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의 요새' 일본유통시장이 열린다

「복마전」 「미로」.최근들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긴 하지만 일본유통구조를 가장적절히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도요타자동차가 미국시장에 「살포」됐다면 포드자동차는 일본에서 「파리 미끄럼틀」이다. 이렇게 된데는 일본유통구조의 폐쇄성 탓이다. 물론 다른 선진국이나 한국제품에도 일본시장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비쳐진다.일본은 연간으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선진국들이 일본과의 협상때마다 이구동성으로 폐쇄적인 유통질서를 문제삼는 것도 일본시장의 이같은 특성때문이다.그동안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된 일본의 유통구조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일본의 유통시스템이 생계유지를 위해 운영되는영세한 소매업체가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소매업체수가 많으며 이는 유통시스템의비효율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94년의 경우 일본에는 총2백6만7천개의 유통업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소매업체는 인구 60명당 1개꼴인 1백50만개정도로 인구 1백26명당 1개꼴(1백92만개)인 미국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소매업체들은 대개 영세하다. 가계·생업형이기 때문이다. 일본통산성의 자료에 따르면 94년 현재 전체 소매업체중 90%이상이 종업원10명미만인 상태에 있다. 이들이 소매업체 전체매출에서 차지하는비율은 42.5%. 여기에는 높은 땅값, 소매업에 대한 정부의 각종 법률적 제한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둘째로 생산에서 최종소비까지 다단계의 유통경로를 가지고 있다는점이다. 제조업체에서 소매점으로 바로 연결되는 제품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개가 도매점을 거친다. 이는 소매점이 도매점에 의존적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유통업계에서 소매점의 도매점에 대한 의존비율로 받아들여지는 W/R비율(도매업체매출총액이 소매업체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여타 선진국보다 2~3배가량 높은 실정이다.셋째는 제조업체가 계열화를 통해 유통전반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50년대이후 일본의 자동차 가전 화장품 등 각 산업분야의 제조업체들은 유통경로를 지배해왔다. 합리적 재고관리는 물론 상품정보나 소비자의 욕구변화파악, 계획적인 생산 등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가장 알기쉬운 방식은 배타적인 대리점채널을 확보하는 것이다. 마쓰시타와 도시바 히타치 등은 한때 일본 전역에 각각 3만여개, 1만3천여개, 1만1천여개의 대리점을 보유하고 있었다.제조업체들은 파손된 제품뿐만이 아니라 잘 팔리지 않는 제품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반품할 수 있는 정책을 취했으며 유통업체들의 편의를 위해 제품대금으로 어음을 이용하도록 하는 관행을 정착시켜나갔다. 또 제조업체는 대리점의 판매가격을 결정해 주기도 했으며각종 리베이트를 도입해 자신들과의 관계를 유지시키도록 유도했다.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일본유통에서 리베이트는 수량에 따른것에서부터 현금결제 목표달성 판매촉진에 대한 리베이트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이와함께 일본시장을 파고들려고 하는 외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수입제한카르텔이나 병행수입억제정책 등에서 면담과 교제 등 사적인접촉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차이, 의사결정의 지연과 불투명한 과정등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느끼는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일본유통 리베이트제 다양그러나 지난 2~3년전부터 일본의 유통구조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가격파괴」의 물결이 전세계적인 현상이었지만 다른나라보다 더욱 폐쇄적이었던 일본유통시장은 그때까지 누적돼 있던 불합리한요소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면서 더 큰 변화를 겪게 됐다. 일본의 유통구조는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인구의 교외이동이나 자동차문화의 생활화, 소비세대의 변화, 여성의 사회진출, 고령화추세 등장기간에 걸쳐 진행돼온 사회저변의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일본경제를 떠받든 경영방식으로 각광을 받았던 연공서열 종신고용제 등이 서서히 무너지고 대량생산을 넘어선 공급과잉이 만성화됐다. 「1달러=1백엔」을 뛰어넘는 사상 유례없는 엔고와 함께 가격파괴가 본격화되자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후진적인 유통구조가 한꺼번에 「청소대상」에 오른 것이다.우선 서방선진국의 끈질긴 요구에 몰려 일본정부가 대대적인 행정규제완화에 나서게 되고 따라서 유통정책에서도 각종 규제가 느슨해지고 있다. 즉 독점금지법이나 대규모소매점포법의 완화로 도·소매업계에 더 자유로운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국민들의 소비패턴에도 변화가 일었다. 80년대후반 고가의 브랜드제품을 선호하던 일본인들이 엔고가 찾아들면서 저가제품에 눈길을돌렸다. 토요휴무제가 정착되고 삶의 질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여가관련지출의 증가속도가 다른 지출에 비해 월등히 컸다.여성취업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쇼핑으로 구매패턴이 변하고 있다. 불필요한 백화점쇼핑을 피하고 값이 싼 잡화점의류점 가전점 등을 찾아 다니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최대 광고대행사인 덴츠가 94년에 실시한 한 조사결과는 소비자의 충동구매보다 비교구매의 비율이 훨씬 높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일본경제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조사대상의 절반이상이 기껏해야 한달에 1회 백화점을 찾고 있다.버블경기의 붕괴로 지난 80년대말 폭등했던 부동산가격이 대폭 하락했다. 이에따라 유통업체들은 창고와 재고부지 등 대규모 유통센터를 세웠다. 85년 플라자합의(서방선진국에 의해 일본엔화가 평가절상된 회의)이후 일관된 흐름인 엔고가 경기침체기에도 기승을 부리면서 자스코 야오한 미쓰코시 도큐 등 유통업체와 백화점들은 저가격의 자가브랜드(PB:Private Brand)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행정완화조치 지속적으로 이어져한편 가격파괴에는 정부의 노력도 일조했다. 대규모점포의 등장을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조치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선진국중에서도 일본의 물가만이 유달리 높아 국민들사이에서는 「나라는 부자지만 백성은 거지」라는 불만의 목소리가강해진데 따른 것이다.결국 전반적인 경제환경의 변화속에서 일본유통의 특징적인 요소들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우선 소매점수가 감소하는경향이다. 82년부터 94년사이에 일본의 소매점수는 1백72만개에서1백50만개로 12.8%가 줄어들었다.대신에 소매점이면서도 대형화된 기업형 소매점들이 늘어나고 일련의 유통과정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자스코같은 복합단지나다이에 이토요카도 야오한 등은 소매업이면서도 도매점에 예속되는것이 아니라 제조업체들에 기획 상품을 요구하는 등 힘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자연히 도매업체들은 쇠퇴하게 되고 제조업체들도 유통업체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할인점이나 대형양판점 신사복전문점등 대형소매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미쓰코시 다카시마야 다이마루 등 백화점들은 매출이 줄고 수십년만에 순익이 마이너스증가율을 보이는 위기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나아가 각가지 기술의 발전은 자동판매기에서 통신판매, TV 컴퓨터 등을 이용한 홈쇼핑, 방문판매 등 유통의 형태에서도 파괴적인 양상들을 불러왔다.WTO(세계무역기구)체제 아래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일본에 대한시장개방 「압력」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한국업체들에도 일본시장을 노크할 수 있는기회의 폭이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대우경제연구소의 강문성 연구위원은 『불투명하고 배타적인 성격이 분명했던 일본유통시장과 상거래관습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며 『의류나 스포츠용품 등 소비자공산품에서 중간 가격대의 시장을 노려볼만하다』고 지적했다.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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