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도 준치' 그래도 물건은 남산골서 나온다

충무로. 옛말로 남산골 샌님들이 살던 동네다. 요즘은 영화를 이야기할 때면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는 지명이다. 그러나 충무로는영화이외에 한국 디자인산업의 「밑그림」이 만들어진 거리이기도하다. 디자인왕국 이탈리아에 밀라노가 있다면 한국에는 충무로가있는 셈이다. 밀라노에만 디자인스튜디오 1천여개가 몰려있듯 충무로에도 디자인이나 기획사란 간판을 단 크고 작은 디자인업체들이빽빽히 몰려있다.충무로3가를 관할하는 중부세무서의 백종길 부가세과장은 『대략3천2백∼3천3백여개의 디자인·인쇄관련업체들이 몰려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의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충무로는 빠질수 없는 화제가 되며 한국 디자인산업의 「메카」라는 평도 듣는다.『한국 디자인산업의 메카는 당연히 충무로다. 지금은 공간문제등으로 디자인업체나 종사자들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그들에게 여전히친정집같은 곳이 충무로다』충무로의 컴퓨터디자인업소인 「이미지월드」의 디자이너 박정아씨(29)의 말이다.동덕여대 미대를 졸업한 후 바로 충무로에 뛰어들어 패키지디자인을 하고있는 안현화씨(29)는 『디자인의 모든 것이 몰려있는 충무로는 지금도 디자인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찾지 않을 수 없는 곳』이라고 자신의 충무로입성을 설명했다. 안씨는 또 『충무로를 거쳐나가는 사람들은 일에 관해서는 어느 곳에서나 인정을 받아 자부심들이 대단하다』고 디자인계통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를전했다.디자인산업의 메카라는 충무로, 정확히 말하자면 퇴계로를 접한 극동빌딩과 마른내길을 낀 쌍용빌딩을 각각 앞뒤로 두고있는 한 블록인 충무로3가다. 이 거리가 디자인산업의 메카라는 소리를 들은 것은 얼마 안된다.진고개·본정통 등의 옛 지명을 갖고있는 충무로는 이미 50년대초부터 영화종사자들이 북적대던 거리로 사진관련업소등이 몰려있어디자인동네로서의 틀을 갖추고 있었다.◆ 명동으로 아이디어 사냥 나서기도그러다가 지난 85년 삼각동에 몰려있던 인쇄단지가 해체, 바로 옆의 인현동이나 오장동 충무로4가 을지로등으로 하나둘씩 옮겨오면서 디자인단지로서의 외양을 갖추게 된다. 디자인에 필수적인 인쇄촌이 형성된 것이다. 게다가 사식 원색제판 및 분해 등을 하는 업체들이 어우러져 디자인에 관한 「일관공정」을 갖춘 곳으로 한순간에 탈바꿈한다.디자인에 관한 일관작업환경과 함께 충무로가 지닌 또 하나의 강점은 예나 지금이나 패션의 중심지인 명동이 바로 이웃하고 있다는점이다. 명동은 패션이나 잡지 등 외국물이 빨리 스며드는 곳이다.그런 명동은 아이디어와 기획의 부담에 찌드는 디자이너들에게 시각을 자극하고 다양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색감을 필요로 하는 디자이너들에게 명동이주는 다양함이야말로 빠뜨릴 수 없는 자양분이기 때문이다.『대개의 디자이너들이 명동에 자주 나가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사냥을 한다』는 것이 디자이너 안씨의 말이다.『처음에는 영화때문에 거리가 형성됐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영화쪽은 충무로에서 종로나 강남쪽으로 빠져나가고 디자인산업이 발달, 충무로를 크고 작은 디자인업체들이 휘어잡기 시작했다.』충무로에서 화구만을 16년째 전문적으로 취급해와 충무로의 「터줏대감」소리를 듣는 「한씨네 마트」 한세희사장(47)의 말이다.디자인업체들을 상대해온 경력으로 한사장은 『70년대만 해도 군데군데 있던 디자인업체들이 80년대에 급증한데다 인쇄업체들까지 몰리면서 말 그대로 디자인거리가 됐다』고 나름대로 충무로약사를덧붙였다.인쇄 사진 제판 사식 등 유관업체들을 두루갖춘 충무로는 수작업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던 80년대말까지 디자인의 메카구실을 톡톡히한다.토양이 잘 갖춰진 충무로에서 자란 디자인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충무로를 탈출, 강남 마포나 이웃한 을지로 장충동 일대로 가지를 쳐나간다. 건물이 오래돼 주차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사무환경이 열악해졌지만 임대료는 계속 올라 비슷한 임대료의 쾌적한 건물을 찾게 됐기 때문이다.현재 충무로의 건물임대료는 보증금은 각각 다르지만 월세는 평당6~8만원 정도가 표준가격이다. 게다가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사식등의 수작업이 불필요해진 점도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썩어도준치」라고 충무로는 여전히 디자인의 본산이다. 