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행에서 보험가입한다

오는 8월29일부터 은행(Banque)에서 보험(Assurance)을 가입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Bancassuranceㆍ프랑스어 Banque와 Assurance의 합성어)가 본격 시행된다. 방카슈랑스는 금융겸업을 뜻하는 말로 은행이나 보험사가 타 금융부문의 판매채널을 이용해 자사상품을 파는 신개념의 마케팅전략이다(우리나라에서는 은행ㆍ증권 등이 보험업에 진출하는 것으로만 한정). 은행은 보험업에 진출함으로써 명실공히 금융산업의 최대강자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은행 한 곳에서 모든 금융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한 중소형 보험사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하다.이미 대형 보험사에 비해 판매채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형 보험사는 최악의 경우 M&A와 퇴출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금융소비자의 편익증대와 금융산업 선진화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방카슈랑스의 모든 것을 살펴봤다.26년 만에 보험업법 전면 개정정부는 지난 5월29일 방카슈랑스 도입을 담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법률안을 공포했다. 77년 이후 전면 개정된 보험업법과 그 시행령을 보면 8월29일부터 은행, 증권, 상호저축은행, 특수은행(기업 산업은행), 신용카드사(88년부터 판매 중)에서 보험사의 보험상품을 팔 수 있도록 보험대리점영업을 허가했다.따라서 자산규모가 2조원이 넘는 대부분의 시중은행과 9개 증권사, 일부 상호저축은행은 점포 내 보험창구를 만들어 고객을 상대로 보험상품을 팔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은행은 모든 금융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금융슈퍼마켓으로 거듭날 전망이다.방카슈랑스의 주무부서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은 방카슈랑스 도입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보험판매 질서문란과 중소형 보험사와 보험설계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기관 점포당 보험모집에 종사할 수 있는 인원을 2명으로, 1개 보험사의 상품을 50% 이상 판매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은행권에서 판매할 수 있는 보험상품 또한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허용해 도입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했다.재정경제부 박재식 보험제도과장은 “방카슈랑스 도입으로 보험판매채널 개선, 보험료 인하 등의 긍정적 효과는 물론 보험모집 질서의 선진화와 금융권의 생산성과 경제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박과장은 “은행에서 대출창구와 보험판매창구를 분리하고 대출과 연계한 보험 끼워팔기 등 도입에 따른 불건전 모집행위를 금지해 소비자보호와 편익증대를 강화하고 제도의 추이를 지켜보며 규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로방카슈랑스 도입으로 국내 금융산업은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 금융산업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됨으로써 종전의 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은행ㆍ증권ㆍ보험의 3대축으로 유지되고 있는 금융시장은 은행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은행은 총체적인 고객관리 기능을 담당하고 증권과 보험을 포함한 여타 금융회사는 상품공급자 역할을 떠맡게 될 것이다. 또한 대형 은행들은 보험사 등을 자회사로 두는 금융지주회사로 확대돼 대형 은행과 중소형 은행 간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보험사의 경우 은행의 광범위한 지점망이 새로운 판매채널로 급부상해 수익창출이 기대되지만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하거나 보험모집에서 대형 보험사에 뒤처지는 중소형 보험사는 M&A, 퇴출 등의 위험이 예상된다.한국금융연구원 정재욱 연구위원은 “방카슈랑스가 도입되어도 제한과 규제가 너무 많아 큰 기대효과는 없다”고 밝혔다.정연구위원은 “그동안 판매채널 부족으로 고충을 겪은 외국보험사가 방카슈랑스를 통해 상품, 가격 면에서 우위를 선점할 것이고 중소형 보험사 보호를 위해 보험판매인 제한 등의 규제를 급조했지만 이미 시장은 대형 보험사가 독식한 상태라 중소형 보험사는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보험개발원 안철경 동향분석팀장은 “방카슈랑스가 유럽에서 성공했지만 우리와는 보험문화가 다르다”고 말했다. 안팀장은 “은행은 도입 초기 판매수수료에 주안점을 둘 것이고 점차 보험자회사를 설립하면서 보험업에 대거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 생명보험 쪽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은 양질의 보험서비스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대형보험사 ‘느긋’, 중소형 ‘불안’방카슈랑스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금융권의 7~8월은 매우 분주하다. 특히 은행들은 방카슈랑스 도입에 대비해 보험대리점 자격증 취득을 끝냈고 제휴를 맺은 보험사와 함께 사전교육 중이다. 대부분의 은행에서는 연금, 저축, 신용, 변액, 교육보험 위주의 상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전국에 가장 많은 지점(1,200여개)을 갖고 있는 국민은행은 방카슈랑스에 매우 적극적이다. 국민은행은 방카슈랑스시장의 40% 선점을 목표로 세우고 기존의 보험상품보다 2% 저렴한 상품을 내놓아 초반에 기선을 잡는다는 각오다.국민은행은 ING생명과 함께 한일생명의 인수에 공동으로 나서는 등 방카슈랑스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방카슈랑스팀 이승철 전문위원은 “우리는 고객에게 양질의 보험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할 예정이고 보험가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도 방카슈랑스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8월 중에 삼성생명과 방카슈랑스 합작회사를 설립할 예정이고, 신한은행은 자회사인 SH&C(신한생명+카디프생명)를, 하나은행은 하나생명(하나은행+알리안츠생명)을 운영하며 8월29일만을 기다리고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외환은행도 방카슈랑스 도입에 대비해 직원교육과 상품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증권사와 상호저축은행은 대체로 방카슈랑스 준비에 미비한 상태다.한편 국내외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는 방카슈랑스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국내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가운데 대형 보험사는 대부분 사내에 방카슈랑스팀을 갖추고 상품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대형 보험사들은 기존의 판매채널이 탄탄하기 때문에 방카슈랑스를 시행해도 득은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대형 보험사가 대체로 느긋한 표정이었다면 중소형 보험사는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한 보험사의 경우는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중소형 보험사들은 기존의 보험설계사 등의 판매채널 강화와 2, 3단계 보험판매 허용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우리가 은행에 종속되는 느낌이다. 