 ‘같은 편’인 주택건설업계에서도 ‘심하다’고 할 정도로 원성을 샀다. 56평형의 평당 분양가가 780만원으로, 경쟁사의 최저 분양가 657만원보다 123만원이나 비쌌던 것. 그러나 다른 건설사들도 40평 이상 중대형 평형에 대해 700만원대의 분양가를 책정, 비싸긴 마찬가지였다.지방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구지역의 경우 중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분양가가 평당 600만~700만원대에 형성되고 있다. 올 하반기 공급될 아파트 중에는 평당 1,000만원대에 이르는 아파트까지 나올 예정이어서 분양가 인상은 이미 ‘전국적인 붐’으로 번진 상황이다.문제는 이러한 분양가 인상이 과연 ‘불가피’한 것인가이다. 주택건설업계는 최근 잇단 분양가 인상에 대해 공히 “마감재 고급화, 인건비 상승, 지가 상승 등으로 비용이 증가해 제조원가가 높아졌기 때문에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건설사가 말하는 ‘제조원가’에는 기본적인 건축비, 택지구입비 외에도 건설사간 브랜드 경쟁이 격화되면서 크게 늘어난 광고비, 품질향상을 위한 각종 관리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S건설 주택영업 부문의 최모 과장은 “강남 재건축아파트의 경우 수주를 위해 쏟아붓는 비용이 엄청나다. 광고 홍보전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이주비 대출에 따른 이자, 소위 ‘뒷돈’까지도 제조원가에 포함시킨다”고 밝혔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10원 한 푼까지도 제조원가에 포함된다는 이야기다.그러나 이 모든 제조원가와 인상요인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분양가를 현 수준까지 끌어올릴만한 근거는 못된다는 지적이다. 매달 서울 동시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분석하고 있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소시모) 우윤재씨는 “지난해부터 분양가 평가를 해 오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적정 분양가를 훨씬 웃도는 아파트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밝히고 “제조원가 각 항목마다 거품이 많아 보이고 시행사나 시공사의 이윤폭도 지나치다”고 말했다.이처럼 분양가 인상에 대한 비판과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국세청은 분양가 인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시행사와 시공사에 대해 세무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 삼호, 대우건설 등이 관리대상으로 지목됐다.국회에서도 분양가 거품을 걷어내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희규 의원은 분양원가 공개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담은 법률안의 입법을 추진, 9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300가구 이상(투기지구는 100가구 이상) 아파트를 짓는 경우는 사업지구별로 분양원가를 반드시 명시하도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INTERVIEW 이희규 민주당 국회의원“분양원가 공개 의무화 내년 실시 추진”“요즘 아파트시장을 보면 ‘백약이 무효’라 할 정도로 통제 불능입니다. 5ㆍ23 부동산 안정대책 이후 가격 상승세가 꺾이나 싶더니 강남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여전히 1억원씩 뛰었다고 하더군요. 공공재 성격이 강한 아파트가 투기의 대상이 되는 지금, 원인을 제공하는 분양가부터 잡아 서민의 내집마련 꿈을 보다 쉽게 만들어야 합니다.”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으로 최근 분양원가 공개 의무화 법률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이희규 민주당 의원은 “분양가 상승이 전반적인 집값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하다”고 전제하고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들에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올해 초부터 분양원가 공개 의무화를 추진한 이의원은 건설사들의 아파트 제조원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건설교통부를 통해 각 건설사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업체마다 ‘영업 비밀’임을 내세워 단 한건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우여곡절 끝에 건설협회를 통해 입수한 자료를 분석해 보니, 2년 전인 2001년에 분양된 아파트에도 거품이 상당했습니다. 매달 분양가가 상승하는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일부에서는 시장을 엎으려는 것이냐며 반발하기도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시장을 다독여 모두가 윈윈(win-win)하자는 의도입니다.”이의원은 “분양원가 공개 대상이나 범위를 무차별 적용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틀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양원가 공개 의무화 법률안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상정을 목표로 현재 국회 법제실에서 검토 중이다. 이의원은 “내년부터는 건설사의 투명한 분양원가 공개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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