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안테나숍, 진로가든 '지화자'

요즘 일본의 TV를 보다보면 「김치포테이토칩」이라는 스낵 광고를접할 수 있다. 일본의 유명한 제과회사가 얼마 전에 개발한 신제품광고다. 「겨울이다. 외로운 계절이다. 김치가 생각난다. 김치가생각날 때는 김치포테이토칩」이라는 내용이다. 다른 나라의 전통음식을 재빠르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량, 자신의 식문화에 편입시키는 일본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도쿄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 록본기. 진로재팬은 록본기 방위청 옆에 사옥을 마련했다. 1,2층에는 안테나 숍인 「진로가든」을 차렸다. 한국음식을 일본인의 취향에 맞게 현지화시킨 고급 한식당이다. 지난 94년 12월에 문을 열었으니 1년이 조금 지났다.그러나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못잡을 정도로 「만원사례」다. 진로재팬은 이 진로가든을 통해 일본인의 입맛을 파악한다. 뿐만 아니다. 일본 한복판에서 한국 음식의 맛과 멋스러움을 전하는 식문화 전령사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고유의 맛에 일본 취향 접목진로재팬의 김태훈지사장은 『진로가든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올바로 알리기위해 시작한 사업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식은 상당히 고급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반면 우리 음식은 일본에서 무시를 당해왔던게 사실이다.김태훈지사장은 그 이유를 우리나라의 역사때문이라고 말한다. 광복후 어쩔 수 없이 일본에 남게 된 많은 재일교포들이 생계수단으로 식당을 운영하다보니 한식이 저급음식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설명이다. 서울올림픽 이후 우리 음식의 위상도 많이 높아져 김치와불고기 정도는 세계적인 음식이 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불고기집(야키니쿠점)하면 지저분한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다.진로가든은 우리 고유의 맛에 일본 취향을 접목시켜 최고급 이미지를 굳히고 있는 케이스. 인테리어부터가 일반적인 한식당과는 다르다. 곳곳에 한국화가 걸려 있고 한국 도자기들이 진열돼 있지만 검정색 벽과 같은 색 식탁과 의자로 인해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본적인 냄새를 풍긴다. 예약 손님을 주로 받는 2층 온돌방에 설치된 한옥식의 툇마루와 창호지문도 완전한 한국 고유의 모습은 아니다.일본인에게도 이국적이지만 이 곳을 찾는 한국인에게도 한국에서한식당을 찾았을 때와는 다른 인상을 준다.음식도 그렇다. 맛뿐이 아니라 색과 모양 등 음식의 시각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일본인의 취향에 맞춰 세밀하게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소량씩 오밀조밀하고 색깔에 맞게 담겨 제공되는 음식이 푸짐하게 먹는 것을 즐기는 한국인의 식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음식은 불고기이지만 진로가든에서 인기있는 메뉴는 갈비와 돌솥비빔밥 파전 냉면등. 특히 파전은 주요리에 곁들여 먹는 사이드 음식으로 주문하는손님이 많다.◆ 진로소주가 최고급주로 팔리는 현장진로가든의 현지화 정책 덕분에 이 곳에는 한국인보다 일본인 손님이 많다. 실제로 최남기진로가든 점장은 『진로가든을 찾는 손님의70%가 일본인』이라고 소개한다. 1, 2층 1백40평 규모에 좌석이1백50석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점심 저녁을 합쳐 이 곳을 찾는 일본인은 매일 2백명을 훨씬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본 관공서와대기업 직원이 주로 찾고 손님 접대 장소로도 인기가 있다.이 곳에 오는 고객이 많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일부러 진로가든의 음식을 찾는 손님들이기 때문.진로가든의 음식값은 다소 비싼 편이다. 한정식이 1인분에 9천엔에서 1만5천엔, 갈비는 2천5백엔, 불고기는 2천엔, 돌솥비빔밥이 1천5백엔, 김치찌게가 1천5백엔 등이다. 비교적 괜찮은 일본 식당에서초밥정식이 1천6백엔에서 2천엔 정도에 팔리는 사실을 감안할 때적은 금액이 아니다.