은행은 보험업을 하는데, 우리는 은행업을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은행의 영업 형태는 뻔하다. 그들은 반드시 대출과 연계해 보험을 판매할 것”이라는 불만을 털어놓았다. 중소형 보험사 관계자는 “화장품은 예전에 방문판매가 주류였다. 그러나 이후 대리점 판매로 옮겨갔다가 다시 방문판매로 돌아갔다.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하는 은행에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보험에 가입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소형 보험사는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고 말했다.외국계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의 보험 가입문화가 자국과 달라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외국계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를 통해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방카슈랑스는 세계적인 추세이고 현재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정연구원은 “방카슈랑스는 보험사에 불리하고 은행에 유리한 제도라서 도입 초기에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은행의 공공성 자체만 부각시키고 보험은 은행업을 겸업하지 못하는 제약이 개선돼야 진정한 의미의 겸업”이라고 밝혔다.보험설계사 설 땅이 없다방카슈랑스 도입으로 금융소비자들은 보다 싼 가격에 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재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22만7,000여명의 보험설계사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보험설계사 김모씨는 “방카슈랑스를 통해 보험료가 저렴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은행에서 얼마나 자세한 설명과 서비스를 받을지 의문이다. 은행을 찾는 불특정다수의 고객들을 2명의 모집인이 어떻게 맞춤설계를 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전국보험산업노동조합(노동부 미인가) 강정순 위원장은 “방카슈랑스 때문에 앞으로 보험설계사들은 설자리가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위원장은 “은행에서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설계사의 수당이 빠지기 때문에 보험료는 그만큼 싸진다. 때문에 보험설계사에게 엄청난 피해가 온다. 그래서 매우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금융산업 선진화와 금융소비자의 편익증대를 내걸고 오는 8월29일 시행되는 방카슈랑스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귀추가 주목된다.돋보기 SI업체, 방카슈랑스 제2라운드 돌입주도권 잡기 위해 전사적 역량 집중전반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시스템통합(SI)업체들은 방카슈랑스 시스템 시장에서 한몫을 챙겼다.연초부터 불기 시작한 방카슈랑스 1단계 시장은 프로젝트당 규모가 40억~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시장규모는 프로젝트당 10억원 안팎으로 진행돼 기대만큼 큰 시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하지만 각 SI업체들이 치열한 사업수주전을 펼친 것은 방카슈랑스가 단계별로 확대되면서 시스템 구축이 연이어 이뤄지게 돼 금융권을 ‘고정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연말부터 본격화될 방카슈랑스 2단계 이후 작업은 보장성 보험 및 종신보험으로 확장되면서 시장은 수백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또 1단계 사업이 3~5개월 가량의 단기간에 이뤄져 이에 대한 비즈니스 프로세스 컨설팅과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신상품 개발을 위한 시스템 구축도 본격화될 전망이다.이에 따라 SI업체들은 기존 은행 및 보험권 프로젝트를 통해 확보한 노하우를 집중시키면서 방카슈랑스 2단계 사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방카슈랑스 솔루션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SI업체는 삼성SDS(대표 김인).방카슈랑스 시장에서 국민, 기업, 산업, 조흥은행 등으로부터 연이어 사업을 수주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삼성SDS는 2단계 이후의 시장에서도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다각적인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우선 삼성SDS는 제2금융권 공략을 위한 방카슈랑스 솔루션으로 ‘세프 방카슈랑스’(Sef-Bancassurance)를 출시하고 제2금융권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이 솔루션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관계사 방카슈랑스 시스템 구축을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기반으로 개발돼 어느 정도 기술력을 검증받은 상태다.대형 SI업체 사이에서 중견업체인 동양시스템즈의 활약도 눈부시다.동양시스템즈(대표 구자홍)는 우리은행, 부산은행을 비롯해 대우증권, 대한투자증권 등의 사업을 연속 수주하며 돌풍을 일으켰다.동양시스템즈는 대기업 위주의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창적 인 서비스와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한 ‘차별화’ 원칙을 고수할 방침이다.신한, 하나은행, 교보생명의 방카슈랑스시스템을 구축 중인 LG CNS(대표 정병철)는 2금융기관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즉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대형사들을 대상으로는 솔루션을 패키지화해 SI(System Integration)형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중소형사를 위해서는 시스템 인프라까지 제공하는 ASP(Application Service Provider)형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외에도 한국IBM이 외환ㆍ대구은행, 한국HP가 한미은행ㆍ대한생명의 방카슈랑스 시스템을 구축했거나 구축 중이다.특히 한국IBM은 대구은행의 방카슈랑스 시스템을 사용한 만큼 지불하는 ‘온디맨드 방식’으로 계약을 맺어 3년간 위탁운영하게 된다.업계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시장은 SI업체뿐만 아니라 표준 인터페이스 및 이미지 워크플로시스템, 콘텐츠 관리 솔루션업체 등 중소형 전문업체들까지 가세해 시장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장시형ㆍ한국금융신문 금융it팀 기자 z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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