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디자인' 철학으로 승부한다

탈 국경의 무한경쟁시대에 국가 산업의 핵심적 요인으로 디자인을부각시켜 성공한 이탈리아 디자인의 잠재력은 어디에 있는가.여기에는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예술문화의 역사성이 스며 있다. 그중 디자인의 실체가 되었던 것은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다양한 예술양식의 총체적인 면에서 꽃을 피워놓은 건축문화와 오페라역사 등이다. 이들이 유산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까지도 상류사회문화일부로서 흡수되어 왔기 때문이다.특히 고대 석조 건축문화는 실내디자인과 더불어 이탈리아 가구와조명산업의 모태가 되었으며 총체적 예술을 집대성한 오페라역사는무대의상연출의 패션산업으로 이탈리아 경제의 발판을 구축해 놓았다.하지만 이탈리아의 근대사가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무솔리니정치의 막이 내릴 때까지도 이탈리아는 프랑스 섬유산업의 하청기지였으며 혼란스런 경제는 회생할줄 몰랐다.이때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 수립과 디자이너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가구를 비롯해 조명 패션 섬유 자동차산업에 이르기까지유감없는 저력을 발휘, 과거 예술역사를 새롭게 발전시켰다.◆ 작은 티스푼에까지 디자이너 이름 새겨이에따라 이탈리아 경제산업의 전진기지였던 밀라노는 가구를 비롯한 조명과 패션산업의 세계적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특히 이탈리아 경제의 산파역을 담당한 3만5천여 중소가구업체들은지난해 9조2천만 리라(한화 5조원)에 이르는 매출실적을 올렸다.이들 기업중에서 가장 성공한 카시나(CASSINA, 1920년 창업)는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오직 디자인과 디자이너」라는 모토아래 질적 자존심을 내세우는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수요를 창출시켜 나갔다.놀라운 일은 4백명도 채 안되는 종업원수(국내 가구업체 기준 10대기업에도 못미침)로 9백억원대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매출의 70~80%는 수출(국내 10% 전후)이 차지했다.이러한 국제적 위상을 세우기까지 카시나 전략 가운데 특이한 사항은 1964년부터 진행해온 「거장들의 카시나 컬렉션(La CollezioneCASSINA I Maestri)」이다. 카시나는 역사속에 묻혀버리는 유명 건축가 겸 디자이너 르 코르뷔지에와 찰스레니 매킨토시, 게리토마스리이트벨트,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 등이 장식했던 모더니즘 가구들을 새롭게 부각시켜 또다른 가구의 역사적 문화성을 기업 이미지로승화시켰다. 그외 1년에 몇개밖에 안팔리는 아이템일지라도 가구의일품적 가치성을 높이는 디자인이라면 과감히 생산했다. 「문화자산창출」을 경영 전략의 한 부분으로 발전시켜 나간 것이다.조명산업에 있어 에르네스토 지스몬디(Ernesto Gismondi)가설립(1959년)한 아르떼미데(ARTEMIDE) 역시 디자인을 통한 기업경영전략으로 성공한 기업 중의 하나이다.새삼스러운 것은 이 회사에는 사내 디자이너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전세계 톱디자이너에 해당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30명이나 되는 연구개발팀과 함께 파트너십 체제를 구축해 베스트 셀러조명 디자인을 생산하고 있다. 한 예로 1972년 리처드 사퍼가 디자인한 티지오 테이블 램프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오피스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아르떼미데는 종업원수 1백90명으로서 1천억 리라(한화 6백억원)이상의 매출좌표를 만들며 60% 이상을 수출해 기업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탈리아 조명산업의 단면은 국내 이미테이션 조명산업과는 대조적인 차원을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전세계 멋쟁이들의 동경대상이 되었던 이탈리아 하이 브랜드 컬렉션들은 세계 유수패션 시장의 50%를 장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는 구찌, 잔니 베르사체, 잔 프랑코 페레, 발렌티노, 미쏘니, 페라가모,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중저가 컬러이미지로 어필해온베네통과 스테파넬외 스포츠 웨어로서의 필라, 엘레쎄, 로또 등은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패션 브랜드 네임들이다.주방문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알레시(ALESSI)는 이탈리아 디자인의바로미터로서 가족중심적 공방에서 출발해 오늘날주방용품(kitchen table ware)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하였다.◆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열린 사고 배워야알레시의 위상이 확고해지기까지 많은 화제거리가 있었지만 창업68년만인 1989년 주방용품중에서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냄비꼭지 디자인을 위해 세계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디자인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4명을 초청, 냄비꼭지 디자인 의뢰를 한 것은이탈리아의 장인의식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즉 4가지 유형의 냄비꼭지 디자인을 통하여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 충족은 물론 소외된제품의 질적 차별화를 실감나게 처리한 것이다.그외 다양한 커피 서비스세트 디자인들은 지금까지 보여주던 단순물적 차원에서의 대상물로 보기 어렵다. 비개성화 비인간화 되어가는 이성적 기술만능주의 시대의 또 다른 의미전달체로서, 또한 상품을 외적 기능세계로부터 내적 감동세계로 전이시켜 주는 매개체로서 새로운 디자인 철학의 지평을 열었다.또한 작은 티스푼에 이르는 아이템이라 할지라도 디자이너의 이름을 각인하여 기업과 디자이너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한편 그들의 존재 가치를 부각시켜 위상을 높여주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그리고 개발된 주방용품 홍보 카탈로그에 있어서도 유명 여배우나주부를 모델로 삼지 않고 디자이너 자신이 모델이 되어 소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표출된 다양한 이슈들은 다시 책(총15권)으로엮어져 아카데믹한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실마리가 되었다.그외에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가장 매혹적이고 비싼 차의 대명사가 된 람보기니와 페라리, 테스타 로사(Testa Rosa) 스포츠쿠페는 자동차 스타일러 및 디자이너들에게 문제해결의 바이블처럼 간주되어 왔다.그중에서 한국차의 신기원을 이룩한 포니와 스텔라를 디자인한 이탈디자인 스튜디오의 지오르게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와대우 고유모델인 에스페로를 디자인한 주지아로의 스승인 누치오베르토네(Nucio Bertone)등은 이탈리아의 예술적 혼과 기술을 담아냄으로써 천문학적인 디자인 로열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이탈리아가 1960년대부터 디자인 문화대국으로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실험정신과 열린 사고를 통해 자유스럽게 디자인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던데 있다. 또 정부의 노력과 기업 및 디자이너(프리랜서 60%)를 묶어주는 산업디자인협회(ADI,Associazione peril Desegno Industriale)의 정책 일관성의 결과이기도 하다.이러한 이탈리아디자인의 특성은 기술에 디자인을 맞추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디자인에 기술을 맞추어가며, 디자인 완제품을 팔기보다는 더 큰 부가가치가 내재된 무공해산업의 디자인 설계도와 브랜드네임을 양도하는 네오 캐피탈리즘(Neo Capitalism)을 개척하면서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문화를 열어가고 있다. q박찬준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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