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처 캐피틀, 절반이 놀고 있다

통상산업부는 지난 12월중순 「그린창투사」제도를 새로 도입, 홍역을 치렀다. 탈락한 업체들의 반발을 예상, 처음에는 해당업체에만 선정사실을 통보했으나 투명성시비가 일자 뒤늦게 발표를 하는등 진통을 겪었다. 그린창투사는 벤처캐피틀(창업투자회사)업계 활성화를 위해 올해새로 만들어진 제도. 50여개 창업투자회사중 ?주식 및 전환사채인수에 의한 투자비율?투자재원 조성규모 ?납입자본금규모 ?지방소재 창업자에대한 투자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15개업체가선정됐다. 그러나 업계는 녹색창투사제도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있다. 정부의 취지는 좋지만 가뜩이나 설자리를 잃고있는 창투사들이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신용도가 생명인 창업투자회사로서는 이번에 우량회사로 뽑히지 못한 업체들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보고있다. 투자회사협회는 이와관련, 『업체간의 경쟁 유도를 위해 창투사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지만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50여개사중 절반이상이 영업못해녹색창투사는 우리나라 벤처캐피틀시장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있다. 업계의 반발을 예상하면서 녹색창투사제도를 도입한것 자체가올해로 도입 10년째를 맞는 창투사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을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벤처캐피틀로 불리는 창업투자회사는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지난 86년 제정한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의해 탄생했다. 벤처캐피틀은 기술력과 장래성이 있는 중소기업에자본과 경영능력 등을 지원하여 중견기업으로 육성한후 투자자본을회수하는 투자회사다. 벤처캐피틀시장은 현재 3원화돼있다.한국종합기술금융회사가 과학기술처 산하로있고 재경원산하의 신기술사업금융회사 3개사가 활동하고있다. 그러나 순수한 의미의 벤처캐피틀은 창업투자회사 간판을 달고 현재 활동중인 49개사. 창투사는 벤처기업의 설립초기 단계에 주식인수등 자본참여위주로 지원, 벤처캐피틀의 제도도입 취지에 가장 충실하다.국내 창업투자회사는 94년말까지 1천5백99개 창업회사에 1조2천7백84억원을 지원했다. 제도도입 10여년을 맞아 벤처캐피틀의 지원을받은 업체중 25개사의 상장회사가 탄생했고 장외시장 등록회사는71개에 이르고있다.그러나 90년대들어 중소기업 경영난이 악화되면서 창투사들의 존립기반도 흔들리고있다. 창투사들의 투자금 회수방안이 투자기업의상장후 주식을 처분하는것인데 기업공개가 어려워진데다 투자업체의 부도가 속출, 원금회수조차 어려워지고있다. 이에따라 50여개창투사중 실제로 영업활동을 하는 업체는 절반이하로 벤처캐피틀이제기능을 못하고있다. KDI에따르면 투자대상업체중 27.5%(투자액의 22.3%)가 부실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창업투자회사의 투자재원은 자본금과 투자조합이다. 그러나 창투사가 부실화되면서 주주들의 자금출연이 현저히 줄고있고 벤처캐피틀시장의 존립이 어려워지고있다.』기업개발금융의 허창문 사장은 획기적인 제도개선없이는 벤처캐피틀활성화는 물론 중소기업 창업지원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올들어 7년간의 투자기간을 마치고 해산한 투자조합의 수익률은 창투사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고있다. 투자조합을 해산한 서울창업투자의 수익률은 연 3.9%에 불과했고 한국산업투자와 대신개발금융도 각각 4.5%,5.1%로 은행정기예금 이자율보다도 낮았다.◆ 은행예금 이자율보다 낮은 수익률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제도도입 취지대로 창업기업에 적극 투자한회사일수록 부실화정도가 심하다는 것. 이에따라 벤처캐피틀의 유망기업에대한 신규투자는물론 기투자기업에대한 계속적인 지원도어려워지고있다. 벤처캐피틀은 중소기업 활성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있다. 동전의 앞뒷면같은 관계다. 벤처캐피틀시장이 활성화돼야중소기업 창업과 육성이 활발해지고 중소기업이 잘되면 벤처캐피틀시장은 높은 투자가치로 투자가가 밀려온다. 최근 박상희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한국중소기업계가 자금난과 경쟁력 저하로 존폐위기에 이르렀다고 실토할만큼 중소기업이 어려운것은 벤처캐피틀시장이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 벤처캐피틀시장이 위기를 맞고있는 것은 중소기업 환경이 어려워진데 근원적 원인이 있지만 제도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업계는 주장하고있다.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범수박사는 투자대상기업을 7년이내의중소기업으로 한정한데다 주식인수등 의무투자비율을 정해, 업체들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벤처캐피틀시장 활성화를 위해 투자대상업체의 업력제한을 철폐, 모든 중소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하고 융자 리스 팩토링등으로 업무다양화를허용해야한다고 주장하고있다.업계에서는 벤처캐피틀시장 활성화없이 정부가 내세우는 중소기업육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연말 단행된 개각에서 물러난홍재형부총리가 이임사에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꾸준히 노력해왔지만 아직까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말할정도로 중소기업 문제는 우리경제의 최대현안이라고 할수 있다.세계각국들도 중기육성을 위해 벤처캐피틀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이고있다. 벤처캐피틀이 가장 활발한 국가는 역시 미국으로 최근 세계시장에서 하이테크산업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도바로 벤처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있다.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창조한 마이크로소프트나 휴렛팩커드등도 벤처캐피틀의 지원아래 일궈진 벤처기업들이다. 일본은 지난 7월 매출액대비 연구개발비가 3%이상인 기업은 이익기준이나 순자산기준에서 미달하더라도 제2장외시장 특별종목으로 상장이 가능토록한벤처캐피틀 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영국도 지난 6월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장외시장(AIM)을 개설했고 프랑스도 벤처기업을 위해 신시장개설을 추진하는 등 각국이 벤처캐피틀 정착에 안간힘을 쏟고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10월창업지원법업무운용규정을 개정, 창투사 활성화에 적극 나서고있다. 그동안 창투사설립이 제한돼왔던 10대그룹사의 신규진입이 가능해졌고 지점설치제한을 폐지하는 등 업계활성화 대책도 마련됐다.그러나 업계는 부분적인 제도개선보다는 과도한 투자의무비율 규제를 풀어주고 업무대상을 다양화해주는등 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이시급히 마련돼야 벤처캐피틀 활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주장하고있다.중소기업 경영난이 당면경제현안으로 부상된 이상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는 벤처캐피틀시장도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96년 한해가 우리나라 벤처캐피틀시장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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