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명품을 갖고 싶다” 핸드 크래프트 열기

회사원 김미연씨(28)는 최근 이화여대 앞에 있는 한 가죽 및 액세서리 전문점에서 7만원을 주고 작은 손가방을 구입했다. 김씨는 윈도쇼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상점을 발견했는데,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 제품들이 진열돼 있는 게 멀리서 얼핏 봐도 심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가죽공예를 전공한 ‘예술가’가 ‘작품’을 파는 곳이었다. 가게 한쪽에는 작업실이 마련돼 있었고 여느 상점과는 달리 주인은 상품 하나하나에 애정을 갖고 손님에게 설명을 했다. 손가방치고는 상당히 비싼 값이었지만 김씨는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사실, 이게 유행입네 해서 죄다 똑같은 거 들고 다니면 싸보이잖아요. 남들이 다 있는 건 싫거든요.” 이화여대와 홍익대 부근에는 이처럼 직접 디자인하고 손으로 만든 액세서리나 패션소품을 파는 가게들이 하나둘 자리잡고 있다.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보편화된 시대에 거꾸로 손으로 만든 것을 사거나 손수 만드는 ‘핸드 크래프트’(hand-crafts)가 인기다. 김씨처럼 경제력이 있는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이 핸드 크래프트 쇼핑에 열광한다.“특별하다는 기분이 좋아”마니아들이 핸디 크래프트를 좋아하는 이유 중 으뜸은 희소성이다. 다시 말해 ‘나만의 명품’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핸드메이드 상품을 소비하면서 ‘나는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루이비통, 구치 등 명품이 흔한 것이 되면서 여기서는 더 이상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는 설명이다.이런 핸드 크래프트 상품은 대량생산을 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값이 비싸다.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옷에 그림을 그려 넣은 ‘핸드 페인팅’ 청바지는 일반 청바지에 비해 2배 정도 비싸고, 복잡한 그림이 들어간 경우 청바지 한 벌에 25만원까지 한다. 손으로 만든 것을 강조하는 천연비누의 경우 1개에 6,000원~1만원대다. 슈퍼마켓에서 1,0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일반 비누의 10배에 가까운 값이지만 요즘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최근 속속 형성되고 있는 핸드 크래프트 관련 비즈니스는 이처럼 희소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훤히 꿰고 있다. 최근 서울 명동 패션상가 유투존 내에 핸드페인팅 전문매장을 개점한 패션업체 랑송의 김경희 팀장은 “전략적으로 같은 상품을 최대 10개 이상은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딱 1개만 만드는 제품도 적잖다. 이 회사의 경우 10명 남짓한 인원이 작업을 하는데, 하나를 그리는 데 2시간 가량이 걸리고, 하루에 한 사람이 3개의 제품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한달 내내 만들어봐야 총생산량은 고작 600개에 그친다.한편 주부들이나 남성들은 만든 것을 쇼핑하기보다는 직접 만드는 데 취미를 붙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을 포착하고 영국계 DIY자재 유통업체 B&Q는 최근 국내 진출을 결정, 준비에 돌입하고 있다. 이 회사의 최욱 이사는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인건비가 싸서 쉽게 사람을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직접 만드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점점 인건비가 오르는데다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서구의 국가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DIY가 생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업체의 움직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약 2년 전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DIY(Do It Yourself)열풍은 도약 또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원래 DIY라는 용어는 직접 만드는 것 전부를 뜻하지만, 실제로는 가구나 주택 개ㆍ보수에 한정해서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범위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천연’이나 ‘자연’을 중시하는 추세와 함께 화장품, 향수, 비누 등을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하고 먹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LG홈쇼핑이 올해 상반기 히트상품 순위를 매긴 결과 두부제조기나 녹즙기, 요구르트제조기 등 소위 ‘DIY형 소형가전’들이 상위에 들었다.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와 궁합 ‘척척’소량생산이 생명인 핸드 크래프트 열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면서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온라인상에 관련 동호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여기서는 만들기와 관련한 각종 정보교환과 함께 재료판매, 제품판매 등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색 바랜 고전이 된 미래서 에서 앨빈 토플러는 “정보화시대가 오면 소비자들은 천편일률적인 대량생산 제품을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의 핸드 크래프트 열풍에서 토플러가 예언했던 ‘미래 소비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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