컴퓨터로 디자인하는 세상이 됐지만 쓸만한 출력소나 사진업소들이 모두 충무로에몰려있어 강남이나 마포등으로 이전한 업체에서도 다시 충무로를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80년대말 충무로에 매킨토시시스템을 도입한 선구자중의 하나로 기업들의 통합이미지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디자인센터의 김명관사장(46)은 『모든 시스템이 집약돼있어 시너지효과를 내는 충무로』라며 『외부로 나간 업체들도 충무로를 찾지 않을 수 없다』고설명했다.그러나 디자인산업의 본산임을 자부하는 충무로이지만 몰려있는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업체들이어서 남다른 이면을 갖고있기도 하다.『지금은 대기업에서는 아이디어만을 제공하고 실무적인 일 전반을충무로에서 담당하는 형태가 가장 많다. 충무로는 일종의 하청공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광고디자인과 책디자인을 주업으로 하고있는 팬텀기획의 유영찬사장(40)의 충무로가 안고 있는 위기진단이다. 자본의 논리에 몰리고있는 충무로의 분위기. 그것은 곧 영세한 디자인업체들의 하청공장화다. 결국 충무로 안에서도 외주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그러나 유사장도 충무로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작품의 질에 관해서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충무로를 거쳐 대기업으로갔던 때에 비해 요즘은 교육을 마친 후 바로 대기업체로 직행한다.하지만 그들에 비해 충무로의 품질이 더 우수하다』는 것이 유사장의 자부심이다.지금도 디자인에 관한 한 어느 자리에 앉혀놓아도 즉각 제몫을 할수 있는 수많은 「실력자」들을 낳고 길러주는 곳. 바로 충무로다.충무로가 지금도 많은 인력을 배출하고 있지만 사실 임금이나 근무형태 등에 있어 대기업에 비해 미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일을 어느 정도 익히면 모두 대기업체로 가고싶어 한다』는것이 한 디자이너의 말이다.◆ 주문식사·야근 마다않는 ‘쟁이’들설립된지 14년이 된 충무로에 있는 패키지디자인회사 S사. 패키지디자인에 관한한 국내 최고임을 자타가 인정하는 회사지만 대졸6년차 디자이너가 받는 보수는 연봉으로 약 2천만원정도. 잘나가는대기업의 대졸초임과 비슷한 수준이다.게다가 회사의 안정성등에도 확신이 가지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무로를 뜨지만 결국 충무로와 연을 끊지는 못한다.그러나 충무로사람들은 이에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다. G디자인사무실의 디자이너들은 한 목소리로 『돈보다는 일자체가 좋아서 하는것이다. 이쪽 일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거나 신명나지 않으면 배겨나지 못하는 곳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디자이너들은 기본적으로 끼를 먹고사는 「쟁이」들이다. 그래서그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주문해서 먹는 경우가 유별나게 많은 곳이 충무로다. 게을러서가 아니다.『대개의 경우가 머리를 짜내야 하는 일이라 잠시라도 생각의 흐름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문식사가 유별나게 많다』는 것이 B식당측의 애정어린 설명이다.디자인은 창작이다. 창작은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영감에 많이 의존한다. 그만큼 아이디어를 짜내기위한 몸부림도 절실하다. 충무로입구에 있는 맥주집 「베어가든」의 윤영한지배인(47)은 『디자이너들이 자주 가게를 찾으며 술을 마신뒤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곤한다』고 말했다.술을 마시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곳. 바로야근에 인이 박인 충무로 디자인세계다.충무로에서만 17년째로 술집중 최고참에 속하는 「고래등」의 한종업원은 『이쪽 예술(디자인)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술도 자주먹으러 온다. 아마 술의 힘이라도 빌려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것이려니 짐작한다』고 설명했다.충무로에는 갑작스레 맡겨지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충무로의 디자인종사자들 가운데 『늦은 시간에 피로회복제등을 사러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D약국김모약사(51)의 말이다.한국 디자인산업의 본산이란 자부심을 지켜나가는 「쟁이」들이 몰린 충무로. 한국시장을 위협하는 디자인라운드의 파고가 일기시작한 요즘.그러나 충무로의 쟁이들은 「보이지 않는 사회간접자본」이라는 디자인산업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치열한 아이디어전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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