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데는 극장과 배우밖에 없다”

제작환경 악화로 투자사 줄줄이 떠나, 돈줄 말라 제작중단 영화 속출

충무로가 호황 속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정도라고 말한다.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외화내빈이라고 혹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충무로’의 범주에는 제작사, 배급사, 투자사, 극장, 감독, 배우, 제작스태프가 포함된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이면 모두 들어간다고 보면 틀림없다.문제는 국내의 영화 관련 업체나 종사자 가운데 제대로 돈을 버는 것은 극장과 배우밖에 없다는 점이다. 제작사나 배급사, 투자사 등은 기대만큼의 수익을 올리지 못하거나 아예 손해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연 최근 들어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는 국내 영화산업의 기반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가장 심각한 것은 자금난이다. 요즘 충무로에는 촬영은 마쳤지만 후속작업을 제대로 못해 필름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포스트 프로덕션을 하려면 수억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구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개발비만 지출하고 아예 촬영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영화도 많다. 심지어 일부 제작사들은 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자신들을 빗대 ‘앵벌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요즘 국내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30억원선이다. 지난 95년만 해도 10억원 정도였는데 그동안 3배 가량 뛴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외부자금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제작에 나서지 못할 정도가 됐다. 몇몇 메이저 회사를 제외하고는 투자를 받아야만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증권 임진욱 연구원(엔터테인먼트담당)은 “국내 제작사들의 경우 영세한 상태에서 최근 들어 제작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며 “요즘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돈이 막힐 경우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그렇다고 투자사들을 탓할 수만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관객수는 늘었으나 개봉 편수 증가로 오히려 편당 수익률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일차적으로 수익이 나야 참여를 하게 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지난해 투자사와 제작사의 사업수익을 기준으로 볼 때 총 477억원의 적자가 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투자 총액 2,300억원 가운데 극장수익과 부가적인 판권을 포함해서 거둬들인 돈이 1,840억원에 이르렀던 것. 작품 한 편당 손실액은 6억3,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영화산업 수익률은 마이너스 18%를 기록했다.2001년만 해도 전체적으로 290억원의 흑자를 내 기대수익률이 플러스여서 투자사들이 몰려들었으나 이제는 다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무한창투 등 상당수 투자사들이 충무로를 떠났고,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하기 힘들다.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의 펀딩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제작사인 명필름은 3차례에 걸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았다.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 영화가 손실을 보더라도 투자금의 70%를 무조건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점이다. 투자금의 70%에 대해 보장을 해준 셈이다. 결과는 회사측의 기대를 훨씬 넘어 펀딩 시작 수시간 만에 마감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명필름은 이렇게 해서 총제작비 28억5,000만원 가운데 20억원을 모으는 성과를 거뒀다.영화산업의 또 다른 축인 배급사는 유통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영화를 극장에 공급해주며 전체수입의 8%를 배급수수료로 받는다. 한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1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고 하면 이 가운데 8억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이것 자체만으로 보면 배급사는 마음편한 장사를 하는 셈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관객수가 크게 늘어 배급사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하지만 배급사들은 대부분 투자를 겸하는 것이 보통이다. 외국 직배사들이야 외국에서 영화를 들여다가 공급만 하지만 국내 배급사들은 다르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보통 투자를 병행한다. 국내 배급시장을 주도하며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 모두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상당수 배급사들의 경우 배급해서 번돈을 투자로 날리는 일이 많다. 그나마 CJ엔터테인먼트나 시네마서비스 등은 자금력이 있어 사정이 낫지만 다른 업체들 상당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배급사들의 수익이 극장 개봉 수입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내 배급사들은 수입의 75%를 극장 개봉 수입에서 얻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극장 개봉 수입이 전체수입의 18%선에 그치고 있다. 결국 국내 배급사들은 극장 흥행여부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임진욱 우리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의 대표적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보면 영업구조상 영업이익률이 10%를 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앞서 살펴본 대로 국내 영화산업에서 제작사나 투자사, 배급사 등은 한결같이 어려운 여건에서 비즈니스를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극장과 배우다. 