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냐 밀감이냐

흔히들 영원한 1등은 없다고 한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오늘 선두업체로서 높은 매출액과 큰 덩치를 자랑한다 하더라도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게 경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같은 시장을 놓고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경쟁업체들의 경우 기업연령을 따졌을 때 나이차이는 어느 정도나 될까. 조사결과를 보면 박빙의 싸움을 벌이는 라이벌일수록 나이차는 크지 않았다. 또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업체들은 대부분 성숙기인 30대 내지 40대에분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두업체라고 반드시 나이가많은 것도 아니고 후발업체가 반드시 젊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해를 거듭할수록 젊어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2,3년새 10년이나늙어버린 기업도 있었다.경쟁업체 사이에 가로놓인 연령의 격차는 과연 어디서 오는지, 회춘의 비결과 조로의 원인은 무엇인지 주요 업종별로 살펴보자.맥주오랜 기간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라이벌로 맥주산업의 양대 산맥인 동양맥주와 조선맥주를 빼놓을 수 없다. 동양맥주는 33년에설립된 조선맥주보다 19년 늦은 52년에 세워졌지만 줄곧 조선맥주를 크게 따돌리며 업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은 동양맥주에 1위 위치가 확고부동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아픔의 시기였다. 점유율 30%대의 한계를 못 벗어나던조선맥주가 하이트맥주로 동양맥주를 크게 한방 먹였기 때문이다.이제 동양맥주는 선두를 유지하기 위한 와신상담의 노력을, 조선맥주는 선두를 뺏기위한 혈전을 준비하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됐다.그렇다면 치열한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기업은 몇 살이나 될까.역설적이게도 가장 패기있는 공격경영을 펼쳤던 지난 3년간 조선맥주는 반년 정도 늙어 작년엔 38세가 됐다. 반면 맥주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자리를 빼앗긴 동양맥주는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경영혁신으로 41세에서 39세로 오히려 2살 가량 회춘했다.기업연령을 재는 세가지 조건중에서 동양맥주가 조선맥주를 앞서는것은 한가지밖에 없다. 바로 경영자의 평균연령이다. 매출액 증가율에서 조선맥주에 크게 뒤지고 설비도 조선맥주에 비해 배 이상오래됐다. 그러나 임원진의 평균연령에서만은 조선맥주가 50대인반면 동양맥주는 40대다. 이는 지난 2년간 조선맥주의 무서운 반격을 받으며 선두자리를 위협당한 끝에 단행한 조직재편의 결과다.동양맥주는 지난해 1월부터 과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능력에 따라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능력급제를 실시, 조직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또 올들어서는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아무 조건없이 배낭여행을 떠나도록 지원함으로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주력했다.◆ 가전흔히 가전3사로 불리는 삼성 LG 대우전자는 3살차이로 거의 동년배다. 삼성과 대우전자가 각각 37, 38살로 30대 후반인 반면 LG전자는 유일한 40대다.LG전자의 경우 경영자 평균연령이 낮아지면서 기업연령이 4살 젊어졌지만 41세에 머물렀다. 91년 45세에서 37세로 주름살을 편 삼성전자의 회춘비결은 단연 반도체이다. 가전업체중 유일하게 반도체부문을 포함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다른 업체보다 월등히 높은 매출액 증가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경영자 평균연령과 설비연령이 가장 많은데도 불구하고 가장 젊은 가전업체가 됐다.3년전만 해도 가장 젊은 가전업체였던 대우전자는 「탱크주의」라는 기업이미지 캠페인을 성공시켰으나 경영자의 평균연령이 3년전보다 많아져 기업연령도 두어달 늘어났다.◆ 제과가전업계가 30대와 40대의 싸움터라면 제과업계는 50대 노장의 경륜과 30대 장년의 활력이 펼쳐지는 한판 승부처다.롯데 해태 동양 크라운 등 제과 4사는 성숙기에 접어든 제과시장자체의 특성 탓에 너나없이 몇년 새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몇살더 먹었는지는 업체마다 천차만별이다. 