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개발 및 전문가 양성 절실

대기업의 영화업 참여에 대해선 부정적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진 상태다. 영화산업이 방송영상정보산업의 각 분야에 없어서는 안될 콘텐트웨어(Content-ware)의 공급원으로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엄청나다는 측면에서 대기업의 영화업 참여는 필연적인 대세다. 이는 95년부터 영화제작관련업이 오락서비스업에서제조업으로 산업분류가 바뀐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 최근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규모 기업매수합병(M&A)에서 미디어기업이 가장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도 방송 영상 정보산업의 경제적 위치와 발전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 제작 증가·테마파크 투자 확대 주력대기업들의 영화업 참여는 한국 영화산업의 약점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선 그동안 차단돼 왔던 프로그램간 상호유통이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작이 그동안국내시장이라는 단일시장에 한정된 수요만을 겨냥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누릴수 없었고 대규모 투자도 할수 없어 경쟁력을 키울수 없었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또 대기업은 프로그램 유통배급업체이자 종합금융투자자로서의 역할도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영상산업의 영역이 극장 비디오 케이블TV 공중파방송 뉴미디어 등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에 대응해 대기업은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정보전달매체를 활용해 전문프로덕션으로부터 공급받는 프로그램의 부가가치를 높일수 있다는 점에서다.대기업의 영화업 참여는 한국영화의 제작량을 늘리는데도 기여할것이다. 지난해 제작된 한국영화는 65편에 그쳤다. 일본(2백50여편)과 프랑스(1백50여편)와 비교할 때 양적인 면에서 너무 부족한실정이다. 반면 한국의 외화수입은 3백82편(94년)으로일본(3백편)과 프랑스(1백20편)보다 훨씬 많다. 국내 영화산업이자체 제작경쟁력을 높이는 것보다는 외화수입을 통해 단기이익을올리는 「상업자본적」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은 이래서 나온다. 대기업의 영화업참여는 이같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영화제작량을 늘려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와함께 영화산업의 고질병중의 하나인 단기 실적평가도 상당히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영화를 만드는데 얼마를 들였으니 적어도 그만큼은 반드시 회수하겠다는 사고방식이 지배했다.이에따라 신인감독을 동원해서 코믹멜러나 블랙코미디같은 특정 장르의 영화를 양산하는 편향적인 작품기획을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배우와 제작비가 똑같아 색다른 영화, 삶의 향기가 스며있는 좋은영화를 만나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영화감독이 프로듀서를 겸하게 하는 일회성 프로덕션의 설립은 제작비운용의 비효율성 뿐만 아니라 감독이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문제도 초래한다. 자본력이 강한 대기업이 참여할 경우엔 기획제작자와 전문프로덕션에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돼 이같은 문제점은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다.그러나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 고려해야 할 사항도 적지않다. 우선 한국영화와 외화를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외화를 차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높이는데더 주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의 경우 외화를 배급하는 쪽과 일본영화를 배급하는 메이저급 영화사의 자본은 한 곳에서 나온다.그러나 일본 국내 영화제작과 배급 그리고 외화수입과 배급은 철저히 분리돼 있다. 아울러 극장망 또한 방화전용관 외화전용관으로나누어져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내부적인 경쟁에서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외화직배사와 겨루는 것이다. 일본영화 메이저의 시장점유율은 40%에 달하고 있다. 일본영화는 이를 뒷심으로 삼아 일류경제에 걸맞는 일류영화를 회복하기 위해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다음으로 테마파크에 대한 투자확대다. 대기업의 테마파크에 대한관심은 지난해 미국이나 일본의 테마파크와 가상현실도시에 대한보도가 유난히 많았던 사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또 테마파크의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이미 대전엑스포를 통해 검증됐다. 다만 대기업이 테마파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소프트웨어의 공급능력이다.다시말해 뉴미디어 제작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전엑스포도 이런 점에서는 대실패작이었다. 한편당 수십억원이 투자된 첨단영상은 거의 대부분 외국에서 제작됐으며 기술이전은 한건도 이뤄지지 않았다.영화산업이 지난해 제조업으로 분류된 것은 영화자체의 부가가치보다는 영상기기산업 또는 영상기술의 발전이 더 중요하게 고려된 것이다. 테마파크 사업이 진정한 의미에서 성공하려면, 나아가 한국영화산업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첨단영상제작기술의 개발과 인력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이를위해 대기업의 적극적인태도가 절실한 실정이다.그러나 대기업이 노력은 「구미호」와 「은행나무 침대」를 만든「신씨네」라는 작은 영화제작사에서 투자하는 노력과 그 성과보다커보이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완성된 외국기술을 도입하는데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결과는 더욱 실망스러울 것이다.개별 대기업만의 힘으로 외국의 거대한 영화기업과 경쟁하기 어렵다면 「STEP-2000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같은 연구기관을 지원하거나 연구소를 설립하는데 투자하는 것도한 방법이 될 것이다.◆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독창적 내용 담아야아울러 영화의 질을 좌우하는 현상 녹음 등의 기초기술분야를 튼튼히 하는데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와관련해 외국기업의 영화관련산업에 대한 해외투자가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이루어진 제일제당의 대규모 투자나 삼성대우 SKC의 외국제작사와의 장기판권계약이 실속없는 투자라는 비판이 있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유럽이나 일본기업들의 투자경험이나 규모만을 고려한다고 해도 한국기업의 외국투자는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해외투자는 영상대국미국과의 관계에서 뛰어넘기 힘든 상업적 경쟁력을 우회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대기업은 또 한국의 영화문화를 바꾸는데도 힘써야 한다. 이는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이라는 활로확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영화를 「근소한 예술적 가능성을 수반한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미국영화, 특히 세계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영화의 상업적인힘을 꺾기란 쉽지 않다. 「결혼피로연」「음식남여」「분별과 다감」(글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 후보)을 만든 리안과 홍콩누와르의 대표작인 「첩혈쌍용」을 만든 오우삼을 비교해 보자.두사람 다 미국제작자에게 발탁돼 영화를 만들고 있다. 리안은 동양적인 정체성을 영화에 잘 담아내면서 흥행에도 성공함으로써 일정한 상업적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미국제작자에게 상당한 이윤을안겨줬다. 반면 오우삼은 다른 많은 액션영화와 비슷비슷한 영화만을 만들어 상업적 이윤확보에 실패했다. 이는 우리영화계와 대기업에 독특한 문화적 배경에서 출발하는 독창적인 내용이 성공의 조건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지난해 12월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제1회 서울국제독립영화제가 치러졌다. 어느 기업도 후원하지 않아 어렵게 진행되긴 했으나관객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이 영화제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완성도 있는 소형단편영화의 제작이 뒷받침돼야 장편 극영화제작이 성공적일수 있고 우리가 너무 미국과 홍콩영화에 편향돼 있다는 사실이다.21C는 국경과 국적이 무의미한 시대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경제결정론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판단이다. 이는 소수자본가가 아니라 대다수 사회구성원의 입장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영화는 극장상영 비디오 방송 등의 분야에 공급되는 프로그램으로서 일정한 수익성을 갖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생활양식의 전파를 통해 소비재 상품의 구매취향까지를 좌우하는 파생효과를 갖는다.공급이 수요를 낳는다는 말은 영상산업에서 가장 쉽게 확인되는 명제이자 경제원칙이다. 이 원칙은 한 기업이 세계적 범위의 영화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국경이 없는 21C를 맞는 한국이정보기제 확보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원칙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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