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부실 디자이너' 양산 시스템

LG전자산하 디자인연구소는 요즘 지난해말 특별채용한 신입사원들의 실무교육을 하느라 분주하다.교육대상인원은 15명. 이들 대부분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업무성격상 공채형식이 아닌, 대학에서 추천을 받거나 이 회사에서 인턴십을 마친 사람들 중에서 특별선발했다.교육은 3개월동안 진행되며 교육프로그램은 포토그래픽 CAD 몰딩금형 마케팅조사 등 이론보다는 실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이 과정을 마친 뒤 이들은 다시 근무부서에 배치돼 2차 교육을 받게 된다. 각 부서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들이 현업에 본격적으로뛰어들게 되기까지에는 대략 9개월이 걸린다.이 회사가 이처럼 디자인 전공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장기간의 실무교육을 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다른 어느 전공과는 달리 이론보다는 실무가 우선시돼야 할 대학디자인교육이 이론에 너무 치우쳐 현업부서에 곧바로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회사 디자인연구소 조재승통신기기팀장은 ?제품디자인을 위해서는 제품구조에 대한 이해, 고객의 성향, 최신 기자재를 활용할 수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대학에서 이러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있다?며 실무재교육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조팀장이 언급했듯 우리나라 대학 디자인교육의 문제점은 먼저 실무교육의 미비에서 찾을 수 있다.현재 국내 디자인 관련 학과는 1백40개 대학 1백75개 학과에 달한다. 이들 대학 대부분은 비록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교과과정이 실무보다는 이론에 치우쳐 절름발이 디자이너를 양산하고 있다.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이 지난해 5월 디자인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 및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메산업디자인 교육실태조사?는디자인교육의 이러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상당히 충격적이다.◆ 평론가 아닌 전문디자이너 양성이 목표디자인 관련 커리큘럼에 대한 만족도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64.9%가불만이라고 응답했고 만족한다는 응답은 35.1%에 불과했다. 불만응답자의 대부분은 실무교육 부재를 꼬집었다. 실기·실습교육에 대한 만족도에 대해 응답자의 29.7%가 만족한다고 답했고 불만족자는80.3%에 달했다.이와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론과 실기강의마저도 부실하다는것이 디자인업계의 시각이다. 이론과목의 구성은 전공실기시 창의성과 논리적 사고를 키워줄 수 있도록 짜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실기교육 또한 제품의 특성, 생산과정, 마케팅 등과 연계, 입체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단순히 미술실기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것이 디자인업계 전문가들의 견해이다.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김교만명예교수는 ?디자인 교육은 평론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고 전문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것이 궁극적인목표?라며 우리 디자인 교육도 하루빨리 실기위주로 전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대학 디자인교육이 이처럼 절름발이가 된데에는 디자인관련 학과의잘못된 학제편제가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국가경쟁력강화차원에서 최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산업디자인학과의 경우 선진국에서는 건축대학,디자인대학,공과대학등 특성화된 단과대학에 소속되어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국내 대학의 산업디자인 교육은 75%가 미술대학등 예체능계 대학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공대계열에 소속되어 있는 대학은 4%에 불과하다. 이에따라 우리나라 산업디자인 교육은 형태,색채등 메보는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메사용하는 즐거움?을 도외시하게 되는 우를범하고 있다.이러한 현행 교육체계는 또 미술적 자질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돼궁극적으로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전문 산업디자이너 양성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결과적으로 전문적이고 실전적인 교육은 미비할 수밖에 없게 되고대졸자 대부분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의 재교육과정을거쳐 현장에 투입되는 비효율성을 낳게된다. 국가적인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홍익대 공업디자인학과 조벽호교수는 디자인학과의 학제와 관련,?대학에서의 인력배출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면서?최근의 디자인추세가 실무에 무게가 실려 있고 제품의 기능성을보다 강조하는 만큼 선진국처럼 공대쪽에 두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미대에 둘 것이냐, 공대에 둘 것이냐는 논란보다는 차라리 독립된단과대학을 만드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김명예교수는 ?일본의 경우 대부분 유명디자인학과는 단과대학으로 독립돼 있다?며 이 방안도 검토해 봄직하다고 말했다. 동경예술대학, 다마미술대학, 무사시노미술대학이 이 경우에 속한다고 김교수는 소개했다.이와함께 교수들의 자질도 우수한 디자이너 양성을 막는 요인으로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 디자인학과 교수들은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80년대중반을 기점으로 세대구분이 이뤄진다. 80년대 중반이전에 학위를 받아 강단에 선 교수는 메1세대?로 그이후 강단에 선 교수는 메2세대?로 구분된다. 1세대 교수가 대부분으로 이들은 이론에 강한 편이며 현재 학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자연히 실무에 밝은 메2세대교수?들은 따돌림을 당하게 되고 이와중에서 학생들은 희생양이 되어 버리는 것이 우리 디자인교육의현주소라고 업계관계자들은 지적했다.특히 메1세대교수?들은 메컴맹교수?가 많아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에서 3년전에있었던 일은 좋은 사례에 속한다. 모 컴퓨터회사에서 디자인교육의발전을 위해 컴퓨터 20대를 기증했는데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교수가 없어 단순히 워드프로세서로만 활용되었다는 것.◆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 아닌 ‘기술’산학연계교육의 부재도 우수산업디자이너 양성에 장애요소이다.산업디자인의 경우 기업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제품의 라이프 스타일, 마케팅교육 등이 원활히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걸음마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대기업에서는 아예 LG전자처럼 자체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해 신제품개발을 하고 있고 중소기업에서는 능력이 없어 산학연계는 구호에만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홍익대 공업디자인학과 조교수는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은 대학따로,기업따로 움직이고 있다?며 기업들은 신제품개발시 대학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산학연계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한마디로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은 이념과 목표의 결여, 체계적인교과과정 및 학과편성미비등 총체적인 부조화상태라고 할 수 있다.개선이 아닌 개혁의 차원에서 전면검토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와 업계의 공통된 견해이다.프랑스 국립산업디자인대학원(ENSCI) 엔트원장은 지난해 5월 산업디자인전람회에 참석차 내한, 우리나라 디자인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산업디자인교육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엔트원장의 이 발언을 우리나라 대학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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