제과 1위 업체인 롯데제과는 나이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후화된 설비에다 경영자들의 나이도 많아 3년새 13살이나 늙었다. 해태제과의 경우 91년과마찬가지로 30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경쟁업체와 차별화한 신제품개발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설탕껌을 업계 최초로개발, 전통의 롯데껌을 제치고 시장을 선점한 것이 단적인 예다.해태제과와 함께 30대를 유지하고 있는 동양제과도 조직을 젊게 하기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인 마스사와컨설팅 계약을 체결, 경영합리화를 적극 모색하는 한편 베니건스라는 브랜드로 캐주얼 레스토랑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본격적인 사업다각화에도 착수했다.크라운제과는 매출액 증가율이 둔화된데다 경영자 평균연령과 설비연령이 모두 늘어나 3년사이 10년은 늙어 50대에 들어섰다. 그러나올들어 외식 및 생수사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면서 기업을 젊게하기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기업이 너무 어린 것도 너무 늙은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러나기업의 창립 횟수가 쌓일수록 조직이 노후화되는 것을 막기위한 활력소는 필요하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무한경쟁시대에 라이벌을 제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극적이고 패기있는 대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능력에 따른 승진제도를 도입,젊은 임원을 중용하기도 하고 유망한 신사업에 뛰어들어 사업을 다각화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경쟁업체를 따돌리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라이벌 혈전시장개척=세포분열!기업이 늘 청년으로 활기차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프론티어정신(개척정신)」이 필요하다. 기업 구성원 개개인의 프론티어 정신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서 창조하는 전사적인「마케팅」전략도 중요하다는 뜻이다.마케팅은 장기적으로 기업 전체의 이미지를 좌우할 뿐만아니라 단기적으로도 매출에 큰 영향을 준다. 이번 기업연령 조사에서도 연령을 결정짓는 세가지 요소중 매출액증가율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반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케팅의 성공여부가 기업의 나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라이벌업체간의 마케팅 경쟁을 살펴보면 그 기업의 연령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올해 제과업계에서는 「영역 침범하기」와 「흉내내기」가 유행했다. 롯데제과와 해태제과가 각각 상대방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장을 선점해 재미를 본 것. 롯데가 제크로 크래커시장에서 우위를점하고 있는 해태를 공략한 반면 해태는 덴티큐라는 무설탕껌으로껌시장의 변함없는 1위라는 롯데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2라운드는 상대방 히트상품 모방하기. 해태가 제크에 맞서 크렉스를, 롯데가 덴티큐에 맞서 덴티스트를 각각 내놓은 것. 현재까지 두 업체는막상막하 상태다.반면 동양맥주는 흉내내기 전략으로 크게 한방 먹은 경우. 하이트맥주가 「끓인 맥주를 드시겠습니까」라는 광고로 OB맥주를 은근히비꼬자 냉큼 아이스맥주를 개발, 비열처리맥주 시장에 뛰어들었다.그러나 결과는 동양맥주의 KO패. 상대방 제품을 모방하려다 오히려하이트맥주만 부각시켜준 셈.동양맥주가 흉내내기로 실패한 반면 LG전자는 한 번 튀어보려다 혼쭐이 났다. 올초 LG는 비장의 신제품으로 육각수냉장고를 발표했다. 경쟁업체와 확실히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삼성과 대우가 「육각수는 기본」이라며 LG의 차별화를 방해한데다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육각수의 기능과 정의가 모호하니 광고에 육각수란 용어를 쓰지 말라고 요청한 것. 이 때문에마케팅에 차질을 빚은 LG는 냉장고 브랜드를 「싱싱냉장고」란 옛날 이름으로 바꿨지만 그때는 이미 삼성과 대우에 시장을 빼앗긴뒤였다.마케팅에서의 실수는 곧바로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나타난다. 내년에는 각 기업이 라이벌을 누르기 위해 어떠한 마케팅 무기로 라이벌업체와 한판 싸움을 벌일지 흥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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