관객수 증가라는 열매를 가장 많이 챙긴 것이 이들이다.극장은 최대의 수혜자다. 보통 극장은 수입의 50%를 갖는다. 이를 공식화하면 ‘극장수입=관객수×5,600원(평균 티켓가격 6,500원에서 부가가치세 10%, 영화진흥기금 6.1%를 뺀 금액)’이다. 특히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상위 3개 극장체인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이들 3사의 스크린점유율은 이미 28%를 넘어섰고, 관객점유율은 38%에 이른다. 국내 최다 스크린을 보유한 CGV의 경우 올해 1,700억원의 매출액에 영업이익만 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배우 역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외환내빈의 국내 영화시장에서 한몫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웬만한 주연배우들의 몸값은 이미 3억원대를 훌쩍 넘었다. 최근 촬영을 마친 에 출연한 여배우 신은경은 무려 4억5,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국내 영화의 평균 제작비용이 30억원대임을 감안해볼 때 남녀 주연배우의 몸값만 20%선에 이르는 셈이다.배우의 몸값이 급등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개봉 편수가 크게 증가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흥행 주연배우가 빤한 상황에서 영화를 많이 만들다 보니 자연 출연료가 올라간 것.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영화에 스타를 쓸 경우 관객동원과 홍보를 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제작자들이 무리하게 출연료를 지급하다 보니 지금의 상황까지 왔다”며 “국내 영화시장의 현실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높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국내 영화산업이 호황 중에도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전반적인 취약성에서 기인한다.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은 내실을 다지지 못했고, 이것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우물 안 개구리식의 마케팅으로 수익성의 다변화 등을 이루지 못한 것이 영화시장을 속 빈 강정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강복 CJ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영화시장에도 글로벌스탠더드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수출 등 수익성을 다변화해야 국내 영화산업이 한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INTERVIEW 이강복 CJ엔터테인먼트 대표“투명성 높이는 장치 절대적 필요”국내 영화산업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CJ엔터테인먼트는 올해 들어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배급한 와 4월 선보인 이 잇달아 빅히트를 기록하며 기세를 올렸고, 상반기 매출액(4백75억원)과 순이익(95억원)에서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대표를 맡고 있는 이강복 사장 역시 국내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국내 영화산업의 가능성과 과제 등에 대한 이대표의 견해를 들어보았다.그동안 국내 영화가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해 왔는데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한국영화 시장 성장의 주된 요인은 컨텐츠적인 측면과 인프라적 측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컨텐츠적인 측면은 한국영화의 질적, 양적 성장이며, 인프라적인 요소는 1998년부터 CGV 강변 개점 이후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멀티플렉스 극장 시스템 환경입니다. 여기에 소득과 여가의 증대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영화를 자주 보게 한 또다른 요인이라 생각됩니다.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투자사들이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는지요.99년 의 성공 이후, 영화계에는 영화배급사를 중심으로 한 전문투자자본 이외에 벤처캐피탈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이 대거 유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영화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금융자본이 이탈했고, 현재는 자금력과 시스템을 동시에 갖춘 전문투자자본이 그 공백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영화산업도 시스템화되고 있는 추세라 단순히 단기적 수익률을 따지는 금융자본이 이전처럼 많이 유입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국내 영화산업이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필요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우선 정확한 전국관객 집계가 안되는 현 상황은 영화를 여전히 투명한 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제작측면에서 보면 제작비와 일정이 프로듀서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등 전반적인 제작관리의 투명성이 높아져야 합니다. 아울러 뛰어난 인재들을 육성하고 그들이 계속 커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올해 들어 CJ엔터테인먼트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지난해 실패를 교훈 삼아 관객들이 원하는 ‘코드’를 정확히 찾아냈다는 점입니다. 또 처럼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지만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낸 점, 즉 관객들보다 항상 앞서나가고자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있는 점도 성공비결이라 생각합니다.CJ엔터테인먼트사의 향후 사업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최근 영화케이블채널 홈CGV 등 4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CJ미디어(주)에 79억6,000만원 투자, 지분 34.69%를 인수했습니다. 10월 신세대를 겨냥한 케이블 영화채널 ‘XTM’을 개국하고, PPV(Pay Per View·영화 편당 관람료 지불하는 시청 방식) 사업에 진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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