그러나 진로가든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싼만큼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고급 호텔에서만 25년 경력을쌓은 정갑종 요리장을 위시해 9명의 요리사들이 최고의 맛을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 서비스도 뒤지지 않는다. 서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에 유학온 한국 학생들과 중국교포, 재일교포 등의 아르바이트생이지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한다는생각으로 손님을 맞고 있다.진로가든은 진로소주가 최고급주로 팔리는 1차 현장이기도 하다.이 곳에서 진로소주 7백㎖는 2천엔, 3백75㎖는 1천2백엔에 팔린다.진로소주의 소매가격 자체가 일본의 가장 비싼 소주인 다카라보다10%정도 높긴 하지만 이 곳에서는 진로소주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있다.1층 바에 진열된 손님들이 마시다가 남긴 진로소주 병들. 술을 맡긴 주인의 이름을 꼬리표로 달고 쭉 늘어선 진로소주의 모습이 생소하다. 우리나라에서 마시다 남은 양주를 맡겼다가 다음에 그 음식점을 찾았을 때 다시 마시는 것과 비슷하다.소주를 마시는 광경도 다르다. 소주를 그대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얼음과 물 등과 함께 세트로 주문해 물에 섞어 마신다. 일본인들은「미즈와리」를 즐기는 것이다. 녹차나 우유 등과 섞기도 한다.일본에 우리의 식문화를 전하고 있는 진로가든. 때문에 진로가든에대한 진로재팬 김지사장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진로가든에 대한 포부도 크다. 올해안에 도쿄 긴자에 진로가든 2호점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진로가든을 일본 전역으로 체인화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직항로가 개설된 지역을 진로가든 전국화의 거점으로 삼아 일본 곳곳에 고품격의 한국 음식문화를 알린다는게 김지사장의 꿈이다.진로가든의 지난해 매출액은 2억5천3백만엔, 올해 예상 매출액은3억7천만엔이다. 매출액은 진로재팬에 이익 개념이 아니다. 일본에우리 음식을 얼마나 많이 알렸나를 가름하는 척도일 뿐이다. 진로재팬 직원 모두가 진로가든을 진로의 얼굴이자 한국의 이미지를 일본에 심는 민간 외교의 장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미니인터뷰 / 진로가든의 촤남기점장.정갑종요리장최남기점장(36)과 정갑종요리장(50)은 진로가든을 이끄는 두 축이다. 최점장은 객실에서, 정요리장은 주방에서 각각 최고의 서비스와 맛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최점장은 91년부터 진로의 일본 외식사업 업무를 담당하기 시작한노총각. 세련된 매너로 손님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정요리장은 한식 요리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의 베테랑요리사다.9명의 요리사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음식맛은 직접 맞춰야만 안심하는 음식에 관한한 철저한 완벽주의자다. 두 사람은 진로가든을 처음 개점할 때부터 동고동락을 같이해온 사이.최점장은 『아직 나이가 얼마 안됐는데 점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지고 있어 어려운 점이 많다』며 특히 초기에는 한국 유학생, 재일교포 중국교포 등으로 이뤄진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많아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같은 민족이지만 살아온 환경이 달라 처음에는 서로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지금은 가정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서로의 처지를 헤아리며 협조하고 있다고.한국의 맛을 일본에서 재창조해 내고 있는 정요리장은 해외에서 한식을 만들 때 주의할 점으로 『한국 음식이니까 입맛에 맞으면 먹고 안맞으면 그만두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정신』을 꼽는다. 한국전통의 맛과 그 지역의 입맛을 조화시켜야 한국 음식을 세계화시킬수 있다는 지적.두 사람 모두 다 가족과 떨어져 해외생활을 하고 있지만 최전방에서 한국의 이미지 메이커 노릇을 한다는 보람에 어려움도 잊고 일에 묻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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